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5 | [문화저널]
한국 환경운동의 성격과 방향
황경수․군산․옥구 환경운동시민연합 정책실장
(2004-01-29 13:45:59)
1. 한국의 환경문제 어디까지 왔나?
지난달 새건강신문에 보도된 브라질의 충격적인 환경문제 소식을 접하면서 깊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브라질의 대도시중의 하나인 어느 도시에서는 심각한 대기오염으로 인해 비상대피훈련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화학무기 전쟁을 대비한 화생방 훈련이 아닌 대기오염에 의한 공해 대비 훈련이라고 하니 이 얼마나 어이없는 일인가. 그런데 문제는 이같은 심각한 환경문제가 남의 나라의 문제가 아닌 우리나라의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이 다. 브라질의 경제발전과 한국의 경제발전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국주의의 경제전략에 포괄되는 후진개발국가라는 사실이다. 또한 보다 중요한 사실은 선진국들이 밟았던 산업화 과정을 똑같이 걷고 있으며 단지 한국의 환경문제가 브라질보다 아직은 심각하지는 않다는 것만이 다를 뿐이지 본질은 극한의 환경 파괴의 길로 똑같이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제국주의로 대표되는 선진국가들의 공해전가정책과 무한한 환경파괴를 전제로한 자본주의적 산업화 과정은 우리나라를 공해공화국으로 전락시키고 있는 것이다.
옛부터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자랑해왔던 한반도, 우리의 조국이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환경파괴로 인한 죽음의 강토로 변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을 지켜보면서 안타까움과 죄책감을 먼저 느끼게 된다. 이미 공해오염도가 세계적인 수치를 자랑한지는 몇 년 전의 얘기이고 지금도 공해오염도 세계 1위를 차지하기 위하여 공해물질을 쉴 새 없이 배출하고있다. 눈부신 한국의 경제성장 뒤에는 조국 강토의 파괴와 기층민중들의 생명파괴로 뒤범벅되어있다.
지난 60~70년대 고도성장의 첨병으로 전국민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던 울산, 온산은 중화학공단 건설로 불과 20년이 채 되기도 전에 주변의 농토와 어장은 죽은 땅과 바다로 되었다. 온산의 공단의 매연과 폐수로 온산주민은 공해병에 걸렸고 4만명이 집단이주 하는 민족적 비극과 더불어 기네스북에 오르는 오명과 수치를 남기게 되었다.
이러한 비참한 공해의 역사는 80년대에 서해안 지역에서 다시 시작되고 있다. 서산, 군산, 여천 등을 대표로 하는 서해안 개발은 이 지역의 땅과 바다를 파괴하면서 죽음의 도시로 만들고 있다. 이제 우리는 어디를 가나 공해공화국으로 전락한 조국의 강토를 폭격할 수 있으며 물도 공기도 마음놓고 먹고, 마실 수 없는 상태에까지 이르렀다. 언제부터인가 공해라는 말이 일상용어로 사용하게 되었고 환경문제는 항상 언론의 부족한 뉴스를 채워주는 단골메뉴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제 한국의 환경문제는 이대로 방치해 둘 수 없는 총체적 위기로 제기되고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강력한 환경 운동이 절박하게 필요한 시기이다. 국민들의 일상적인 삶 구석구석에 밀어닥친 환경 위기의 현실은 한국 사회 체제의 유지불가능이라는 진단을 내리고 있다.
2. 한국 환경문제의 원인과 성격
어떤 사람은 환경운동을 자연과학 전공자들이 하거나 과학적 지식이나 이론에 밝지 않으면 환경운동을 하기 힘들다는 말을 한다. 사실 환경오염과 관련된 문제를 접하면서 일차적으로는 이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 조사가 이루어져야 하며 자연생태에 미치는 영향을 근거로 환경운동이 시작되는 것이 사실이다. 다시 말해 환경운동에 있어 전문성의 문제는 반드시 극복되고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환경문제를 자연생태계 차원에 국한된 것으로 인식하고 자연과학적 문제로 논의하는 입장은 환경문제가 좁은 의미로 환경오염이나 공해로 한정된 자연 생태적 현상이 아니라 한국의 자본주의적 산업화과정 속에 내포된 문제성이 표출된 사회경제적 현상이며, 이를 방치한 경우 종국적으로 사회경제체제의 유지를 불가능하게 하는 구조적 문제임을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노정되고 있는 환경문제는 단순히 그 현상적 문제들만을 파악하고 이를 가시적으로 해결하려는 입장만으로는 극복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졌다. 환경문제는 특정 사회경제체제의 총체적 성격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의 환경문제는 한국의 산업화와 이를 추동시킨 자본주의화 과정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때만이 올바로 분석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인식 속에서 한국 사회속에서 환경문제의 성격을 규명해보고자 한다.
우리나라의 환경문제의 발생원인은 일차적으로 현대 자본주의 주도세력들의 신식민지 경제전략에 의해 신식민지적 경제구조가 발생하고 이를 토대로 예속적 독점자본, 정권과 민중간의 모순으로 발현되는 경제 발전유형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또한, (반)식민지 국가로서 우리나라의 환경 문제는 민족의 자주성의 향방과도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그 이유는 신식민지의 경우 환경문제가 내적모순으로 표출되었든지 외적모순으로 표출되었든지 그것은 초과이윤을 끝없이 착취해야만 그 존재근거를 갖는 현대 자본주의 주도세력들의 논리를 반영하고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논리가 한국사회에 관철되는 구체적인 과정을 살펴보면 미군정시기 정책중에서 식량, 석탄, 석유 등 주요 에너지자원에 대한 공급 및 가격통제정책은 이후 한국사회의 환경위기를 가속화하는 일련의 요인과 직접 적인 관련을 맺고 있다. 미국의 다국적 기업 걸프는 대한석유공사와의 계약에서 자신들이 공급하는 중동산 원유만을 사용해야 한다는 규정을 강요하였다.
