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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3 | [특집]
대중에게 친근한 예술로 춤이 자리하려면
한혜리․무용평론가․원광대 강사 (2004-01-29 12:05:00)
92년은 문화부가 제정한 춤의 해이다. 무용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속해 있는 각 분야에서 나름대로 이번 행사가 내실을 기한 도약의 기회가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대중은 그들에게 무용이 즐거움을 선사해주기를, 또한 무용예술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고 그것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원할 것이다. 공연예술에 종사하는 많은 무용인들은 그들이 지금까지 치루었던 공연을 통해 작품세계를 이룩하기까지 감수해야만 했던 내부적, 외부적 악조건들의 개선을 일반대중에게 알리고 싶을 것이며, 학계에서의 불안한 위치를 굳건히 하기 위해 무용학계도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무용에 있어 이러한 두 중추분야의 위치 불안과 권리의 미 확보 상태에서 무용계에서 대중의 일반생활에서의 춤의 기여도를 추궁하거나 대중적인 작품을 구분하여 전문적으로 분석하고 개발하기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한 일이었다는 것을 먼저 말해두고 싶다. 이번 춤의 해는 첫 번째의 정부 주관 행사로 재정적, 언론적지원의 기회를 무용계가 맞게 되었다. 공연예술중에서 무용이 무엇보다도 대중에게 직접적으로 쉽게 다가갈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서, 그리고 잠재해 있을 대중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으려면 반드시 조성되어야만 할 사회 환경 및 여건이 있다. 공연물에 따른 기존한 극장의 다양화 단지 몇 개에 불과한 극장에 모든 예술이 의존하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지금이라고 해서 공연예술분야의 입장에서 볼 때 그리 만족한 수준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특히, 지방도시의 경우는 지난날의 열악한 환경과 조금도 다를바가 없는 곳도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고 그 영향에 의해서인지는 모르지만 국내에서도 기존한 극장의 특성이 조금씩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극장 나름대로의 공연작품 특성에 따른 공연일정기획은 극장 자체가 가진 공신력으로, 그 극장을 찾는 사람들의 작품선택 수준의 중요한 척도가 되고 있으며 바람직한 현상이기도 하다. 극장마다 특성이 다른 공연의 기획은 대중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주며 나아가서는 대중들의 욕구와 기대에 보다 정확한 만족의 기회를 제공해 주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날 대중의 취향은 다양하다. 그리고 따라서 그들이 무용작품에 거는 기대도 다양하며 그에 못지 않게 무용의 종류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어떤 관객은 불거리를 제공해주는 대형공연을 보면서 작품을 이루는 복잡한 구성 요소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작품의 완성도를 느끼고 싶어하며, 또 다른 층은 개인주의가 팽배한 현대사회에서 친국를 만나는 기분으로 작가가 하는 얘기를 듣고져 무용공연을 감상하기도 하며, 일부관객이나 전문인은 신선한 충격을 기대하며 소극장의 실험적인 무용공연을 선호하기도 한다. 이러한 다양한 관객의 취향을 한 종류의 무용이 모두 만족시킬 수 없듯이 한 극장이 이러한 다양한 욕구의 관객을 모두 흡수하여 만족을 줄 수는 또한 없는 것이다. 따라서 극장이 이러한 다양한 관객층에서 특수층만을 겨냥하여 흡수한다면 그것은 관객의 선택에 있어서는 위험부담을 줄여주는 일인 동시에 만족도나 기대수준에 있어 좋은 수치를 기록할 확률도 높아질 것이다. 