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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5 | [신귀백의 영화엿보기]
비극적 역사의 언저리에서 신음하고 있는 또 다른 우리의 모습 김영빈 감독의 『김의 전쟁』
장세진․문학 평론가 (2004-01-29 13:39:28)
우리 영화의 전반적인 불황 추세에도 불구하고 신인감독들의 활동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대견하고 고무적인 일이다. 불황 타개를 구실로 저질 싸구려 영화를 만들지 않는 한 그들의 축적된 역량은 언젠가 활짝 피어날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이 땅의 거장으로 알려진 임권택감독 밑에서 6년 동안 연출수업을한 김영빈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에 대한 신뢰는 우선 비교적 무거운 주제의식으로 데뷔하고 있는데서 생긴다. 「김의 전쟁」이 그것이다. 「김의 전쟁」은 이미 알려진 대로 1968년 재일한국인 김희로(유인촌)의 살인사건을 담은 영화다. 현재까지도 복역중인 김희로가 야쿠자 2명을 살해한 것이 겉으로 드러난 줄거리지만, 거기엔 일본을 보는 '눈'이 번득이고 있다. 언제 보더라도 졸거나 결코 흐려져선 안될 눈이다. 일본, 과연 저 일본은 우리에게 과거사와 그것이 청산되었다고 말하는 이 땅의 오늘을 담고 있다. 사람들은 터진 입으로 과거를 묻지 말라고 흔히들 말하지만 「김의 전쟁」은 그것이 희망사항임을 애써 강조한다. 김희로 살인사건은 일제 침략과 또 다른 차원에서 민족적 비극의 한 단면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기 때문이다. 김희로가 야쿠자 2명을 살해한동기는 그들의 횡포 때문이지만 거기엔 한국인 차별이라는 이면적인 의미가 축적되어 있다. 이름을 7개나 지니게된 부랑아이지만 살려고 안간힘을 쓰는 김희로의 정상적 사회인으로서의 의욕이 노상 좌절되고 있음이 그걸 뒷받침해 준다. 김희로의 분노와 살인은, 따라서 당연하다. 김희로는 일본에 있고 싶어서 있는 것이 아니다. 김희로를 일본에 살게한 것은 군국주의자들이다. 그들이 전범(戰犯)의 사생아로 김희로를 일천에 떨어뜨려 놓고서도 소위 '평화헌법'은 한국인들의 거주와 생활에 온갖 제한을 두고 있다. 바로 이것이다. 「김의 전쟁」이 일본을 보는 눈은. 김희로가 살인하고 인질극을 벌이는데도 범죄자라는 생각이 들지않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오히려 인질로 잡힌 사람들에게 흉악범같지 않은 모습과 매너를 보일 때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반대급부적으로 김희로를 있게 한 강요된 비극적 역사의 영원성에 치를 떨게 된다. 다소 극단적 인식일지는 모르지만 김희로가 일본 경찰들에 의해 잡혀가는 결말 화면-머 리 채를 잡히고 입에 헝겊이 쑤셔 박힌 채 포효하는 맹수처럼 눈만 이글거리는 모습이 재일 한국인의 실상 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를테면 「김의 전쟁」이라는 주 체험을 통해 비극적 역사 언저리에서 신음하고 있는 또 다른 우리의 모습을 새삼 확인한 것이다. 심심파적으로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 「김의 전쟁」은 따분하게 느껴질 것이다. 특히 그것이 무엇이든 진지하고 심각한 것을 생각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에겐 「김의 전쟁」이 재미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분명한 사실이 있다. 이만큼 '서사적'인 내용을 우리 영화에 담아낼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것만으로도 「김의 전쟁」은 충분히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인 셈인데, 거기에 재미있는 요소까지 덧붙여 놓았다. 보는 시각에 따라선 더 많은 비중이 쏠린 듯 느껴지는 후사꼬(이혜숙)와의 사랑이 그것이다. 열악한 환경-우리 영화가 외면당하는 현실을 벗어나 보려는 감독 나름대로의 장치(device)로 생각되지만 사족이었다. 관객은 관객대로 놓치고, 김희로 살인사건을 통한 민족정기의 환기라는 주제의식이 호도될 부담감만 안겨주고만 것이다. 영화의 구조적 측면에서 보자면 결국 김희로의 야쿠자 살해와 인질극은 후사꼬와의 사랑이 방해를 받은 데서 온 결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녀의 국적이 일본이라는 사실은 그런 혐의를 더욱 짙게 해 준다. 김희로의 살인과 인질극과정은 "사회적 배경을 설명하는 장면들이 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고 한 어느 평론가의 지적처럼 그와 무관해 보이지 않거니와 역사성이 좀더 부각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 역시 그래서 생겨난다. 그러나 더 큰 아쉬움은 관객들의 외면에서 온다. 의욕을 갖고 영화판에 뛰어든 그리하여 어느 정도 작가세계를 구축한 김감독의 "영화를 만드는 일이 두렵다기보다는 관객의 차갑고 높은 불신의 벽 앞에서 공황과도 같은 두려움을 느낀다"는 진술이 매우 아프게 와닿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거듭 말하지만 우리 영화가 전반적으로 부진한 원인이 시나리오 빈곤과 완성도 부족에 있을지라도 그 책임은 관객의 몫일 수밖에 없다. 특히, 이제 겨우 6천불 국민소득의 관객들이 2만불 나라의 영화가 잘 되었다고 침이 마르게 칭찬하는 한은 그렇다. 한편 신인감독상 등 수상이 유력시되던 「김의 전쟁」이 사실상 영화제의 대표격(영화인협회 주최니까)이라 할 수 있는 제30회 대종상에서 탈락한 것도 아쉬움의 하나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표절이 그 이유인데, 수긍할만한 내용이 아니어서 의혹마저 안겨주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김의 전쟁」은 궁극적으로 강한 민족주의 색채의 영화이기 때문이다. 반미와 함께 짙은 민족주의 색채의 「은마는 오지 않는다」, 빨치산, 운동권 대학생이야기를 각각 다루었던 「남부군」, 「그들도 우리처럼」들이 심사에서 배제된 작년의 경우마저 떠올라 대종상이 이른바 '제도권 영화제'라는 성격을 드러낸 셈인데, 「김의 전쟁」은 현재 '내용증명'을 주최측에 보내놓고 있다. '제작자와 작가의 명예 훼손에 대한 공개사과'를 받고, 재평가(정당한 평가)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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