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활발했던 문예운동중 노래부분의 활동은 사랑타령과 눈물의 정서에 젖어있는 대중가요에 무방비상태로 노출되어 있던 수용자들에게 생활의 정서가 담긴 건강한 삶의 노래를 들려주어 이전과는 다른 노래문화를 소개했다는 점에서는 성공적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새로운 노래문화가 일부계층에게는 끊임없이 선호되기는 하지만 대중적인 호응은 얻지 못했다. 물론 오랫동안 축적되어온 문화들(그것이 그른 것이라 할지라도) 한 순간에 변화시킬수는 없다. 대중가요를 전면 수용하는 것은 물론 문제가 있지만, 무조건 대중가요를 경시하는 것도 올바른 태도라 할 수 없다.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은 대중가요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분석하여, 수용할 것은 수용하고 버릴 것은 과감히 잘라 버리는 작업일 것이다.
문화저널은 특집으로 대중가요를 다각적인 면에서 고찰해 온 문윤걸(전북대학원․사회학)씨의 소중한 글을 다섯 번으로 나누어 싣는다. ‘대중가요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이글은 <대중가요에 대한 올바른 인식><대중가요의 사회사><대중가요의 생산, 유통, 소비구조><대중가요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의 5개의 작은 주제로 이루어져 있다. 이글이 무심코 많은 대중가요를 접해야만 하는 독자들에게 대중가요를 올바르게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편집자주>
우리는 그동안 우리의 주변에서 끊임없이 생산되어지고 널리 불리워지며 우리의 생활 전반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온 소위 재중문화 그 중에서도 대중가요에 대하여 거의 무의식적으로 수용해 왔다. 우리가 대중가요를 수용하는 직접적이도고 주된 소비자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많은 창작자들(작곡․작사가 및 가수 등)에 의해 생산되고 몇몇 자본가들(음반업자 및 매스미디어등)의 손을 거쳐 잘 꾸며진 상품으로 제공되는 대중가요를 적극적, 주체적으로 수용하지 못한 채 방관하고 그저 무의식적으로 수용하며 침묵함으로써 눈먼 소비자, 잘 길들여진 소비자의 수준에 머무르게 된 것이다.
대중가요가 그 수용자에게 주는 이해(利害)에 관해서 그간 전혀 언급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아직 대중가요가 미래의 주인인 청소년층은 물론 우리의 문화적 현실에 주는 해독성에 대한 인식은 그다지 만족할 만한 수준에 이르지 못했으며 대중가요가 주는 민중현실의 왜곡에 대한 경각심조차도 미미한 것이 사실이다.
그동안 곳곳에서 현 단계 대중가요의 해독을 염려하면서 건강한 노래문화 창출을 위하여 몇가지 노력들이 행해졌고 그것이 민중가요나 일터에서 불리워지는 노동가요 등의 형태로 나타났으나 그러한 노래들이 아직은 특정계층이나 특정한 장소에서만 불리워지는 등 일상성 및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우리의 생활전반에 걸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대중가요에 대해 언제까지나 소홀히 생각할 수는 없으며, 우리가 대중가요의 직접적 수용자이며 그것이 주는 해독에 대한 일차적 대상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대중가요가 노래 본연의 역사성과 문화적 건강성을 회복하기를 기원하면서 우리가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를 함께 생각해보고 고민하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따라서 필자는 어떠한 대안이나 방법을 제시하기보다는 대중가요에 대한 몇가지 문제들을 짤막한 글을 통해 함께 살펴봄으로써 대중가요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그것이 가져다 주는 해독에 대해 철저히 경계하고자 한다. 우선 그 첫 번째 작업으로 우리가 어떻게 대중가요를 수용해야 할 것인지를 함께 생각해보고자 한다.
현대의 문화적 양태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비디오를 포함한 텔레비전과 라디오등을 주축으로 한 매스미디어에 의한 간접적이도고 대량적인 수용양상을 띠고 있다. 이 매스미디어들은 문화를 창조하는 측과 이를 수용하는 층을 동시에 이어주는 매체의 역할을 하고 있는데 매스미디어의 거대한 위세는 문화 수용자층의 주체적 수용을 일체 무시한 채 일방적이고도 수동적인 수용을 강제하기에 이르렀다. 즉 수용자들의 욕구를 무시하고 매스미디어를 장악하고 있는 자들에 의해 선별된 작품들만이 강제적으로 제공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용자층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매스미디어가 제공하는 액자적 현실속에 자신을 함몰시키며 매스미디어가 제공하는 가요방송이나 쇼프로그램에서 보여주고 들려주는 노래에 대해 비정상적으로 뜨거운 열정을 표현하기도 한다.
