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범을 신령한 동물로 여겨왔다. 그래서 범은 산신 그자체이거나 산신을 태우고 다니는 동물로 생각되기도 하였고 범이 인간으로 화해 인간과 결혼하거나 인간과 관계를 맺었던 설화들이 많이 전한다. 여기에 그 중 하나를 요약하여 소개해 보기로 한다.
옛날 영주 땅 어느 산골에 ‘석용팔’이라는 농부가 살고 있었다. 그는 성격이 아주 온순하였으나 가세는 가난하였다. 나이 사십이 넘도록 자식이 없는데다가 아내는 몹시 포악하고 남편을 학대했다. 어느날 아내의 학대를 견디다 못한 용팔은 하는 수 없이 집을 나가 뒷산 바위 밑을 찾아가 밤을 세우기로 했다. 이 바위는 예부터 범이 와서 울었다 하여 범바위라 불렀다. 한참동안 한숨을 쉬며 앉아 있노라니 문득 맞은편 큰 나무 눈썹을 하나 뽑아주며 “이것을 눈에다 대고 나를 한번 보게‘하였다. 그 말대로 그 눈썹을 눈에 대고 중을 바라보니 한 마리의 큰 범이었다. 깜짝 놀라 눈썹을 떼고 바라보니 전과 똑같은 늙은 중이었다. 중은 ” 나는 본래 태백산에 사는 범인데 바람 쐬러 이곳에 왔다가 배가 고파 먹을 것을 찾고 있네. 나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아무 것이나 먹지 않고 다만 개만을 먹을 뿐이야. 사람이 사람ml 모양을 하고 있다 해서 모둔 사람이 아니고, 그 중에는 개도 있고, 돼지도, 또 다른 짐승도 있어서 참사람은 얼마 되지 않네. 자네 아내는 아마 짐승인 듯하니, 그 눈썹으로 보아 사람이 아니거든 곧 헤어져 팔공산 밑 ’아지‘라는 마을에 가면 한 과부가 있으니 그녀와 함께 살면 앞길이 트일꺼야“라고 말했다. 중과 헤어져 집에 돌아온 용팔은 범의 눈썹을 통하여 아내를 바라보니, 과연 한 마리의 암퇘지였다. 그는 곧 집을 나와 범이 지시한 대로 팔공산 밑 과부에게로 가서 그녀와 함께 부부의 연을 맺었다. 모든 일이 뜻대로 잘 되었고, 생활에도 여유가 생겼다. 몇 년이 지난후 용팔은 서울구경을 하러 봇짐을 꾸려 집을 나섰다. 한 시골을 지나려니, 농부들이 떼를 지어 있는 것을 보고 범의 눈썹을 꺼내어 살펴보았다. 그 중에는 짐승도 더러 섞여 있기는 했으나, 대부분은 진짜 사람이었다. 한양에 당도하여 큰 기와집 문간에서 하룻밤 묵어 갈 것을 창했으나 거절을 당했다. 그 집 주인을 범의 눈썹을 통해 보니, 살이 뚱뚱한 한 마리의 돼지였다. 이튿날 네거리에 서서 바라보니, 화려한 차림으로 큰 수레를 타고 가는 돼지가 사람을 호령하기도 하였고 작은 돼지, 큰 개등 갖가지 짐승들이 활개를 치고 다니는데 사람은 가뭄에 콩나 듯 드물게 하나씩 눈에 띄었다.
위의 설화 속에서 인간을 투시할 수 있는 범 눈썹의 신기함이 우리의 관심을 끌거니와 도시의 관료나 부유층 중에 사람 아닌 사람이 탈을 쓴 자가 많음에 비해, 시골의 농부들 중에는 오히려 참사람이 많다는 풍자적 이야기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조선시대 대표적 실학자의 한 사람이요, 소설가이기도 했던 연암 박지원의 「호질」은 범을 통해 당시의 위선적인 도학자들의 실상을 신랄하게 풍자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위선적인 도학자 북곽선생을 꾸짖는 범의 말은 곧 연암 박지원의 말이다. 박지원은 위의 설화속에 나오는 범의 눈썹을 통해서 인간들의 실상을 바라보고, 이를 통렬히 질책하고 있는 것이다. 범이 북곽선생 앞에서 인간들에 대해 질책하는 내용 중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대저 제것이 아닌 것을 취함을 도(盜)라 하고, 남을 못살게 굴고 생명을 빼앗는 것을 적(賊)이라 하거늘 너희들은 밤낮으로 팔을 걷어붙이고, 눈을 부릅뜨며, 남의 것을 빼앗고 훔치면서도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 심지어는 돈을 형이라 부르고 장수가 되기 위해 아내를 죽이니 인륜의 도를 논할 수 가 없다 뿐만 아니라 메뚜기에게서 식량을 빼앗고, 누에한테서 옷을 빼앗으며, 벌을 쫓아내고 꿀을 긁어먹는다. 심지어는 개미의 알을 젖담아 그 조상에게 제사하니 그 잔인하고 박덕함이 너희보다 더 할 자가 있겠느냐?….