작품 창작인의 입장에서는 작품의 성격에 따른 극장의 선택이 가능해지는 것은 물론 그 극장의 기능활용에 관객층의 수준이나 욕구에 대한 것이 포함되므로 보다 작품 창작 동기나 목적에 충실한 작품제작이 가능해 지게 된다. 즉, 국립극장에서는 주로 국내 단체의 고전적인 작품들이 공연되고, 세종문화회관같은 대형극장이기는 하지만 주로 외국초청단체의 대형공연이 이루어지며, 문예대극장은 국내․외 중견단체의 창작물이 올려지고 소극장은 그 마다 국내 젊은 신인의 개인적 발표가 행해지고 또 다른 곳은 실험적인 무용공연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인식을 대중에게 심어준다면 그보다 더 좋은 영구적인 공연 선전은 없을 것이다. 오늘날 대중은 같은 돈을 가지고 영화도, 연극도, 오페라도 그리고 연주회장도 미술이나 조각 전시장도 물론 무용공연장도 선택할 수 있다. 문제는 그들이 원하는 때에 그들이 요구하는 기대를 만족 시킬 수 있어야 대중에게 잊혀지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현대의 대중은 예술가 개인을 만나기 보다는 그의 작품을 통해 그리고 그가 던지는 메시지를 통해 그를 알고자 하는 것이다. 이전보다 예술가의 수도 공연수도 급증하였다. 어떤 한 특정 예술인을 기억하고 그의 작품을 기다리거나 그것을 보러 찾아 다닐 만큼 현대의 대중은 단순한 삶을 살지도, 또 욕구가 단순하지도 않은데 일부 특수계층만을 겨냥한 채 순수 예술의 질만을 고집한 채 고정된 양식을 고집해서도 안되는 것이다. 조금 더 넓게 생각한다면 다른 예술분야와 동등한 여건과 물량으로 대중들이, 접하기 쉬운 곳에 존재하고 있어야 하며 조금 더 욕심을 내자면 대중의 다양한 욕구를 만족시키는데 있어 타 예술보다 무용이 우선이라는 선택을 받는 것이다. 따라서 극장이 대중과 가까이 있지 못하고, 무용예술에 대한 공신력을 소유하지 못한다면 대중에게서 멀어질 수 밖에 없다. 이러한 극장의 특성화를 도와주고 대중에게 공신력을 갖게 하는데는 무용작품의 질이 필수적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나 개인이 대중에게 잊혀지는 것이 두려워서 질낮은 공연을 연례적으로 계속하는 개인의 욕심이 무용예술계 관객을 잃어버리게 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이며, 이제는 대중에게 열려 있는 극장이라는 공간을 현명하게 사용할 수 있는 능력 또한 무용인에게는 요구된다. 무분별한 대극장 선호사상이나 소극장이 마치 대극장 대여에서 제외된 단체의 공연장이 되어서는 그 극장의 기능을 다하지 못하게 만드는 결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매스컴의 책임과 역할 현대는 정보와 출판의 시대이다. 현대인은 모든 것을 인쇄매체를 통하여 접하고 있으며 복잡하고 다양한 생활속에서 그들이 익숙해진 것은 정보이다. 이것이 없이 무슨일을 행할 여유도 용기도 없어져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면 예술분야도 여기에 보조를 맞추어야만 할 것이다. 출판 매체나 언론을 통하지 않고는 어떠한 붐도 조성할 수 없으며 지식도 가치도 전달 할 수 없는 사회에서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이 신문이나 잡지가 공식적인 공연 광고의 역할만을 고수한다면 무용공연에 대한 더 이상의 대중의 인식이나 이해의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대중들이 매일 보는 신물이 조금이라도 독자의 풍요한 삶의 질을 높이려는 노력도 그들의 의무라고 받아 들인다면 공연 공고 이외에 공고 되고 선전된 공연물에 대한 대중의 바른 이해와 판단을 위해 작품 자체에 대한 비평의 게재는 어렵더라도 시평정도는 필수적인 것이다. 특히 외국단체의 초청공연일 경우에는 그것에 대한 사전지식의 수용과 태도에 있어 길잡이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것은 무용예술의 장래와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책임의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또 다른 사회적 대중적 의식의 측면에서는 문화적인 긍지를 뒷받침 할 대중의 취향을 고양시키는데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매스콤의 파워도 자각해야만 한다. 