오늘날 대중가요가 갖는 일상성은 대단한 것이다.
대중가요의 부문별 장르를 불문하고 대중가요는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어느덧 우리의 생활전반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단적인 예로 우리가 택시나 버스 등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할 때도 차내 스피커를 통해 듣는 이의 감정이나 취향에 상관없이 듣기를 강요하며 대중가요는 흘러나오고 있으며 백화점이나 상점에서도 물건을 구매하는 중에도, 거리를 지나다닐 때도, 심지어는 공부중인 학생도, 작업중인 근로자들도 모두 배경음악으로서 대중가요가 깊이 관계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이처럼 대중가요는 우리의 생활에서 완벽한 일상성을 확고하게 구축하고 있는데, 이러한 대중가요의 일상성이 문화의 강력한 전달매체인 매스미디어의 왜곡된 양상과 결합하여 심각한 문화적 해독을 끼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문화의 전달매체인 매스미디어들이 확보된 대중가요의 일상성을 이용하여 선택된 대중가요만을 제공함로써 수용자층의 의식을 구속하고 더 나아가서는 감수성의 왜곡을 통해 문화적 건강성은 변질시키는 등 심각한 해독을 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해독의 책임은 매스미디어 일방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문제의 일차적인 책임은 대중가요의 생산자적 입장에 있는 창작자나 가수 그리고 자본의 힘을 빌어 이들과 결합하는 음반 제작업자들에게 있으며 이를 무비판적으로 무분별하게 수용하는 소비자 및 수용자층에게도 일단의 책임이 있음은 분명한 것이라 하겠다.
오늘날 대중가요는 자본주의적 문화산업의 속성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는데 이는 대중가용의 생산, 유통, 소비체계가 자본주의적 시장구조 안에서 시장원리인 지배를 받으며 물신적 성격을 드러내는 근본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 즉 음악을 창작하는 사람들이 아무리 순수한 동기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이를 상품화하는 과정에서 국가의 지배 이데올로기, 해외 및 국내의 자본, 문화산업자, 유통주체(P.D, D.J, 음반상) 등이 개입하면서 심각하게 변질된 모습으로 소비자에게 제공될 수 있다는 것이며, 그들이 자본주의적 시장원리에 입각하여 잘 팔리는 상품만을 창작자에게 요구할 수 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서 대중가요는 선정적이며 퇴폐적이고 말초적 관심을 자극하여 잘 팔리는 상품으로 변질되어 가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비단 국내의 대중가요뿐만 아니라 수입되는 외국 대중가요(통칭 팝뮤직)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들 외국의 대중음악 역시 주된 소비층이 청소년층이며 그들이 아직 문화적 가치판단의 능력이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못해 거의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고 있음을 볼 때, 이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팝뮤직의 경우 가사가 주는 의미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인해 그것이 주는 퇴폐적, 외설적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여 교육적 역기능을 초래하고 있으며 문화 제국주의적 측면에서 심각한 문화종속현상을 드러내기도 한다. 실례로 최근 몇 년 사이에 대학가를 중심으로 급격히 유행하고 있는 일본의 팝뮤직과 일본 가수를 모방한 옷차림, 화장술 등은 문화적 종속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대중가요의 해독이 하나의 문화적 양식으로서의 노래가 갖는 문화적 가치를 심하게 훼손시키고 있다는 현실에 대한 인식과 반성은 대중가요가 이 땅에 출현하게 된 역사적 조건 및 배경, 대중가요의 발전과정에 대한 사회사적 관심의 증대, 그리고 대중가요가 생산되어지는 과정에서부터 상품화되어 수용자층에게 전달될 때까지의 과정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출발하여야하며, 그러한 인식과 반성을 토대로 대중가요 자체에 대한 음악적 구조, 즉 멜로디나 리듬이 갖는 의미, 가사가 주는 메시지의 의미 등을 재검토하고 기존의 물신적 대중가요에 대하여 수용자층에서 이를 소비자운동의 일환으로 철저히 감시함으로써 우리의 삶의 기반이 되고 있는 문화의 창조적 기능을 회복하고 대중가요가 하나의 문화적 양식으로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는 노래, 문화적 건강성을 되찾는 노래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