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극 연출가이자, 판소리꾼인 임진택씨의 평론집이「민중연희의 창조」라는 이름으로 창작과 비평사에서 나왔다. 이 책은 7,80년대 민중연희운동의 전개과정에대한 증언이자, 이론적, 실천적 성과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하겠다. 이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 되어 있으며, 각각 "마당극의 이론과 실천", "판소리의 현재적 전망", "민속연희의 재조명", "문화시평모음"이라는 표제를 달고서, 발표시기가 다른 개별적인 평론들을 순차적으로 각 부분에 배치해 놓고 있다. 개별 평론들은 세부적으로는 차별성을 보이나 전반적으로는 공통의 맥락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발표연대 순으로 읽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소득은 각 분야에 대한 견해와 인식의 추이, 이론과 실천의 심화 과정 등을 추적해볼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제 1부에는 마당극(마당굿)에 관한 다분히 이론적인 성향의 글들인 "새로운 연극을 위하여"(1980), "마당극에서 마당굿으로"(1982),"80년대 연희예술운동의 전개"(1990)를 축으로, 사이 사이에 실천적 기록이라고 할 수 있을 '연출단상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 제1부에 속한 글들은 본 서평의 필자가 전체 책 중 가장 꼼꼼히 읽어본 것들이다. 무엇보다 그동안 마당극(마당굿)에 관한 이론적인 글들을 거의 읽지 않았기에 이 기회를 빌어 정리해보려는 의도가 강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필자 자신 젊은 시절을 거쳐온 그 기간 동안의 문화 예술의 궤적이 자연스럽게 재구성되는 느낌을 받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제2부에는 판소리가 옛 전통유산으로서가 아니라, 오늘날 활동하는 양식일 때에만 가치있는 것이라는 저자의 주장을 바탕으로 한 이론적인 글들과 창작판소리 연행에 관련된 글들이 실려 있으며, 제 3부에는 우리의 민속연희에 내재된 세계관과 미의식을 생명사상(김지하)에 입각해 추출해 보고자 하는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제4부는 언뜻 볼 때는 떨어진 이삭을 주은 듯한 느낌을 주지만, 읽기 편하면서도 우리의 문화상황을 의미 깊게 짚어볼 수! 있는 좋은 글들이 많다. 전반적으로, 다 읽고난 후에 떠올리게 되는 것은, 책의 저자인 임진택이라고 하는 인물의 만족, 민중에 대한 애정, 그것을 위한 생산적으로 투쟁적인 예술의 실천 등이 압도하는 느낌으로 다가왔다는 점이다. 다만 특별히 서평자 본인의 관심 분야인 연극 쪽과 연관되기도 하므로, 제1부에 실린 마당극(마당굿)에 관한 글들을 읽고서 생각된 점들을 몇가지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우선,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마당극(마당굿)에 대한 그의 견해를 요약해보자. 그는 마당극을 궁극적으로 민족적 리얼리즘을 추구하기 위해, 탈춤 양식과 서사적인 내용이 결합한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마당극은, 그 명칭이 줄 수 있는 오해에도 불구하고, 양식상의 개념만이 아닌, 이념과 형식이 결합된 개념이라고 한다. 마당극은 민족, 민중, 민주운동과 연계된 문화운동이라는 차원에서 그 배경이 이해되어야 하는바, 전통 민속극의 현대적 계승과 재창조, 민중적 미의식의 재발견등이 모토로 설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는 오해의 소지가 많은 마당극이라는 용어를 좁은 의미의 그것으로 국한시키면서, 보다 포괄적인 견지에서 마당굿이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그가 말하는 '마당굿'에는 2가지 기본정신과 4가지 본질적 성격이 있다. 놀이정신과 마당정신이 기본정신이며, 상황적 진실성, 집단적 신명성, 현장적 운동성, 민중적 전형성이 본질적 성격으로, 이것들은 바로 마당굿의 사회, 문화적 기능과 표현상의 성과를 추출하는 분석, 평가의 준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무엇보다 '마당굿적 상황'이라고 하는 것을 중요! 