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1992.6 | [문화시평]
'일고수 이명창'의 참뜻 앉히기 -제12회 전국 고수대회를 보고 -
정회천․전북대 교수․국악과 (2004-01-29 13:52:32)
명고수의 등용문인 전주 전국고수대회가 올해로 12회를 맞았다. 1982년 5월 24일 제2회 대회 명고부 장원상을 받았던 필자는남다른 감회가 아닐 수 없다. 꼭10년 세월이 흐른 것이다. 당시에는 명고부와 일반부에 한하여 치루어졌던 전국고수대회는 그후 83년 3회 대회에 신인부, 84년 4회 대회에 학생부가 각각 신설되어 다양한 계층의 출전을 유도하였고, 특히 지난 90년 10회 대회부터는 대명고수부를 두어 인간문화재를 제외한 전문 고수 및 본대회 명고부 장원자들이 출전. 기량을 겨룰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다. 그리고 올해 12회 대회에는 대명고수부 장원자에게 대통령상과 상금 3백만원이 수여되었으며 그동안 젊은층의 실력에 눌려 출전을 망설여 왔던 노장년 층을 위해 일반부와 신인부에 각각 청년부와 장년부로 나누어 모두 7개 부문으로 경연이 진행되는 등 단일분야의 대회로는 전국 최대 규모의 국악경연대회로 정착되었다. 예로부터 <일고수, 이명창>, <소년명창은 있어도, 소년명고는 없다>라는 이야기가 국악계에 전해오고 있다. 전자는 명창 보다 고수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좋은 소리판의 형성을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뛰어난 고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후자는 명고수가 되려면 실로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명창들의 소리에 북을 쳐서 여러 유파별 소리의 이면에 맞아떨어지는 원숙한 기량을 소유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에는 또 다른 여러 가지 뜻이 담겨져 있다고 하겠으나 한 마디로 말해서 소리판에서 고수의 구실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크게 부각시켜주고 있다고 하겠다. 1978년 <판소리 고법>이란 좀 생소한 명칭으로 중요 무형문화재 제59호의 기예능보유자로 지정되어 문화예술계에 큰 화제가 되었으며 특히 이번 대회 행사 프로그램의 전면 사진으로 소개된 바 있는 명고수 김명환 선생은 생전에 그의 제자들에게 고수의 기능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요소가 있음을 강조하였다. 첫째로, 고수는 가수와 똑같은 자격을 지닌 소리판의 공연자이다. 판소리는 가수 한사람이 독연하는 일인 무대가 아니라 가객이 소리를 담당하는 배우라면 고수는 북으로 반주를 담당하는 또 하나의 배우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고수는 반주자이다. 고수는 판소리의 모든 유파의 장단과 가풍에 통달해야 하며 정확하고 다양한 고법에 숙달되어있어야 반주자로의 역할을 완수할 수 있다. 셋째로, 고수는 지휘자로서의 구실을 맡아야 한다. 얼핏 보기에 장단이 소리를 따라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소리가 장단을 따르기 때문에 고수는 가수를 지휘하여 소리의 완급을 조절해 주어야 한다. 가수가 기운이 딸려 소리가 처지면 거두어주어야 하고, 필요 이상으로 소리를 몰고 나가면 당겨 주어야한다. 넷째로, 고수는 효과를 담당한다. 고수의 북소리와 추임새는 판소리의 극적 장면의 변화를 표현하는 유일한 효과 도구이다. 따라서 고수는 소리에 맞추어 울리는 북소리와 추임새로 음양, 명암의 배경과 희노애락의 감정을 잘 표현해 주어야 한다. 다섯째로, 고수는 청중을 대표하고 연출자로서의 구실을 한다. 고수의 추임새는 그 감정이 바로 청중들에게 전달되어 청중으로 하여금 감동의 파동을 불러일으키게 하고 청중을 대신하는 역할을 담당하여 스스로 소리판의 분위기를 유도하는 연출자의 구실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소리판에 있어서 고수의 구실이 중요하고도 어려운 것임을 생각할 때 우리는 비로소 <일고수, 이명창>의 참뜻을 알게 될 것이다. 이번 제12회 전국고수대회의 최대의 관심사는 역시 대회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상이 주어진 대명고수였다. 서울 중앙국립창극단의 전임고수인 천대용, 인간문화재 박동진 명창의 수행고수로 전북에서 활동중인 주봉신, 지난해 타계한 대전지방 명고수였던 박오용의 아들로 전북대학 국악학과 4년 휴학생이기도 한 박근영 3인의 대결은 힘있고 패기있는 북가락과 오랜 국악계의 경륜과의 승부이기도 했다. 아주 근소한 차이기는 했지만 박근영에게 주어진 대상의 의미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국악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각종경연대회가 대개 연장자순으로 최고상의 수상자가 결정되는 타성에서 벗어나, 정작 대회 현장에서 발휘한 실력의 평가에 의한 심사결과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대명고수부의 수상자로 1회 이성근, 2회 김청만, 명고부에는 나창순, 정회천, 배기봉, 강남종, 오재민, 송인섭, 추정남, 조용안, 방기준, 한양수, 정영선, 올해 연만기로 이어지는 수많은 고수들을 대상자로 배출한 바 있어, 인간문화재 였던 김명환, 김득수, 김동준 세분의 명고수가 차례로 타계한 고수계에 작은 위안이 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명고수의 양성은 일년에 한번 치러지는 대회의 결과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보다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수업에 의해서만이 가능한 것이라 생각된다. 전국고수대회는 소리북을 사랑하는 동호인들과 전문적인 직업고수들의 북가락이 여러 명창의 소리에 함께 어우러지는 북의 축제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것이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