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5 | [문화저널]
개에 얽힌 글자풀이
황안웅․향토 사학자
(2004-01-29 12:10:21)
개를 생각하면 우선 중학교 시절 영어시간에 익혔던 한 토막의 문장 "어 도그 이스 어 유스풀 애니멀" (A dog is a useful animal) 이 생각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말은 단순히 영어문법을 익히기 위해 등장된 예문 이상의 의미로 서양인들은 개를 매우 유용한 동물로 믿고 산다는 그들의 생활철학까지를 나타낸 말이라 여겨진다.
개는 분명 유용한 동물이다. 그 까닭은 사람이 삶을 꾸리기 위해 힘센 동물을 잡아 먹지 않으면 안될 저 수렵시대로부터 개는 사람을 도와 사냥의 앞잡이로 길들여져 왔기에 개야말로 아주 원시적으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매우 유용한 동물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 정확한 증거가 바로 "수렵(狩獵)"이라는 단어속에 남아 있다.
① 「사냥할 렵」(獵)자는 사람의 곁에 있다가 사냥물이 나타나면 머리털을 곤두세우고, 잔뜩 몸을 웅크린 채 사냥물을 노리고 있는 개의 모습을 나타낸 글자다.
② 「사냥할 수」(狩)자는 고대로부터 사냥은 삶의 한 수단이었을 뿐만 아니라 왕이 친히 국경을 둘러 볼 때마다 힘자랑의 방편으로 으레히 개를 앞세워 대규모의 사냥행사를 벌렸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글자다. 본디 개는 맹수로 분류되어 왔다. 그 같은 맹수가 사냥의 앞장이로 길들여 지게된 역사는 자세히 밝힐 수 없는 일이지만 다만 그럴 수밖에 없었으리라는 짐작은 바로 개는 아무 것이나 주는 대로 받아먹는 잡식성 동물이기 때문에 한편 유용하게 길들여 질 수 있었던 게 아닌가도 싶다.
③ 각설하고. 개를 두고 유용하다는 평가를 내리게 된 까닭은 "개라면 코요 코라면 개다"라고 이를 만큼 뛰어난 '코'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평가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닌 성 싶다. 왜냐하면 이 세상 냄새라는 말을 몽땅 '개의 코'에 두어 「냄새 취」 (臭)자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④ 코는 그렇다 치고 입은 어떤가? 요임금처럼 어진 이가 나타났다 할지라도 제 주인이 아니 면 개는 짖기 마련이다. 둥그런 보름달을 보고도 일단 철없이 짖어대는 바로 그 모양을「개 견」(犬)으로 썼다.
⑤ 요즘 와서야 개를 묶어 기르지 어디 전에도 묶어 길렀남? 일단 울을 벗어나 출방(出放)된 개는 아무대나 한쪽 다리 쳐들고 방뇨하며, 이곳저곳 다리며, 기웃기웃 하다가 때되면 다시 좁은 구먹새로 머리박고 기어드니 이처럼 제멋대로 구는 개를 「개 오」(獒)자로 일렀다.
⑥ 주는 밥 한술 얻어먹고 짖어 대다 피곤하면 적당한 자리 찾아 늘어지게 낮잠 자는 개를 두고 "상팔자 중에 상팔자는 개팔자"라고 하였다. 기왕 팔자타령이 나왔으니 말이지, 개가 부럽게 느껴지는 꼭 한 대목은 곧-버젓한 대문 길 놓아두고 굳이 머리를 숫하게 부딪치면서 까지 좁은 길 뚫기 연습을 그린 「나아갈 돌」(突)자에 있다.
⑦ 개는 맹수류다. 사람을 보면 으레히 일단 엎드려 으르렁대며 경계하기 때문에 개의 그런 모습을 「엎드릴 복」(伏)자로 나타내었다.
③ 개는 유용한 만큼 꼭 조심해야 할 동물이다. 잘 길들여진 개일수록 제몸은 일단 캄캄한 곳에 감춘 채 아무 소리 없이 있다가 막상 찾아든 객이 방심하고 움직이면 그 때를 틈타 달려드는 그 비겁살스런 꼴이 마치 평소 "말많은 놈보다는 말없는 놈이 더 무섭느니라"하는 말을 잊고 있다가 느닷없이 뒤통수 맞은 꼴 같은 느낌이라 「묵묵할 묵」(黙)자를 잊지 말아야 할 일이로다.
⑨ 씩씩한 사람을 「장사 장」(壯)이라 하였고, 의젓한 개를「모양 상」(狀)으로 썼다. 물론 사람은 일단 잘난 사람이 인기 있고, 개는 당장 잘생긴 놈을 알아준다. 설사 그렇다 할지라도 항상 생김새에 속아 살아 갈 필요는 없다. 잘 생긴 개일수록 잘 길들여졌으니 주인이 아니어든 부디 조심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