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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5 | [사람과사람]
삶속에서 녹아날 수 있는 춤 - 춤패 「해오름」-
윤희숙․편집기자 (2004-01-29 12:19:54)
"춤이란 단순히 아름다운 몸짓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림이나 문학작품이 우리 ' 삶과 동떨어지지 않은 내용을 담아낼 때 그들의 진정한 가치를 지니는 것처럼 춤 역시 이 땅에 발붙이고 사는 민중들의 삶과 그들의 고민을 몸짓속에 녹여내야 합니다" 지난 24일과 25일 전주 우진문화공간에서 정기공연을 무대에 올린 춤사랑 「해오름」 대표 최은덕씨의 말이다. 이번 공연은 「해오름」의 네번째 정기공연이지만, 현장활동을 위주로 해와 일반에 게 잘 알려지지 않은 까닭에 첫 공연이상의 큰 의미를 담고 있다. 「해오름」이 춤패로서 첫 발을 내딛은 때는 80년대 초반이다. 원광대학교 무용과 졸업생들이 주축이 되어 「한가위」라는 이름을 내걸고 이리지역을 중심으로 소박한 작업들을 이어왔다. 85년 다시 일부 회원들이 교체되면서 전문 춤패 「비나리」가 결성되었고, 그런 변화의 과정을 거치면서도 '우리의 춤, 우리의 몸짓은 어떠해야 하는가? '라는 춤에 대한 고민은 계속되었다. 오늘날 일반대중들이 춤이라는 형식을 통해 접하게 되는 거의 모든 무용공연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내용을 다루기는커녕 사람들의 삶과는 동떨어진 추상적인 주제만을 던져준채 단지 아름다운동작만을 보여주는데 그치고 있다. 그 결과 일반관객들은 춤이란 것은 일반인들의 생활문화와는 동떨어져 있는 것이고, 자신들은 춤의 주체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면 춤이란 '어려운 것',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고, 춤을 자신과는 무관한 작업으로 치부해 버리고 만다. 결과적으로 수많은 춤 공연은 무용인구의 저변확대와 대중화 작업에 역행하는 일들을 해온 셈이다. 「비나리」는 오랜 고민끝에 그들의 나아갈 방향을 설정했고 또 한번의 변신을 한 끝에 91년 춤사랑 「해오름」을 탄생시켰다. 「해오름」은 춤이 전공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깨닫고, 문을 활짝 열어 무용을 전공하지 않았더라도 춤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까지 회원으로 맞았다. 먼저 이들은 서구 적인 형식과 이데올로기 조차 무분별하게 받아들여 진정한 우리 춤을 길러낼 토양조차 갈아엎어 먹는 춤의 현실을 바로 보고, 「해오름」이 지향하는 춤은 바로 이 땅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은 삶의 치열함 속에서 발현되어야 한다고 다짐했다. 또한 춤을 통해 이 땅의 현실을 알리는 일에만 그치지 않고 나아가 삶을 보다 풍요롭고 아름답게 가꾸어낼 수 있는 전망을 제시하는 일도 소홀히 해서는 안될 일임을 깨닫고 이를 춤을 통해 풀어내고자 열정을 모아내기 시작했다. 「해오름」이 지금까지 정기공연무대에 올린 작품들은 그들의 이러한 춤에 대한 방향성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는 것들이다. 1985년에 발표한 첫 공연 <새벽>은 광주민중항쟁을 소재로 극속에서 품의 역할을 부각시켜, 탁월한 선전선동성이 춤으로 표현이 가능함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이어 올린 <여성해방 씻김굿>은 몸짓언어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구체성과 추상성의 문제를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된 춤판으로 평가되었다. 세 번째 공연작 <해방의 그날까지>는 식민지 사회에서 민중의 삶의 내용을 담았으나, 내용에 충실한 나머지 춤사위 구성에 문제점을 노출시킨 것으로 춤에 사실적인 내용을 담아내면서 연극적인 요소와는 다른 구성을 가져야 함이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 지를 절감하게 했다. 88년에 정기 공연으로 올린 <지리산>은 소설 『남부군』 발표이후, 큰 관심을 모았던 빨치산의 삶을 통해 해방공간에서 이데올로기의 희생물로 역사의 뒤켠으로 밀려난 그들과 모순투성이인 한국의 현대사를 재조명해 보았다. <지리산>과 함께 현장공연을 통해 발표된 <흙>은 우루과이라운드의 여파와 정부의 살농정책으로 힘들여 농사를 짓고도 결국 빚더미와 한숨속에 살아야하는 농민들의 삶을 통해 우리 농촌의 현주소를 보여주었다. '89년작 <아리랑 통일고개>는 우리 민족의 최대과제인 통일문제에 대한 민중의 입장과 6공화국의 입장을 비교하는 내용으로 엮어져 있고, 그들이 고민해온 작품의 내용과 형식의 통일을 어느 정도 이루어 낸 공연으로 자평하는 작품이다. 그리고, 이번에 올린 <먼길 떠나는 그대>는 91년 4월 강경대타살사건 이후 계속된 학생과 노동자들의 분신을 소재로 하고, 그 중에서 '박승희'라는 여학생의 죽음에 시선을 모아내고 있다. 