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3 | [세대횡단 문화읽기]
731부대와 상해 임시정부
이종민(본지주간)
(2004-01-29 11:52:47)
'감탄은 무지의 소산이다.‘ 어떤것에 놀라는 것은 그것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어서이다. 자신의 놀라운 여행담을 늘어놓기 좋아하는 사람은 견문이 짧거나 속이 없는 사람이다. 군대이야기 좋아하는 사람과 별 다를게 없다.
오늘 얘기는 이런 속없는 사람의 얘기이다. 나라가 갑자기 부자가 된 덕분에 생각지도 않았던 중국연수를 하고 뭔가 지껄이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의 넋두리이다. 그 넋두리가 연수의 목적에 맞게, 중국사람들이 우리에 비하여 형편없이 못산다는 것을 확인하고 한국인으로서 자부심과 긍지를 느꼈다는 많은 다른 사람들의 흔한 이야기와 다르기를 바라는 허영심은, 자기의 군대에서의 ‘뺑뺑이’가 다른 사람의 그것과는 유가 다르다고 주장하는 속없는 사람의 자부심과 흡사하다.
그는, 중국을 다녀온 많은 사람들이 천안문 광장이나 만리장성의 위용, 혹은 자금성의 호사스러움, 중국사람들의 만만디, 혹은 엄청나게 싼 한약과 실크 스카프등에 대해 주로 말하리라고 예상한다. 이 정도는 사전에 이미 알고 있던 것이다. 중국에 대한 안내책자는 이런 것들에 대한 소개로 가득차 있다. 이러한 것으로 호들갑을 떠는 것은 괜스레 자신의 무지를 드러내는 꼴이 된다고 그는 생각한다. 그는 다른 이야기를 하려 한다.
‘그곳도 역시 사람 사는 곳이다.’라는 것도 때늦은 깨달음이다. 원산이나 신의주쯤 다녀온 사람이 하는 말이라면 잠시 새겨들을 수도 있겠다. 대학생 연수단만 이미 수 십차례 다녀온 지금 이런 얘기는 진부한 앵무새의 잠꼬대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들의 삶에 만족해하며 여유롭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소개하는 것도 별 새삼스러울게 없다. 공원에서 느린 동작의 체조를 하고 있는 모습이나 웃음 띤 얼굴로 한가롭게 거리를 산책하고 있는 모습들은 이미 사진을 통해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중국 사람들의 투철한 역사의식을 강조하고 싶어한다. 돈 자랑하기를 좋아하는 ‘어글리 코리안’의 속물근성을 거기에 대비시킨다. 천안문 광장의 모택동 기념관 앞에서 ‘위대한 해방전사’의 시신을 보기 위해 한도 끝도 없이 늘어서 있는 인파가 대개 그 이야기의 시발점이 된다. 한반도 북쪽에서의 실상과 견주어 어설픈 우상숭배, 혹은 강제동원으로 치부될 수도 있을 때 그는 슬며시 바로 그 옆에 중국의 역사를 한 눈에 조감할 수 있도록 마련된 역사박물관을 소개한다. 이것 또한 특기할 만한 것이 아니라는 지적을 그는 어쩌면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부분 나라의 국립박물관이 얼추 이와 비슷한 의도와 수준으로 꾸며져 있다는 반발이 있어도, 그 규모나 체계가 적어도 우리의 그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애써 강조하려 하지 않는다. 이것이 이야기의 시작, 혹은 그 이야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한 서언에 불과하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쯤에서 그는 뜸을 들인다. 90년 아시안 게임 때 한국의 응원단들이 북경이나 연변등에서 유감없이 보여준 꼴불견들을 소개한다. 졸부근성이라고 하기도 하고 벼락부자의 눈꼴사나운 양반흉내라고도 하며 열을 올리기 시작한다. 초콜렛으로 우리들의 누나와 고모들을 울렸던 양키들한테서 배운 것인지, 돈싸들고 여행다니며 그 나라 국민들을 하인 다루듯 하던 ‘추악한 일본인’을 본받은 것인지, 돈만 아는 뙤놈이라고 욕하던 중국인들 앞에서, 망국의 설움에 가난의 한까지 겹쳤던 우리들 조선족 동포들 앞에서 돈과시를 무시로 했다는 것이다.
