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1991.6 | 칼럼·시평 [문화시평]
우리민족의 위대한 건망증-창작극회의 애니깽 을 보고-
김정수 연극연출가(2004-01-29 13:49:33)

최근 가열찬 사퇴 압력을 받고 있는 우리나라의 총리께서 얼마 전 TV토론에 출연한 자리에서 ꡐ고질적인 국민의 건망증ꡑ을 개탄하는 모습을 보았다. 느닷없는 말이라 이해하기에 시간이 걸렸지만 작년에
취한 교육 민주화 정책을 새까맟게 잊어버리고 이제와서 교육 민주화 타령이냐라는 요지였다. 둘러붙이는 말로는 탁월한 바 있지만 한 마디로 허파 바람빠지는 소리였다.
이 문제를 짚자는 것은 아니다. 『애니깽』의 작가인 김상렬씨가 지적한 건망증을 생각해 보자는 것이었다. 여하간 반세기 동안 본의 아닌 ꡐ국민의 뜻ꡑ으로 끌려다닌 우리 국민이 이제는 멍청한 국민으로까지 욕을 먹는 일이 분하기 짝이 없었다. 글쎄, 자신이 잘 잊으면 남들도 잘 잊을거라는 얄팍한 착각이 생기기도 하는 것일까?
『애니깽』- 선인장과, 용설란의 일종, 가시가 많고 치명적인 독성이 있음. 카페트, 밧줄, 옷감의 워뇨로 쓰임, 멕시칸 유카탄 반도의 특산물.
지난 4월 24일부터 계속 창작소극장에서 공연된 〈창작극회〉제 68회 정기공연(김상력 작/안상철 연출)은 그 제목이 주는 호기심으로도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물론 이 작품은 서울 소재 극단 〈神市〉에 의해 공연되었고 최근 군산 공연이 있기도 했다.
5월의 무더운 속에 최루탄 냄새가 가시지 않는 극장의 입구엔 작은 분향소가 설치 되어 있고 원혼을 달래는 진한 향내음은 이미 이 연극이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애니깽』의 대략은 이렇다.
1905년 4월, 일본인과 멕시코인의 불법이민 송출 음모로 지상낙원과 월등한 대우라는 허위 날조에 속아 조선인 1,033명이 인천항을 통해 팔려 나갔다. 이들은 멕시코의 애니깽 농장까지 수송되어 32개의 농장에 분산 수용된다.
살인적인 더위와 애니깽의 독가시, 그리고 노예와 같은 농장의 처우에 조선의 노예 아닌 노예는 연일 죽어나갔다. 국교가 수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 행패는 극심하여 가죽채찍 속의 삶을 피하여 조국의 임금에게 이 사실을 고하고자 탈출하다가 수없이 총살을 당하고 암매장 당했다.
이 사실을 안 고종 황제는 해결책을 모색하지만 안일한 궁성의 분위기와 일본의 농간속에 파뭋혀 잊어버리고 만다. 그리고 그는 죽고 나라는 쓰러지고- -.
조선 노예중 엄한우, 엄민우 두 형제는 더 이상 가족끼리의 생활도 허용하지 않는 농장의 결정을 계기로 10년간의 노예 생활을 임금님께 고하기 위해 동료 2인과 더불어 탈출을 결행한다. 그러나, 큐바에서 밀입국자로 체포되어 5년간의 중노동 형을 선고받고 복역중 한명은 희생된 채 멕시코와 미국 국경을 떠돌다 정신이상자로 체포되어 정신병동에 4년간 수감된다.
샌프란치스코에서 부두노역을 하던 두 형제가 일본을 거쳐 인천항에 도착한 것은 그들이 애니깽 농장을 떠난 지 30년, 인천항을 출발한 지 무려 40년 만이었다. 짐승과도 같은 몰골로, 짐승과도 같은 본능으로 조선의 임금께 참혹한 동포들의 실상을 고하겠다는 무서운 집념 하나로 평생을 걸려 돌아온 그들의 눈앞엔 임금도 나라도 없었다. 이미 멕시코인이 된 그들에게 불법 입국자로 판결, 투옥하는 일본의 법만이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다.
철저히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두고 쓰여진 이 작품은 섬찍하기도 답답하기도 하지만 가장 근접한 감정은 분통 터지는 것이다. 그것은 작품의 현장을 취재한 작가의 심정이 그랬을 것이며, 이런 작품을 골라내 울화 삭혀가며 제작한 연출의 심정이 그랬을 것이다. 그러기에 이 작품은 연극의 예술성 이전의 충격을 지니고 있는 작품이다.
당초 예술회관 공연시 이 작품은 2시간을 꼬박 채운 대작이었다. 유장영씨의 노래와 박영대씨의 안무가 주제를 입체감있게 꾸며내는데 단단한 기여를 했지만 대사전달의 무리와 단절된 각 장마다의 공백, 겉도는 듯한 춤이 문제로 지적이 됐었다.
이번 소극장 무대는 대극장 공연에서 드러난 단점을 극복한 모습들이 보여서 좋았다. 무대 등장인물을 대폭 줄이기 위해 춤패를 소리패로 전환시켜 객석 앞에 위치시켰고 자연스럽게 노출시키는 1인 2역방법을 사용햇으며 상대적으로 지루한 감을 주는 뒷 부분을 상당량 삭제, 공연 시간을 1시간 30분으로 단축시켰다. 또한 춤의 기능을 약화시키고 나레이터를 무대 뒤 스크린으로부터 객석으로 빠져나오게 해 전체적인 이미지를 ꡐ표현ꡑ중심에서 ꡐ서사ꡑ중심으로 탈바꿈해 보였다. 이러한 변화는 채찍을 제외한 대부분의 소도구를 제거하여 마임으로 처리케 했으며 음양효과 역시 노래패의 풍물을 이용한 사실로도 뒷받침된다. 그러나 배우 전체가 대부분 객석에서 등, 퇴장하고 의상의 교환까지도 노출시킨 마당에 각 장의 전환 때마다 절대얌전이 꼭 필요했나 하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아울러 좋은 극장임을 감안할 때 채찍의 처리 문제를 다른 효과적인 전달수단으로 다양히 변화시키는 문제도 생각해 볼 만했다.
언제나 탄탄한 연기를 보여주는 장제혁씨의 중후한 연기와 최근 「방디기뎐」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던 오진욱씨의 열연이 두 형제 한우, 민우의 성격을 조화롭게 구축하면서 작품에 힘을 불어 넣었다. 또한 한우의 부인 삼례 역을 맡은 전춘근씨의 차분한 연기도 전형적 외유내강의 한국여인상을 그려내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작가는 이역만리 멕시코의 유카탄반도 애니깽농장 땡볕 아래서 매맞고, 병들고 총에 맞고, 독사에 물려 죽어간 그들, 역사가 정치가 외면한 그들을 위한 위령제로 이 작품을 썼다고 말한다. 그리고 구한말 당국의 무능과 비겁에, 식민사관에 매몰된 우리의 어용사가들에 분노한다. 그리고 또 말한다. 우리 민족의 참으로 위대한 건망증을, 그러나 서두에 이야기한 총리의 건망증과 이 작가의 건망증은 분명 그 궤를 달리 하리라 믿는다. 우리에게는 최소한의 양심으로 최소한의 애정으로 괴로워하며 희곡을 쓰는 사람이 있었고 무대를 통해서나마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망각이 미덕처럼 보여지는 우리 민족에게 숨겨진 생명력을 보여준 작품이였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