위의 글에서 인간은 조선시대에 여러 계층중에서 유일하게 완전하 인간으로 대접을 받았던 양반들. 곧 권력과 학식과 부를 소유했던 계층을 말한다. 그리고 메뚜기나 누에, 벌, 그리고 개미는 그 양반들에 의해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았던 하층민들이다. 여기서 박지원은 힘없는 백성들을 착취하고 돈을 숭상하며, 출세를 위해서 인륜을 버리는 조선시대의 가진 자들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다. '맹자'에 의하면 군자(양반)가 직접 밭을 갈지 않고서도 먹고 사는 것은 그가 나라를 편안하고 부하게 하며, 아랫사람에게 인간이 살아가는 도리를 잘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라 한다. 그런데 조선시대의 양반들은 백성들을 부하게 하는 대신 그들을 착취했으며, 교화하기보다는 그들 스스로가 더 악독한 행동을 일삼았으니 양심적인 지식인 연암 박지원은 이를 그냥 간과할 수 없어 그들을 풍자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이런 현상이 어찌 조선시대에만 있었겠는가. 오늘날의 정치인이나 기업인들, 그리고 지식인들은 조선시대의 양반들이 누리던 혜택을 그대로 누리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의 실상은 어떤가 범이 다시 그들앞에 선다면 어떤 질책을 할 것인가. 박지원은 “선비가 독서를 하면 그 은택이 사해에 미치고, 그 공이 만세에 드리운다” 고했다. 이말은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말하고 있다. 이 당위성에 의하면 오늘날 기업인이 기업을 하면 그 은택이 온 백성에게 미치고, 그 공이 만세에 드리워져야 한다. 정치인이 정치를 하고 학자가 학문을 하면 역시 그 은택이 온 백성에게 미치고, 그 공이 만세에 드리워져야 한다. 정치인이 정치를 하고 학자가 학문을 하면 역시 그 은택이 온 백성에게 미치고 그 공이 만세에 드리워져야 한다. 그러나 기업인들은 땅투기나 하고 노동을 착취하여 개인의 부를 축적하기에 바쁘고 정치인들은 정권욕에 사로잡혀 백성을 외면하는가 하면 사리사욕을 채우기에 급급하다. 지식인들은 지식을 팔아 명예와 돈을 사고자 하니 참으로 한심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최근에 일어난 국회의원 뇌물외유사건, 수서사건, 대학의 입시부정, 낙동강의 페놀 수질오염등 일련의 사건들은 겉으로 드러난 것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이 땅의 가진자들의 추악한 모습이다. 범의 눈썹을 통해 본다면 그들은 모두 돼지나 개, 늑대일 것이다. 겉으로 인간의 탈을 쓴 짐승들이 인간을 호령하고 그 위에 군림하고 있으니 참 인간들은 다만 고통속에서 신음하며, 한숨만 쉴 뿐이다.
인간사회에 인간보다 짐승이 더 많다면 그것은 진정한 인간의 사회라 할 수 없다. 인간들이 짐승의 노예가 되어 산다 해도 그것 또한 인간다운 사회가 될 수는 없다. 우리는 우리 인간 사회에서 짐승들을 추방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먼저 참인간과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을 구별할 수 있는 범의 눈썹을 달아야 한다. 그리고 그 눈썹을 통해 나 자신을 비롯한 모든 인간들의 진짜 모습을 보아야 한다. 그리고 인간의 허울만을 쓴 가짜 인간들을 이 사회에서 추방해야 한다. 그래야 이 땅이 순수한 인간들만이 모여사는 참 인간세상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