무용작품의 감상과 이해의 작업에 있어 그 방법과 판단기준의 무지는 교육에 앞서 매스컴의 책임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한번도 무용 작품을 볼 기회가 없는 소도시나, 지방의 대중들에게 그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는 것은 매스컴이며, 그 중에서도 TV의 힘은 상당한 것이다. 문화적 예술적 삶이 도시인이나 수도권 지역 대중만의 특권은 아니다. 실지 무용예술의 감상기회가 여기저기 널려있는 환경의 대중들에게는 그것을 바르게 감상하고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여 제공되고 있는 예술작품이 주는 즐거움을 보다 많은 사람이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매스컴은 담당하여야 하며 도시인과 같은 삶의 질을 누리지 못하는 환경의 대중을 위해서는 매스콤이 분위기를 조성하여 그 지역 자체의 무용공연 활성화를 위한 일을 해내야 할 것이다. 올해 춤의 해를 맞아 보다 많은 사람이 무용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은 대중들의 삶이 행복하고 풍요로와지는데 큰 보탬이 될 수 있는 요소를 무용예술이 지니고 있으며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많은 무용인의 궁극적인 바램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지역 춤문화가 나가야 할 방향 신경옥․현대무용단 「사포」대표 문화부에서 ‘92년을 ’춤의 해‘로 지정한 이후 요즘은 주위에서 춤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보는 사람마다 춤이 어떻고 만나는 이마다 올해의 계획을 묻는다. 춤이 무관심속에서 굴절된 시간을 지나 이제야 많은 이의 관심을 모두어 이런 행사가 주어진다 생각하니 안타까운 가운데 다행스럽고 여간 경사스러운게 아니다. 특정 소수민들에게만 관심의 대상이었던 예술-특히 무용은 서울올림픽을 치루고 나서야 관심의 척도가 좀 높아졌다고나 할까. 서울올림픽 행사를 치루면서 또는 보면서 춤이 삶의 비중에서 얼마나 중요한 몫을 담당하는지 새삼스럽게 느끼는 부분이 많았으리라 본다. 우리 생활안에 깊이 침투하고 있으면서도 가장 먼곳에 동떨어져 있는 춤의 文化. 인간은 누구나 원초적인 움직임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특정인만의 예술로, 무용을 행하고 취하는 자의 불가침 영역쯤으로 몰아버린 세태-이러한 요인들이 대중들로부터 외면 당하고 접하기 힘든 예술이 되어 버린 것이다. 총체적인 예술이 집약되어 있는 서울의 경우에만도 이러한 현상은 두르러지고 지방으로 갈수록 더욱 심화되는 현상이다. 무용이 대중의 삶을 가장 진솔하게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이면서도 대중으로부터 왜 소외되어야 했는지 몇가지 문제점을 지적, 개선방안을 생각해 보기로 한다. ‘예향의 도시-전북’ 삶의 애환과 서민의 풍자가 있고 한국인의 가락과 멋의 향흔이 그 어느곳보다도 으뜸이요, 많은 명인이 배출된 곳이기도 하다. 선조들의 춤과 가락이 뿌리내리고 전라북도내에 대학 무용과가 신설된 지도 열두해가 되었고 타대학 및 후기대를 비롯 졸업생의 수는 매년 증가되는 데 이들을 수용하고 인재를 발굴, 양성할 만한 직업적인 기관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우리 지역의 안타까운 현실이며 크나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상황으로 우리 고장에서 배출된 재능있는 자들이 다른 시․도로 빠져 나가고 있다. 인접해 있는 광주, 대전만 해도 직업무용단이 존속하므로 많은 이들이 선호하며 기회를 찾고자 한다. 이 지역 출신 예술인들을 우리 모두가 거두고 지켜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도립의 전문적인 직업무용단 설립이 절실히 요구된다. 지금 전북의 무용계는 신세대의 의욕적인 활동으로 주축의 판도가 달라져 가는 양상이다. 개인위주의 한국무용 일색으로 다른 장르의 공연이 균형을 이루지 못해 다른 지역에서 단체나 개인을 초청하는 등 편파적인 면이 많았던 무용계의 흐름은 다양한 양식의 공연이 행해지는 지금 까지도 체계가 정착되지 못하였고 대중화에 근접하기 보다는 나름대로 독자적인 해석에 그치고 말아 무용의 대중화가 시급하면서도 요원한 입장이다. 