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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6 | 연재 [세대횡단 문화읽기]
어설픈 장삿속이 만든 모노드라마-적과의 동침(Sleeping with the Enemy)
최만호․전주타임즈, 편집인(2004-01-29 13:57:39)

가정에서 매맞는 아내-요즘 텔레비젼의 ‘월드뉴스’에 나오는 것처럼 심지어 목숨까지 빼앗기는 아내들의 비극은 미국에서의 일만은 아니다-를 생각한 듯한 20세기 폭스사가 직배한 이 영화는 ‘매’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아름답고 성실한 아내 로라(줄리아 로버츠-<귀여운 여니(Pretty Woman)의 그 신데렐라)와 돈 많고 능력있는 남편 마던(패트릭 버긴)의 사생활을 그린 멜러 드라마다.
그들은 결혼한 지 4년째 되는 보기에 행복이 넘쳐나는 완전한 부부다. 하지만 속사정을 보면 부부가 아닌 ‘나’와 ‘적’의 관계에 놓여있는 속 빈 강정이다.
결벽증과 성적 질투심에 눌려 있는 남편은 함부로 아내를 때리고, 일방적으로 강간하듯이 아내를 소유하려 한다. 서로를 위한 믿음과 애정 없이 욕망과 폭력으로 아내를 다스리려 하고, 선물과 섹스를 통해 한때 나누었던 이상적인 감정을 되찾으려 하는 남편은 로라에게는 단지 증오와 공포의 대상인 적일 뿐이다.
고통과 권태 속에서 뛰쳐나갈 기회만 노리던 로라는 어느날 밤 요트를 타고 바다로 나간 김에 사고를 위장, 탈출에 성공한다.
새로운 삶의 터전에서 새로운 남자-연극교수 캐빈 앤더슨-에 의해 ‘귀여운 여인’이 되는 로라. 그러나 그녀가 변기 속에 버린 반지를 발견하고 복수심에 불타는 마던은 사냥개처럼 집요하게 아내를 추적한다.
마던의 눈이 되어 로라의 집을 샅샅이 &#54995;어간느 카메라워킹은 결혼반지를 2개 낀 손가락, 정사장면에 흐르는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 가지런히 걸린 수건과 통조림, 불안하게 엇갈리는 두 사람의 눈표정과 함께 조셉 루벤감독이 가장 고심해서 준비한 듯한 일종의 공포 효과-<사랑과 영혼(Ghost)>에서 많이 빌려 온-를 내는 데 한몫을 단단히 하고, 이에 자극받은 관객들의 괴성을 쉽게 끌어 낸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이러한 단편적인 흥미를 빼놓고는 정작 중요한, 이야기를 끌어가는 긴장된 분위기의 유지와 주제-사랑과 평화가 충만해야 할 가정이 그 근본인 부부관계에서부터 갈등과 폭력을 만들어 내는 인간억압의 손쉬운 터전일 수 있다는-의 폭넓은 전달에는 쉽게 실패하고 있다.
남자 잘못 만나 불행해 진 한 여자가 자신의 몫에 가까운 행복을 누리려는 몸부림을 잘 따 놓은 각본은 재미있다. 그러나 마던이나 연극교수에게서 그에 걸맞는 분위기나 힘을 느끼기에는 역부족이다. 마던역의 패트릭 버긴은 그저 성난 남자일 뿐, 다양하고 위협적인 솟아나는 연기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고, 앤더슨에게서 힘들게 살아 온 한 여자를 따뜻하고 여유있게 감싸주는 분위기를 찾아보기도 어렵다. 겨우 줄리아만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기둥 노릇을 아쉬운 대로 해내고 있지만 절대로 ‘거리의 매춘부’같지 않던 싱싱한 매력과 섬세한 분위기, 황홀한 활력을 느끼기는 힘들다. 끌어가는 연출도 뚜렷한 인과관계나 정점의 전개없이 맥빠진 느슨함으로 일관하고 있고, 도대체가 오리무중이다.
남성 중심의 사회문화구조속에서 여주인공의 남편에 대한 증오와 복수를 담고 있을 뿐-그래서 ‘적’이 죽고, 죽어 마땅한 악역이므로 총 맞아죽는 장면에서 박수 치는 것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는-구체적인 삶의 내용들이 얽혀지면서 다가오는 긴장이나 갈등이 전혀 찾아지지 않는다.
사회 전반에 널리 퍼져있는 가정에서의 폭력과 학대-이는 부부뿐만 아니라 어린이에게도 그대로 해당된다-에 대한 관심-따라서 개인과 사회, 인격의 존엄과 집단이기주의에 대한 관계로서의 성과 애정, 물질의 풍요와 정신의 여유-에 의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어 내는 데까지는 눈길이 미치지 못한다.
결국 ‘팔자 사나운’ 여자가 운나쁘게 남자 잘못 만나 겪게 되는 어두운 ‘개인사’일 뿐, 말을 바꾸면 좋은 여자와 넉넉한 남자가 꾸며가는 행복한 가정-아메리칸 홈 드리밍(Dreaming)에 대한 동경을 밑바닥에 깔고 있는, 요즘 헐리우드의 유행이 된 잡탕식-공포, 복수, 폭력, 섹스 그리고 환상-멜러물에 불과한 독백이다.

◇꼬리말 : 줄리아만 데려다 놓으면 빅 히트를 칠 줄 알았는가?
<귀여운 여인>에서 줄리아가 보여준 신선하고 활기있는 매력이 리처드 기어라는 만만찮은 배우가 풍기는 화려한 분위기에 힘입고 있다는 쉬운 사실을 감독은 몰랐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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