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5 | [문화저널]
불의 재앙 예방한 조상의 슬기
- 순창․정읍 짐대 -
이상훈․편집위원
(2004-01-29 13:41:41)
신동아 화재해상보험 주식회사에서 낸 1992년 달력그림은 둘러쳐진 담장안에 초가집이 있고, 그 앞에는 고목나무가 있고 그 옆나무 기둥위에 오리가 올려진 짐대가 그려져 있다. 화재보험에서 짐대를 주제로 해서 달력을 만든 것이다. 왜 하필 민간신앙물중의 하나인 짐대를 주제로 하여 그렸을까라는 의문을 가지기에 충분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짐대가 지니는 상징성은 화재를 막아준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징성이 화재보험회사가 추구하는 내용과 일치하였던 것이다. 물론 짐대가 화재막이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요사이는 화재(산불)로 인하여 많은 피해를 입고 있는 계절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번 여정은 앞에 닥칠 어려움(화재)을 어떤 형태로 극복하였는지를 전북에 분포하는 몇개의 짐대를 통해 알아보고자 한다. 진노랑의 개나리, 진분홍의 참꽃, 눈이 부시게 하얀 목련이 피어나는 계절에 관심 있는 일을 찾아 떠난다는 것은 어느 것에서도 구할 수 없는 행복이다.
순창 복흥 정산 동서마을. 순창읍을 통해서보다 오히려 정읍을 거쳐서 가는 것이 훨씬 교통이 편리하다. 정읍 내장산의 아스라한 고개를 넘으면 순창군 복흥면에 해당되고 동서마을은 복흥면소재지에 위치한다. 마을앞에는 나무로 만든 짐대가 양쪽에 세워져 있다.
오른쪽 짐대는 수놈이라 하는데 나무 기둥위에는 통나무로 하여 오리형태로 만든 새를 올려놓았고, 왼쪽 암놈 짐대위에 올려진새는 Y자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마을사람들에 의하면 아들낳기를 기원하거나, 옛부터 마을 앞 학바위(화산)가 있어 마을에 불이 자주 났기 때문에 화재막이로 매년 짐대가 세워진다고 한다. 특히 마을입구 두 그루의 느티나무도 화재막이 역할을 한다고 한다. 짐대는 음력 2월 초하룻날 부정이 없는 사람을 제관으로 선정(보통 이장이 맡게)하여 마을 재산인 아흡 마지기 논에서 나온 이득금으로 비용을 충당한다. 짐대는 동네 청년 6명 정도가 아침 일찍(해뜨기 전) 적당한 나무를 골라 3명씩 양쪽으로 나누어 정성들여 세운다. 한 30대 후반의 마을사람은 딸이 넷인데 내년에 정성스레 짐대를 세워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기원할 것이라며 전에 진작 짐대를 만들고 아들 낳기를 기원할 것인데 그때는 이런 것을 믿지 않았다면서 멋 적은 표정을 짓기도 했다.
다시 정읍으로 되돌아와 목욕리가 종점인 시내버스에 몸을 실었다. 칠보면내에 못미쳐 원백암 마을을 지날 무렵 다시금 원백암 마을을 둘러보지 못하고 가는 것이 아쉬웠다. 원백암 마을에는 아직 까지도 우리 민간신앙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마을굿이 지금까지도 행하여지는 곳이며 장승, 남근석, 선돌 등 민속 신앙물이 현존하는 곳이다. 그리고 칠보면 소재지 내 에는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무성 서원이 있으며, 무성리 원촌마을에는 과거에 짐대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 역시 짐대를 세운 이유는 화재막이를 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시내버스는 산외를 거쳐 비포장의 좁다란 길을 따라 가다가 첩첩이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에 머문다. 목욕리이다. 전설에 선녀가 이곳에 내려와 목욕을 했다는 것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목욕리는 내목과 외목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짐대는 내목마을 입구에 자리잡고 있다.
내목마을에는 뒷당산과 아랫당산 둘을 모셨는데, 제는 뒷당산인 고목이 죽은후 아랫당산인 짐대를 세운 곳에 짐대를 세우고 지낸다고 한다. 제는 음력 정월 초하룻날에 모시는데 이때 짐대를 세우게 된다. 짐대는 그날 마을 청년7~8명이 소나무를 베어 만든다(예전엔 상당히 큰 소나무로 세웠기 때문에 20여명 정도의 청년들이 참여했다고 한다)
제물을 부녀자들의 주관하에 떡, 술, 나물 등이 준비되고, 이때 꽹과리를 치며 신나게 논다. 그리고 인근에 사는 무당이 와서 축원을 해주기도 한다.
짐대를 세우게 된 계기는 마을에서 바라다 보이는 왕자산과 세자봉 사이에 화경산(화산)이 있어 화재가 자주 나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그리고 짐대위에 올려진 새는 오리인데 이는 오리가 물과 깊이 관련되어 있어 화재를 예방해 준다고 믿기 때뿐이다. 또한 오리 주둥이(물주머니)에 창호지로 쌀을 조금 담아 매달아 놓았는 데, 이는 오리가 불을 끌때 쓰기 위한 것이라고 하고 또는 풍년을 기원하기 위함이라고도 한다. 내목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예덕리아래 보리밭 마을에서도 예전에 짐대가 있었다 하는데 역시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서 세웠다고 한다.
인류는 불을 사용하게 됨에 따라 커다란 변화와 발전을 가져왔다. 인간은 불의 덕택으로 자연의 제약으로부터 비로소 해방되었고 자연을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문명사회를 이룩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불로 인한 화재는 커다란 재앙이다.
그런데 마을에서 짐대를 세우고 마을사람들이 모여 제를 올리면서 마을의 안녕과 번영, 그리고 화재를 예방해 줄 것을 빌었던 것은 어떠한 어려움이 발생하였을때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대응하였던 민속으로 조상의 슬기를 엿볼 수 있게 한다. 현재에 와서 단순한 나무기둥으로 우둑커니 서 있는 짐대를 주제로 한 화재보험회사 달력은 이러한 믿음을 다시 일깨워 주기에 충분했다.
차창밖으로 보이는 농민들의 바빠진 모습에서 이제 봄은 힘겹게 달려와 지칠대로 지친 모습으로 우리 앞을 지나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