그 다음이 731부대와 길림성 박물관 및 위화궁 이야기이다. 하얼빈은 안중근 의사가 이또 히로부미를 저격한 곳이다. 휘황찬란한 얼음조각공원이 있는 이 도시의 언저리에 무시무시한 마루타, 생체실험의 731부대가 있다. 자신들의 만행을 감추기 위해 철수에 앞서 거의 완벽하게 파괴를 해버린 그곳에는 조그만 건물일 초라하게 보존되어 있어 그 만행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어지간한 정성이 아니고는 구하기는 어려웠을 사진들이 진열되어 있고 또 증인들의 증언도 잘 보관되어 있다. 중일관계에 어두운 영향을 미치리라는 한일협정을 주도했던 군인들이나 가졌음직한, 염려를 그들은 하고 있지 않았다. 관계정상화에 앞서 당당한 배상을 요구했으며, 과거의 잘못에 대해서도 준엄한 심판을 내리고 있었다. 가이후 수상 방문 때 파고다 공원에서 ‘돈 많은’ 혹은 ‘돈 좋아하는’ 우리 정부관료들이 보여줬던 태도와 너무도 대조적임을 그는 강조한다.
장춘은 관동군 사령부가 있던 곳이다. 그곳은 청조의 마지막 황제였던 부의가 일제의 괴뢰정부였던 만주국의 수반으로서 집전을 했던 위화궁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곳에는 그의 일대기가 생생한 자료로 보관되어 있다. 비운의 황제로서가 아니다. 동정이나 호기심의 대상으로서도 아니다. 황제로서의, 일제만행의 앞잡이로서의,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공화국의 공민(公民)으로 거듭난 그의 ‘당당한’ 생애를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이것이 관광구경거리로 마련된 것이 아니라는 것은 바로 뒤의 길림성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는 것들로 확인된다. 이곳에는 다시, 일제의 만행을 단죄하기 위한 생생한 자료들이 보관되어 있다. 일제의 만행이 유독 만주에서만 극심했던가? 우리 한반도에서는 없었는가? 왜 우리 따에는 얼마 지나지 않은 과거에 대한 기록이 눈에 띠지 않는가? 새로운 공화국 때마다 표방하는 ‘새시대 새마음’을 위하여 ‘과거는 묻지마세요’ 란 말인가? 그래서 3․15도 잊어버리고, 5․16도, 유신도, 80년 광주도, 5공비리도 또 수서사건도 그냥 묻어두려고만 하는 것이 아닌가?
그의 분노는 상해임시정부청사를 소개하면서 절정에 달한다.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을 끌어오곤 하던 이 임시정부의 옛청사는 현재 중국인이 세들어 살고 있다.
잦은 한국인들의 방문이 귀찮아 이 사람을 방문을 걸어잠그고 입구에서 사진을 한 장 찍으며 지나가는 중국인들에게 심한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다. 대학생 연수단이 이곳을 방문하기 시작한지 몇 년이 지났는데 형편은 조금도 변한게 없다며 ‘여러분은 이러지 마십시오’ 울먹이던 여행사 직원의 모습을 보고, 그는 느꼈다. 돈이 없이 없어서 이런 것은 아닐 것이다. 외교상의 어려움 때문이라는 변명도 너무 궁색하다. 정성이 없어서이다. 돈벌이만 알았지 역사에는 전혀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배려를 요구하는 것이 중국과의 교역을 시작하는데 어려움을 주리라는 염려가 있을 수 있다.
일본 천황의 사과를 요구하는 것이 나라 돈벌이에 다소의 지장이 있지 않을까 하는 종류의 염려 말이다. 그놈의 돈 때문에 자존심도 양심도 도덕의식도 모두 팽개쳐버린 우리의 속물스런 모습이 작게는 각종 흉악범행으로, 크게는 5월 광주로, 5공비리로, 3당야합으로, 수서사건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자신의 이야기가 이렇게 싱겁게 끝나가는 데 당황한다. 윤봉길의사의 폭탄테러가 있었던 홍구공원에서 , 안중근의사의 의거가 있었던 하얼빈 역에서, 이에 대한 안내표지판 하나 발견하지 못했을 때 그의 마음속에 쌓였던 울분이 이렇게 맥빠진 이야기로 풀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여행얘기 길게 하는 사람치고 속있는 사람 없다는 말이 그를 움츠리게 한 것일까? 아니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심각한 만행들에 열기를 빼앗긴 때문일까? 감탄은 무지의 소산이 아니라 풍부한 상상력과 예민한 감수성의 산물이라고 스스로의 생각을 수정하면서도 그는 말을 잇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