시하고 있는바, 이는 '민중적 쟁점을 굿거리화한 극적 알기'를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마당굿의 성패 여부도 그것이 '정치집회와 문화공연을 탁월한 차원에서 통일해내면서, 공동체 집단의 염원을 하나로 결집하는 대동굿적 성격'을 띠고 있느냐에 달려 있게 된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그는 '집회와 행사'의 결합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기도 하다. 이 모든 이론적 견해들은 그 뚜렷한 현실 참여적 맥락에서 정당성이 입증되며, 따라서 지속적으로 민중연희패들의 활동에 강력한 영향을 끼쳐왔다. 또한 그것들은 그의 오랜 기간의 실천 과정을 거치며, 검증되고, 수정 보완되고, 또 확장 심화되어 온 것이기에, 오로지 이론만을 말하는 이론가가 개진하는 이론이 따를 수 없는 생명력과 설득력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 스스로 인정하고 다짐하듯이, 완성된 것이라고 볼 수는 없기에 아직 이론적 완결성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몇가지만 제기해보자. '마당'을 일터이자 쉼터, 놀이터이자 싸움터로 정의하는 것은 감명깊다. 그러나 '배움터'로서의 기능도 최소한 부가되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113쪽을 보면 이러한 측면이 상당히 부각된다. -그런데 '집단적 신명성'은 공동체 의식을 불러 일으키는데는 더없는 것이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변혁에 기여해야 하는 예술이 오히려 스트레스해소라는 역기능을 발휘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야밤의 프로야구경기를 한편의 드라마로 칭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다음으로, 연희예술의 기본 밑반찬이 '살아있는 인물의 구체적인 삶의 모습'이어야 한다는 견해에는 전적으로 동감한다. 그러나 마당극(마당굿)이 추구하는 형식의 단순성, 등장인물의 유형(전형)화, 예술형식의 감량을 수반하는) 예술의 생활, 현장화라는 틀에서 그러한 살아있는, 구체적인 인간의 삶을 어느 정도까지 그려낼 수 있을까? "80년대 연희예술운동의 전개" 끝에서 저자가 마당굿을 탈춤패의 몫으로 넘기고, 연극패들에게는 민족극의 한 부문으로서의 비판적 리얼리즘, 변증법적인 연극에 기여하도록 제안하는 것은 위와 같은 문제점에 기인하는 것인가? 문제는 결국 저자 스스로 명제화시켰듯이 '전통 문화의비판적 수용'이며 그것이 발전과 변화를 추구하는 바람직한 변증법적 자세일 것인데, 현시대의 예술은 변화된(혹은 다소 서구화된) 현시대인의 생활 감정, 미의식, 정서를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이러한 소박한 의문들을 제기하는 것과 관련해서 덧붙일 말이 있다. 고백컨대, 사실 이 책에 대해 서평을 써달라는 "문화저널"의 제의를 무심코 수락하고서 책을 훑어 읽어가기 시작하다가 서평자는 곧 경박한 자신을 질책하고 말았다. 머리에 떠오르는 최초의 생각이 '과연 내가 이 책의 서평자로서 적합한가'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서평이란 대개 그 해당 분야에서 책을 쓴 사람과 최소한 동등한 수준에는 도달해 있는 사람이 써야 제격일 것이며, 더욱이 평론(집)에 대한 평은 일종의 '비평에 대한 비평'으로서 그 분야에 대한 애정과 아울러, 고도의 전문적 지식과 식견이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서평을 써야하는 본인으로 말할 것 같으면, 실상 민중연희 전반에 대한 애정은 갖고 있으면서도, 그에 대한 지식과 체험은 기껏 애호자의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의 민중연희와는 반립명제인 외국문학 전공자로서, 실천적 연극활동에 있어서조차 시초부터 지금까지 거의 완벽히 무대연극에 편향(?)되어 왔던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람이 책의 저자에게는 유용하고도 생산적인 비평인 동시에, 독자들에게는 효율적이고도 정확한 독서 지침으로도 가능할 수 있을 그런 서평을 과연 쓸 수 있을지 별 자신 없어하면서도, 어쩌면 잘 모르는 사람의 저돌적인 언사가 혹 가다가는 창조적인 자극을 매개해줄지도 모른다고 스스로를 위안하면서 두서없이 몇마디 적어본 것이다. 참으로 암출했던 7,80년대, 민중연희에 대한 뜨거운 애정을 바탕으로, 연희예술운동을 사회운동의 한부문으로 정착시키면서, 그 불씨이자 불쏘시개 역할을 스스로 떠맡아 이제 늦게도 한권의, 그러나 그 무게가 어느 책에도 비기기 어려운 결실을 맺은 저자에게 경의를 표하며, 관심있는 분들의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