관객과의 공감대를 갖기 위해서 젊은 춤꾼들은 다양한 공연무대를 기획하고 있지만 이러한 공연이 이들 개개인 단체들만의 사적인 행사로 그치고 말아 여러 방면에서 의욕에 못미치는 역부족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대중들에게 인식되고 공감되기 위해서는 그들과 자주 접하고 많은 관계를 가져야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언제 어디서든 꾸준한 공연이 지속되어 개인이든 단체든 관객과의 만남을 통해 한걸음 다가서는 진보가 필요하다고 본다.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신진세대들의 노력을 뒷받침해 줄만한 여건조성이 아쉬운 실정이다. 춤을 출 수 있는 대극장이 부족하고 기존의 소극장도 춤을 출만한 공간으로 부적합하다. 무용은 타예술과 달리 공간을 필요로 하는 만큼 춤을 출 수 잇도록 배려된 전용소극장이 시급하다. 소극장 공연이 활성화되어 관객들이 무용을 자주 접하게 되고 인식의 폭도 넓히게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또한 이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예술에 대한 인식부족에서 오는 어려움으로, 관계자들이 예술과는 무관하여 그들이 보여주는 융통성없는 행정과 규제에서 공연때마다 느끼는 난감함은 감출 길이 없다. 아울러 공연장 대관료는 시설, 사용면에서 개선됨이 없이 서울이나 대도시보다 월등하게 차이를 보여 개인이나 소그룹 공연단체가 자주 공연장을 이용하기엔 벅차기만 하다. 지금까지는 열악한 조건속에서도 무용이 무대에 올려졌으나 이제는 기업, 국가 모두 춤의 해를 계기로 남다른 관심속에 동참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기업과 순수예술인과의 연계가 원활하게 이뤄지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내실을 기하는 짜임새있는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 지역에는 큰 규모의 기업체는 많아도 무용을 지원하는 기업은 하나도 없다. 임시방편으로 일시적인 지원을 하는 경우가 간혹 있으나 예술인들의 자긍심을 무시하고 적선하는 식의 기업인의 자세는 개탄스럽기까지 하다. 단체가 창단되고 존속하기 위해서는 예술인 혼자만의 노력이 전부는 아니다. 순수예술인은 차작하고 실험하며 쉬임없이 도전해 보는 것이며 협회나 기업, 국가에서는 이들의 창작의욕을 고취시킬 수 있는 꾸준하고 점진적인 지원방안이 전개되어야만 한다. 무용은 종합예술로서 안무자 스스로 춤추고 제작하고 감독하고 연출하는 1인다역의 역할을 작품안에서 담당하였기에 관객을 찾아 다니고 홍보하는 차원에서는 체계적이지도 못하고 무리가 따른다. 이제는 지방에도 무용공연을 분야별로 세분화하여 전문인에게 의뢰를 하고 춤꾼은 춤을 추고 공연예술을 담당하는 전문이벤트 사업이 추진되는 각 분야의 전문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바라건데, 춤의 해인 ‘92년에만 국한되는 풍성한 행사가 아닌, 일대 도약으로 삼는 계기를 마련, 야외는 야외대로 대중을 찾고 소극장은 소극장대로 대중을 만나며 대극장은 대극장대로 관객을 맞이하여 꾸준한 레파토리로 언제든 관객이 원하는 공연을 선택해서 볼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고 기업은 기업나름대로 국가는 지원행정을 고려하여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동참하여 무용을 활성화 하는데 앞장서기를 고대한다. 또한 무용협회측에서도 창작활동을 하는 이들의 손과 발이 되어 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러한 상황과 여건속에서 공연이 진행된다면 감상하는 관객의 애정이나 자질 또한 격상될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 춤을 출 수 있는 여건과 무용인에 대한 배려가 조금이라도 개선되고 모두의 관심이 모아진다면 창작의욕에 심취되어 있는 젊은 무용인과 예술인 모두의 기쁨이요, 도약의 발판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노력이 헛되지 않는 보람된 미래를 기약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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