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3 | [사람과사람]
소비자고발센터 김보금씨
-소비자 문제를 시민운동으로 이끌어내기까지-
김시은․전라일보 문화부 기자
(2004-01-29 12:00:49)
창을 통해 스며드는 햇살이 다사로운 2월 어느 토요일, 시내 찻집에서 어색한 만남이 시도됐다.
사나흘이 멀다않고 만나거나 전화 통화라도 해야 직성이 풀리는 막역한 사이인데도 그 만남이 어색하기 그지없었던 것은 한 쪽은 취재하는 입장이었고 다른 쪽은 취재당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기실 둘 사이의 입장은 한쪽은 매일 펜대를 굴리는 일을 업으로 하고 있고, 한쪽은 취재원으로 거의 매일 기자와 만나 취재당하는 실정이라 좀에 배였을 법도 한데 그날의 사정이 달랐던 것은 취재 대상이 본인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역사가 일천한 소비자 문제를 하나의 여성운동으로 또는 경제 활동으로 때로는 시민운동등으로 꾸준히 전개시키면서 소비자 운동이라는 하나의 영역을 개척한 김보금씨(36)는 전북지역 수십만, 수백만 소비자의 대모이다.
대한주부클럽연합회 전북지부 소비자고발센터 총무로 평상시 그가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소비자에게 조금이라도 피해가 가지 않도록 제조처 혹은 판매처 담당자와 맞서는 것이 여간 매섭고 날카로운게 아니다.
이러이러한 상태로 이러이러한 결함이 있으니 마땅히 책임을 져야하지 않습니까. 때로는 협박, 공갈도 받고, 때로는 힘센자의 폭력행사 일보직전에서 오들오들 떨던 적도 있었다.
그것은 전북지역처럼 보수적이고 낙후된 곳에서 특히나 소비자 문제라는 일반인에게 인식조차 안된 생소한 분야를 다루는 솜씨가 여자라는 사실 때문에 가해지는 불이익이기도 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불모지대에서 소비자의 싹을 틔워 전국에서 민간단체주도의 소비자 고발센터가 제일 많은 지방으로 성장하게 된 것은 김보금씨 혼자의 힘으로 이뤄냈다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고 중앙에서도 전북의 소비자운동이 활발하다는 사실을 김보금씨를 통해 여러차례 입증한 바 있다.
그런데 그것은 표면으로 드러난 결과론적 얘기고 소비자운동의 산증인 김보금씨가 헤처나온 지난 얘기좀 들어보자는 데 김씨는 “부끄럽다”며 한사코 고사한다.
그러나 취재도 취조도 아닌 얘기를 통해 김씨의 내면세계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는데 얘기의 주제가 바로 “소비자 운동에 관해서”였다.
취재에는 응하지 않겠다고 완강히 버티던 김씨가 갑자기 생기를 띄며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삼례에 소단위 모임이 있어 강의 갔다가 5백원짜리 좌석버스 타고 오는데 웬 차가 그리 많은지 저 차를 갖고 있는 사람 전부가 꼭 차가 필요해서 타고다니는지 모르겠다”며 “다소 내가 불편하고 힘들어도 차를 사지 않고 대중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것이 공해를 줄이고 교통문제 해결에 일조하는 길임을 다시 확인했다”는 말부터 여타의 문제점과 대책방안 실천 내용등이 술술 풀려나오는 것이었다.
김씨는 그만큼 철저한 소비자 운동가였다.
김보금씨가 처음 소비자운동과 접하게 된 것은 8년전인 1984년. 중학교 무용교사이던 김씨는 결혼과 더불어 학교를 그만뒀으나 다시 뭔가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대한주부클럽 전주지부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누구나 처음 일을 시작하는 사람은 마찬가지겠지만 김보금씨 역시 산재해 있는 많은 문제와 부딪쳐야 했다.
가장 시급한 것은 일반 시민의 의식 구조. 우리나라 소비자운동의 역사가 그다지 길지 않고 지방이라는 불리한 여건 때문에 대도시에 비해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적어 인식이 부족한데다 전북지역같이 보수적인 곳에서는 첩첩산중이었다.
김씨가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순회강연을 통한 소비자의 의식 교육이었다. 배타적이고 불신감이 많은 소비자와 일일이 부딪치면서 그들을 계몽하고 현장에서 직접 소비자 고발을 접수하면서 차근차근 해결해 나갔다.
그간 권리주장에 익숙치 못했던 소비자들은 많은 피해를 입고서도 피해를 감수해왔는데 소비자고발센터를 통해 비로소 소비자의 권리에 눈뜨게 되었다.
전화로 고발을 해놓고도 어떤 불이익이 오지 않을까 염려하여 자신은 드러내놓기 꺼려하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고발센터를 찾아오고 소비자 문제가 아닌 다른 분야의 문제까지 들고와 담당자를 곤혹스럽게 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어떤 할아버지는 버스를 세워 주지 않는다며 운전기사를 처벌해달라고 김제에서 시외전화를 하기도 하고, 어떤 주부는 쌍꺼풀 수술이 잘못됐는데 보상 받을 수 없겠느냐고 찾아 오기도 한다.
