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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5 | [교사일기]
내 사랑하는 제자들아
최순삼․순창중학교 교사 (2004-01-29 13:43:58)
미영에게 대부분의 학교안에 빙둘러 일본의 꽃 사쿠라가 만발해 있는 완연한 봄이구나. 우리민족의 삶을 뒤틀리게 한 일본의 잔영들이 지금도 우리 아이들이 뛰어 놀아야 할 교정에 버젓이 서 있는 현실이 민족교육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 같아 무척 답답하다. 미영아! 그렇지만 네가 보내준 "보고 싶은 선생님"으로 시작하여 "저희들 대부분이 선생님을 무척 좋아하고 존경한다는 사실만은 꼭 기억해 주세요"로 끝나는 편지를 받아들고 또 다시 희망의 미래를 생각해 본다. 미영이가 수학여행을 간다는 소식을 보냈으니, 벌써 고2가 되었구나. 선생님이 게으르고 사랑이 부족하여 진실한 너의 삶을 꼬박꼬박 전해온 편지보다 훨씬 적은 글을 보낸 것을 우선 사과한다. 지금은 저녁밥 먹을 때다. 멀리 쌍치 아버지가 자연의 순리에 맞추고 땀과 한숨을 보탠 쌀로 손걷어 부치고 건강하게 밥짓는 미영이 모습이… 곁에 있는 친구는 찌게라도 만들자고 방문턱에서 조르고 있지 않은지. 미영아. 생각나니? 2년전 봄 가정방문이라는 미명하에 너희집에 갔을 때를 이 못난놈 때문에 미영이가 중1때, 두 남동생을 남기고 어머니가 스스로 세상을 떠났음을 비통함과 회한으로 범벅된 얼굴로 말씀하시던 아버지의 그 모습을. 네가 냄비에 끊여온 커피를 마시면서도 울먹이던 아버지 얼굴을. 난 이런 말을 한것 같다. "미영이 아버지 너무 걱정마세요. 미영이가 너무 착하고요. 의지력도 강해서 틀림없이 올바르게 자라서 동생들을 잘 돌볼 것입니다. " 그리고 문밖으로 나와 너의 어깨와 무너져가는 토담을 짚고 여상 진학과 스스로를 책임지는 사람으로 커가기를 약속했지. 그날 학교로 돌아오면서 난 가슴만 아팠지. 너에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줄 것인지 생각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가끔씩 너의 절친한 짝궁이며 대변인 순주가 너의 속상함(아버지가 술 드시고 동생들을 구박하고 술에 곯아떨어져 주무시는 모습이 너무 가여워 저녁에 울었다)을 전해온 날은 종례 후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한다고 다짐했지만 그것도 제대로 못했다. 그런 가운데 너희는 졸업때 조그마한 정성과 함께 끼워 넣은 글 "감사하다는 말씀 백번 하는 것보다 선생님 은혜에 보답할 수 있도록 훌륭한 사람(의사 판사보다․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사회에 봉사하고 미래에 대한 신념이 있는 어른)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켜 봐 주십시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그리고 너는 전주에 있는 여상에 가서 "생활 속에 서 어려움도 있지만 그것 또한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습니다. 선생님 전 무엇인가 꼭 이루고 싶어요. 저의 내부에서 그걸 요구하고 갈망하고 있습니다."라고 제법 성숙해가는 말들을 전해오고 있고 또한 작년에 새엄마가 오셔서 아버지와 동생들도 무척 좋아함을 알게되어 기쁘다. 척 좋아함을 알게되어 기쁘다. 쌍치 장날 밥집앞에서 아버지를 만나면 어김없이 약국으로 끌려가 드링크제를 하나씩 마셨는데 이젠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버리게 되었다. 미영아 ! 내키지는 않았지만 쌍치에서 순창중으로 오면서 책상 서랍속의 너희들 편지를 대봉투에 담으면서 몇년 후에 다시 이 학교로 오고싶어도 학교가 없어지지 않을까라는 착찹함이 앞섰다. 쌍치에 있는 학선국이 없어지고 방산국이 내년 정도에 폐교된다고 하니 머지않아 중학교도 같은 운명에 처하겠지. 누구의 잘못일까? 농촌경제의 파괴는 급기야 우루과이라운드라는 괴물까지 출몰하여 현실로 나타나 우리 마음에 고향 농촌, 코스모스꽃의 학교를 소멸시켜가고 있다. 어쩌면 너와 나나 앞으로는 전설속의 학교이야기를 할 것 같구나. 정말 농촌은 다시 살아날 수 없을까?(선생님의 한낱 잠꼬대인가?) 선생님 인생의 가장 큰 숙제중 하나다. 어찌 글이 네 편지처럼 밝고 힘차지를 못하고 타령조인지. 미안하다. 아이들 앞으로 더 가까이 가는 선생님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또 쓸게. 건강=밥 잘 챙겨 먹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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