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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3 | 칼럼·시평 [문화칼럼]
한국사회의 현실적 상황과 그 사회가 요청하는 문학
김교선 문학평론가(2004-01-29 11:49:30)

한국사회는 어떤 문학을 요청하는가? 이런 물음은 일제 시대에서 해방후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반복되어 온 것이다. 그런데 요즘 또 이같은 물음을 던지는 이들이 많아졌다. 그 이유는 공산주의 사회의 예기치 못했던 붕괴 현상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근자에 남․북한 간의 화해무드가 어느정도 조성되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말하자면 이같은 역사적 변혁기를 맞이한 문인들은 자신의 문학적 입장을 재검토하여 볼 필요성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앞에서 말한 것같은 물음을 던지는 이들이 근자에 많아 진 것이다.
정치적인 활동과 문학적인 작업과는 서로 성격을 달리하는 것이다. 정치적인 활동에 있어서는 개개인의 자유를 허용할 수 없지만 문학적인 작업에 있어서는 작가 개개인의 자유가 허용되어야 한다. 그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상식화 된 문제다. 그러므로 작가들에게 어떤 창작 태도를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작가도 자기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작가에게 요청하는 중요한 문제를 표현하는 것이 보람 있는 일로 느껴질 것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필자는 한국 사회에서 작가들에게 요청하고 싶은 문학은 어떤 것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았다.
한국 사회에서 작가들에게 요청하고 싶은 문학이 어떤 것이냐 하는 문제를 거론하기 위하여서는 우선 한국 사회의 상황부터 생각하여 볼 필요가 있다.
한국 사회는 근자에 와서 종전에 비하면 민주화된 측면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구호에 불과하고 실질적인 내용이 결여된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아직도 일반 서민층은 자신들을 소외된 계층으로 느끼고 있다. 또 학생 지식인들은 현재도 정치적 사회적 비리가 판을 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같은 것이 한국의 현실적인 상황이라면 한국 작가는 이것을 표현할 수 밖에 없다. 양심적인 작가라면 이같은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면 다음에 문제가 되는 것은 앞에서 말한 것같은 현실적 상황을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 하는 점일 것이다. 같은 상황도 그것을 보는 시각의 차이에 따라서 해석이 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냉소적인 시각으로 보면 허무주의적인 해석이 성립될 것이고 긍정적인 사관을 앞세우면 낙관적인 해석이 성립될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는 현실을 올바르게 보기 위하여 사회학의 지식이 필요하다. 물론 작가는 전문적인 사회학자가 될 수는 없다. 또 그렇게 될 필요도 없다. 다만 사회현상을 올바르게 볼 수 있을 정도의 기초적인 지식만이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같은 표현 대상이 있고 또 그것을 올바르게 볼 수 있는 시각이 마련되었다 하더라도 구체적인 작품을 형성하기 위하여서는 적절한 표현 방법을 택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면 이같은 경우에 필요한 표현방법은 어떤 것일까? 그것을 발견하기 위하여서는 비판적 리얼리즘 또는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의 방법을 참고로 연구하여 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런데 위에서 말한 것처럼 한국 사회의 현실적 상황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표현한 리얼리즘 문학이 60년대에서 80년대에 이르는 민중문학 계열의 작품이 아니었던가? 그러므로 필자가 지금까지 주장한 것은 양심적인 한국 작가들이 이미 실천하여 온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면 필자는 무엇 때문에 이같은 주장을 새로운 견해나 되는 것처럼 거론되고 있는가? 그 이유는 요즘 공산주의 사회의 급격한 붕괴현상을 보고 일부 문인들 중에는 민중문학에 대한 빗나간 비난을 하는 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필자는 그들을 의힉하고 민중문학이 표현하려고 하나 대상, 그 대상을 보는 시각, 또 그 표현방법이 타당한 것이었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미 앞에서 말한 바 있듯이 한국사회도 근자에는 종전에 비하면 민주화된 면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도 구태의연한 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한국 사회가 선진국 수준으로 민주화 되기 까지는 한국 문단에서 민중 문학이 담당해야 할 역할은 지속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같은 점을 고려하면 한국에서의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하여서는 민중문학에 대한 경솔한 비난은 삼가는 것이 옳을 것같다.
그러나 필자는 민중문학에 대한 정당한 비판은 활발하게 전개되기를 바란다. 그것은 민중문학의 발전을 위한 추진력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민중문학에 대한 비판적인 조언을 다음에 첨가 하기로 하였다.
첫째, 이 계열의 작품에는 테마문학이 많다는 비난이 있다. 필자도 그렇게 느끼는 경우가 많다. 가령 남정현의 <분지>같은 소설은 그런 종류의 대표적인 작품일 것이다. 시사적인 문제의식을 생경한 웅변조로 진술하였을 뿐 문학적인 질감을 갖추지 못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처럼 문제의식만을 앞세우고 문학적인 질감의 형성에는 소홀한 작품이 민중문학 계열의 일부 비평가로부터는 높이 평가되었다.
둘째, 이 계열의 작품에는 소재문학이 많다는 지적도 있다. 말하자면 소재 자체가 지니고 있는 흥미로 작품의 흥미를 조성시키려는 경우가 많다는 비난이다.
가령 일례를 들면 방영우의 <분례기>는 취급한 소재 때문에 대단한 호평을 받은 소설이다. 이 작품에서 취급된 소재는 현대문학에서 소외된 산간 벽지 빈민들의 생활이다. 이같은 전근대적인 비참한 생활의 보고는 보고 자체만으로도 독자의 흥미를 자극시키기에 충분한 것이다. 말하자면 이 소설이 일부 비평가들로부터 지나치게 높이 평가되었던 것은 그 문학성 때문이 아니라 특이한 소재의 매력 때문이었다. 사실 이 소설의 문장은 치졸한 편이었다.
셋째, 민중문학 계열의 문인들은 편파적이라는 말도 더러 들린다. 민주화를 위한 소명감이 강한 나머지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서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는 일부 문인들을 이단시 하게되는 경향도 있을 것이다. 그런 편협성은 민중문학의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민중문학을 독선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갈 염려도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부언하고 싶은 것은 공산주의 체제의 와해가 곧 비민주적인 체제의 비리까지 합리화시켜줄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후진국에서의 민주화 운동은 공산주의 사회의 붕괴와는 관계없이 앞으로도 진행될 것이다. 따라서 현재와 같은 역사적 변혁기를 맞이한 문인들의 태도는 현명하고 신중한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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