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3 | [문화저널]
“하늘로 부치는 편지”
박상범․시인
(2004-01-29 11:59:01)
하늘로 부치는 편지
당신에게 하지 못한 말을
이제야 편지 쓰겠습니다.
이 편지 부치지 않겠습니다.
손때묻은 장독대 뒤편에
나팔꽃송이 당신이 하루종일 앉아서
나의 세간을 세세히 바라보며
무어라 내게 말을 건낸 듯 합니다.
당신은 항상 내곁에 그렇게 앉아 있습니다.
정물같은 당신에게
내 짧은 지난 생애를 돌이켜 보고
눈물짓는 내가 부끄럽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사랑한다는 말조차 건내지 못했습니다.
아니 고백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만남은 짧고
그리움은 참으로 길다는 것을 처음 알겠습니다.
그러므로 이 편지
하늘로 부칩니다.
하늘로 부치는 편지는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뉘우침 하나만으로 행복해지는 법인가 봅니다.
내게 있어서 산은 사람의 목숨과 똑같은 존재로 여겨 왔다. 그래서인지 어려서부터 내게는 산은 모성적인 공간이다. 항상 생명의 티끝같은 것이 모여서 산언덕에 서성거리고 그 생명들의 웅얼거림에 온통 정신을 빼앗기다 보면 왠지 서럽고 눈물이 난다.
내게 있어서 산은 하늘로 이어진다. 내가 현존하는 공간과 무엇인가에 귀의하고 싶은 대상으로서의 하늘. 그 중간에 내겐 산이 있다.
사람이 죽으면 대부분 산에 묻혔던 조상의 오랜 풍습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여튼 산에는 옛조상들이 모여서 이승에서 다하지 못한 사연에 포근한 삶의 신화를 들려주는 곳이다. 그래서 산은 내게 있어서 슬프기도 하고 모태처럼 포근히 느껴지기도 하는 곳이다.
사람은 살면서 참으로 많은 다른 사람을 만난다. 이처럼 인간은 인연과 인연속에서 희노애락의 감정을 맛보며 산다. 그러나 그 인연들은 너무 짧아서 언제 우리가 만나고 헤어지는 줄도 모른 채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 인연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필연적인 만남이든 우연적인 만남이든 내가 지난 인연에 대해 무성 영화처럼 눈앞에 펼쳐 보일 때 나는 오늘도 추억이 가득한 산으로 가고 있다. 그곳에서 장승처럼 서 있을 때 내 생명의 신화를 만나기 위하여.
무주 설천은 경상도와 충청도 그리고 전라도 삼도가 접해 있는 오지다. 그래서인지 말씨가 서로 잘 섞여서 특별한 방언을 빼면 남한 일대 어디를 가더라도 의사 소통이 잘 되는 곳이다. 또한 요즘은 교통이 좋아서 전보다는 각 지방의 풍습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곳이다. 약 이십년전만해도 이웃에서 사람이 다치거나 병이 나면 조상탓으로 돌렸고 조상의 묘자리를 잘못 써서 재앙이 들었다고들 했다. 쉽게 체념했고 쉽게 무기력했다. 무당을 불러 밤새 굿을 하고 떡을 해서 귀신에게 바치고 마을에 전염병이나 큰 불이 나면 돼지를 잡아 동제를 지냈다. 그너라 나는 이러한 풍습을 한번도 경시 해본적이 없다. 오로지 현실과 과거가 교감하는 슬픈 삶과 삶들이 만나는 방법으로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습이나 풍습에서 만들어진 체념이란 사랑이라는 고차원적인 상징이 아닐까.
몇 해전 나의 다정다감하신 큰 당숙께서 숙환으로 운명을 달리 하셨다. 우리의 인습에 의해 꽃상여에 실려 양지바른 산자락에 묻히셨다. 큰당숙께서는 내가 세상에 태어나자 이름 두자를 지어 주셨고 이름대로 선하고 착하게 살으라시며 어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내가 청년이 된 후에도 친구를 잘못 사귀어 방탕할까봐 자주 나를 불러 앉혀 놓고 나를 깨우쳐 주시던 분이다. 사실 나는 방탕했었고 큰 당숙의 간절한 보살핌에 힘입어 사람다운 사람이 되려고 무던히 애써 왔다. 나는 지금도 어려운 고통에 휩싸이게 되면 큰 당숙의 따뜻한 얼굴을 떠올리곤 한다.
큰당숙은 한학에 밝으셨고 젊어서는 시골에서 양의사를 하셨던 평범한 분이셨다. 그리고 육 이오때는 죽어 가는 빨치산을 불쌍히 여겨 치료해주신 것이 화근이 되어 양의사 자격을 박탈당하신 정이 많으신 분이었다. 칠순이 넘어 중풍에 몸져 누워 계실 때에는 내가 대학을 다니던 때라 자주 찾아 뵙지 못했다. 어쩌다 한번씩 찾아뵈면 야윈 손으로 내 팔을 잡으시며 ‘왜 자주 안오느냐. 가지말고 옆에 있어 달라’며 눈물을 흘리시던 분이었다.
당숙께서 세상을 뜨셨을 때 나는 상여를 따라 가지 못하고 지금의 고향집 뒤뜰에 서서 남몰래 울었었다. 그때가 여름이라 장독대 뒤로 나팔꽃이 고개를 내밀었고 그 꽃잎이 참혹하도록 붉었다. 지금도 고향집에서 살고 있는 나는 어디서든지 그 나팔꽃을 볼 수 있다. 그런 나팔꽃을 만나면 내게 무어라 중얼거린다. 힘들수록 선하고 착하게 살라고 하시는 큰당숙을 마치 마주 대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나는 지금에 와서야 큰당숙의 사랑을 새삼 고맙게 느끼며 그분을 그리워 하게 되었다.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고향이 있다. 그 고향은 가난하나 넉넉하게 느껴지고 가고 없는 사람들의 정신이 살아 있어서 정기를 더욱 맑게 한다. 그래서 살아 있는 생명이면 모두 찾아 가고 싶은 곳. 그곳을 고향이라 부른다. 나는 지금도 그분들이 우리의 곁에 함께 살아 있어서 같이 숨쉬고 같이 느끼며 우리를 어디론가 끌어 가고 있는 힘이라 믿는다. 우리가 가는 곳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신화가 무진장 가득한 생명의 마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