심지어 시시콜콜한 아랫집 윗집싸움이나 부부싸움까지도 고발센터로 찾아와 중재를 부탁하기도 할 정도. 김씨는 일손이 바쁜 가운데도 이러한 사람들을 일일이 상담해 주고 관계기관이나 단체를 소개해준다.
얼마나 답답하고 갈데가 없으면 소비자고발센터를 찾았겠느냐며 그 사람들이 소비자고발센터를 찾아준 것만도 고맙다고 생각하면서. 물론 시민들의 고발센터에 대한 신뢰와 믿음은 거저 얻어진게 아니었다. 성실한 마음으로 교육과 홍보에 끊임없이 나섰고 불량상품전시회 등을 통해 불량상품이 소비자와 국가경제에 얼마나 많은 손실을 끼치는지 간접적으로 암시했다.
86년에는 전주지역 금반지와 금목걸이를 수거, 중량검사를 실시하여 대부분 제품이 미달임을 밝혀내고 전주의 명물인 풍남문 마크가 부착된 제품이 품질보증서임을 정착시켰다.
또 물가조사, 생필품 판매점 가격비교조사 실량검사 각종 상품 테스트 등을 수시로 실시, 믿고 살수 있는 풍토조성에 앞장서왔다.
한때 판매실태 보도와 관련 이해관계가 얽힌 판매관계자들이 고발센터를 점거, 농성을 벌여 군고구마 사들고 다방에 피난갔던 일을 자주 떠올리곤 하는 김씨는 업자와 시달릴 때 열두번도 더 그만두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소비자 문제에 대한 확실한 신념을 갖고 판매측도 소비자임을 환기시키며 소비자의 신뢰를 얻어야 결과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것 아느겠느냐며 굽히지 않고 맞서온 것이 오늘에 이르게 됐다.
김씨는 최근 들어 특히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고 홍보 및 교육에 주력하고 있다.
참된 소비자 운동은 곧 인간성 회복운동이라고 누누이 강조해 온 김씨는 후손들에게 물려줄 것이라곤 맑은 공기, 오염없는 물 뿐이라며 모임마다 부지런히 쫓아 다닌다. 일전 여성회관에서 파출부교육을 실시할 땐 일부러 자원을 해서 강의를 맡아 실질적으로 가정생활에 임하는 여성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했고 주부들 모임에 나가 환경오염추방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어디든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달려가 한사람이라도 자신의 말에 공감하고 실천하면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 김씨는 지난해 폐놀유출사건 때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 “어떤 정수기가 좋냐”고 물어오던 것보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물을 깨끗이 할 수 있겠느냐”고 물을 때까지 교육을 계속할 생각이란다.
또 올해는 쓰레기 분리수거와 관련, 재활용품 활용에 역점을 두고 매주 토요일은 중고용품 상설매장 마련과 항제우유팩 모으기 운동을 펼칠 계획이다. 2백리터들이 팩 40개면 두루마리 화장지 1개를 재생산할 수 있는데 이를 실천할 수 있게 하자는 것. 이미 교육청에 공문을 띄워 급식이 이뤄지고 있는 학교에 대한 협조도 요청해뒀다.
40명이 급식하는 학급은 두루마리 화장지가 하루 1개씩이고 일주일이면 6개 한달이면 24개라는 계산으로 공해방지와 쓰레기도 자원이 된다는 사실을 학생들이 실천으로 옮겨갈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이런 아이디어를 김씨는 혼자서 개발해내고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한다. 그리고 혼자 몸으로 뛰는 것이다.
지난해부터는 남편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가는데만 하루 반나절이 소요되는 대구계명대 여성학대학원 소비자학과에 적을 두고 체계적인 이론공부까지 겸하고 있으니 대단한 여성이라고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각종 연수 및 기업체 자체연수에서 소비자과목이 공식 강의로 채택될 수 있게 발로 뛰어온 김보금씨는 나이를 생각해서 스스로 약도 먹고 해얄텐데 어른(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왠지 사치하는 것 같아 망설여진다고 고백할만큼 효부이기도 하다.
국민학교 3학년인 아름이와 국민학교에 입학하는 다운이 엄마이기도 한 그는 아이들이 자동차를 사자고 난리여서 조근조근 살수 없는 입장에 대해 설명하는데도 아이들이 점차 현실과 어머니 교육과의 사이에서 괴리를 느끼게 되는 것 같다고 염려한다.
로숀 바르는 것조차도 서너번씩 생각하고 바른다는 김보금씨는 소비자문제를 생각하고 실천하며 시민운동차원으로 확산시켜온 철저한 소비자운동가이다.
“근데 사은씨, 우리 얘기한거 기사나는거 아니죠? 기사내면 안돼요”
서너번씩 꼭꼭 다짐하고 월요일 출장에 대비, 돼지고기 장조림이라도 한다며 장을 보러 가는 그녀를 보며 왠지 참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그 얘기까지 쓰고 말거라고 그때 이미 생각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