이같은 신식민지 정책에 의해 관철되는 이 땅의 환경문제는 현상적으로는 국내 예속적 독점자본가와 민중간의 모순으로 현실화되고 있다. 예속적 국내세력들은 자신의 존립근거를 유지하기 위해서 자본의 지역적 집중을 이루고 이 같은 지역집중은 지역개발이라는 탈을 쓰고 이루어져 왔다. 지역개발은 예속정권의 강압적 수단에 국토개발이라는 미명으로 강행되었으며 지역에 진출한 예속적 재벌들은 지방행정관청이 제공하는 용지, 용수, 교통수단 등의 편익시설을 거의 무료로 사용하면서 지역독점 이윤를 취득하지만, 이 이윤은 현대 자본주의주도 세력들에게 대부분 귀속되고 지역에 분배되는 것은 낮은 지역노동자들의 임금에 불과하다. 우리 지역 군산에서 전개되고 있는 군산 TDI공장 철거투쟁의 경우도 동양화학이 다국적 기업들과 합작하여 (동양화학 계열회사 7개가 다국적기업과 합작, 또는 기술제휴) 지역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지역의 싼 용지, 용수 등을 이용하고 유치되기 어려운 공해산업을 행정관청과 결탁하여 비밀리에 입주시키는 등 철저히 지역개발이 아닌 지역경제 착취를 진행하고있는 것이다.
특히 70년대 이후 국가의 정책적 뒷받침 아래서 진행된 한국의 중화학공업화는 세계적 분업질서를 개편시키면서 에너지소비형 사양산업, 오염물질 다발형 공해산업을 선진국가들이 이전시킨 결과로 촉진되어진 것이다. 한국의 환경문제는 이러한 파행적중화학공업화에 의해 가속화되었다. 상호합작한 국내, 국제 독점자본은 이윤극대화를 위해 공해다발형 산업을 이식시키고, 에너지연료의 연소 및 생산공정에서 그리고 그 생산물의 과잉소비과정에서 각종 유해가스와 폐수 및 고형폐기물들의 배출량을 누적적으로 확대시키는 한편, 비용절감을 위하여 이러한 유해생산공정의 개선이나 폐기물처리 및 공해방지시설을 위한 자본투입을 기피하고 그 비용을 사회화시키거나 지역주민들에게 전가시켜 생계와 생존을 핍박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한국사회에서 환경 문제는 사회경제적 모순속에서 민중의 수탈과 그리고 지역의 착취와 파괴가 동시적으로 진행되면서 계급과 생활의 문제가 함께 제기되는 성격을 갖고 있다.
3. 한국 환경운동의 올바른 방향에 대하여
한국 사회에서 환경문제에 대응하는 실천운동, 즉 환경운동은 보편적 위기가 국지화되어 집중적으로 유발되는 지역사회의 기층민중들로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으며 또한 이러한 이유로 해서 그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다. 물론 지역사회의 민중, 민족적 실천운동이 지역주민들의 절박한 생존권과 관련된 특수한 사정에만 국한되어 지역환경문제를 야기하는 국지적 조건들의 해소에만 관심을 가진다면 그 운동의 효과는 별로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환경문제의 발생이 지역적으로 특수한 조건들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며 따라서 이에 대응하는 전략들도 다양할 수 있지만 환경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그 사회(또는 세계체제)의 총체적 구조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환경문제에 대응하는 한 지역의 실천운동이 진정한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그와 유사한 환경문제로 절박한 생존위협을 받고 있는 타 지역 주민들과의 연대만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구조적 모순으로 인해 유발되는 타부문 운동들과의 연대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연대를 통해 전개되는 실천적 환경운동은 환경파괴에 의한 인간생존의 위협을 자초하는 한국 사회의 모순된 사회체제를 변혁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환경운동은 계급운동이 아니다. 더욱이 서구의 녹색운동에서 나타난 한계와 오류를 보듯이 결코 중간층 운동도 아니다. 한국사회의 환경운동의 주체는 환경파괴로 인해 고통받고 피해받는 기층민중들이며 생활적 여유와 지식적 자각을 통해 변혁적 환경운동에 참여하는 신중간층들이나 이들은 결코 수직적 관계가 아니라 환경운동에 있어서 공동의주체인 것이다. 지배세력을 제외한 여타 사회세력들의 연대와 지원 없이는 환경 운동은 성공시킬 수 없다. 일종의 '무지개연합'이 요구된다.
이같은 무지개연합을 구성하는데 있어서 무원칙한 연대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변혁적 관점과 기층민중의 필수적 참여를 전제로한 무지개연합이 되어야 한다. 군산의 경우 이같은 변혁적 관점에서 무지개연합을 이루었으며 조직운영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대중적 위세의 힘을 강력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대중의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다른 지역에서의 환경운동이 운동의 주체를 확보하는데 있어서 중간층 중심으로 편향되는 모습이 나타나게 되는데 이는 매우 우려할 만한 환경운동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환경운동의 주체가 비민중적으로 나아가고 운동의 방식도 합법주의적으로 흘러간다면 이 는 서구에서 보여줬던 녹색운동의 오류를 그대로 밟아갈 것이며 결코 민중이 요구하는 환경운동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다른 나라의 운동이념을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하는 사대주의적, 교조주의적 운동방식의 폐해가 우리나라 환경운동에서는 나타나지 말아야할 것이나 한국사회의 모순된 사회구조에. 알맞은 운동의 이념과 방식을 자주적으로 창출해내아 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이자 임무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