이 작품의 1부 '민중들의 춤'에서는 건강하지만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억압당하는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들의 모습이 억압과 수탈의 상징으로 대변되는 성조기와 함께 등장하고, 2부 '어머니와 민중들의 삶'에서는 도시빈민의 전형적인 삶을 살아가는 승희 어머니의 삶과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 평범한 딸에 불과 하던 승희가 어떤 갈등을 통해 분신자살에 까지 이르게 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3부 '세상속으로'는 자신이 처한 사회의 현실이 결코자신과는 무관한 다른 사람들의 문제일 뿐이라는 방관자적인 자세에서 내가 이 땅의 주인이고, 이 시대의 아픔은 결국 내가 짊어져야 할 몫임을 깨닫고 결단을 내리는 승희의 굳은 결의와 모습이 보여진다. 마지막 4부 '분신'은 의식무 '촛불춤'을 통해 죽음은 끝이 아니고 그 죽음의 언덕을 넘어 짓밟힌 민중들이 다시 일어나는 희망찬 모습을 전망으로 제시 해주고 있다. 「해오름」이 관객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춤은 민족의 역사와 현실문제들과 기층 민중들의 삶을 내용으로 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의지 앞에 가로놓인 벽도 만만치는 않다. 이미 춤의 내용보다는 몸짓 자체를 감상하는데 익숙해져 버린 관객들에게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춤판을 보여주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이러한 관객들과의 괴리를 극복하기 위해「해오름」에서는 강습을 실시하고있다. 그들은 탈춤이나 한국무용, 현대무용의 강습을 통한 대중들과의 만남이 춤을 대중들과 친숙하게 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믿고있다. 그리고 강습을 단순히 기능만을 전수시키는 것으로만 한정시키지 않는다. 대중들의 삶을 정확하게 표현해내기 위해서는 그네들의 일상에 파고들어야 한다. 머리속에서 나오는 삶보다는 직접적인 삶을 체득하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강습을 통해서 대중과 만나는 일은 가르치는 동시에 다양한 계층의 그들로부터 여러가지모습의 삶을 배울 수 있는 소중한 계기가 되고 있다. 그래서 「해오름」은 거창한 대규모 공연무대보다 소규모 대중들과의 만남을 더욱 소중하게 생각한다. 지금 활동하고 있는 여성명의 회원들 중 일부는 다른 직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바쁜 시간을 쪼개가며, 일주일에 3번씩 만나 춤 기능을 연마하고, 건강한 춤사위를 만들어 내기 위한 이론학습을 해낸다. 「해오름」은 거의 10여년 동안 활동의 맥을 이어왔지만, 아직껏 그들의 공간조차 갖지를 못했다. 올 하반기에는 반드시 공간을 마련해야겠다는 각오로 회원들이 힘껏 뛰고 있는 중이다. 올해는 문화부가 정한 「춤의해」이다. 이러한 문화지원사업이 춤추는 사람들만을 위한 행사는 아닌지 반성해 볼 일이다. 올 한해 문화부의 지원을 받아 무대에 올려질 공연작들이 무용인들의 화려한 몸짓 잔치에 그치고, 그것이 오히려 춤의 대중화작업에 역행하는 일이 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춤은 무용인들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원시시대의 예술형태는 그들의 생활과 일정한 관계가 있었다. 다소 투박하고 거칠은 동작들도 무용의 좋은 토대가 될 수 있다. 춤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비교적 좋은 조건에서 온통 춤에만 매달려서 훈련하는 기존의 전문 무용단들과 비교해 시간이나 공간면에서 훨씬 열악한 상황에서 작업을 해야하는 「해오름」이 기능면에서 뒤떨어지지 않겠느냐는 물음에 그들은 "물론 내용에 못지 않게 춤의 형식도 중요하고, 결국 무대에서는 전문성에 의해 평가 받게되어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또한 우리들 춤 역시 무대에서 엄격하게 심판받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자신들이 공연에 쓸 무대의상을 직접 만들고, 염색하고 빨아서 정성스레 다림질하는 모습 속에서 춤사랑 「해오름」이 이 땅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은 각계각층의 모습이 담긴 민족적이고 가장 한국적인 춤을 가지고 우리들과 만나, 한바탕 신명난 춤판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확신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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