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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6 | [신귀백의 영화엿보기]
우리 역사와 맞닿아 있는 미국의 추악한 범죄 J F K
이재규․자유기고가 (2004-01-29 13:58:20)
미국을 제대로 보는 것은 현재의 미래와, 세계사를 이해하는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면 우리에게 심어진 미국상은 어떠한 것인가. 세계평화의 수호자, 국제헌병인가 아니면 전쟁광, 정치공작의 학교인가. 미국인이 되지 못한 것을 천추의 한으로 여겨 옷차림마저도 나비넥타이를 즐겨 매는 김동길류의 극단적인 숭미주의자들은 미국식 민주주의 모델을 극찬하지만 과연 미국은 모범적 민주주의의 전시장이며 이성과 합리주의가 지배해온 사회인가. 영화 <JFK>는 a미국사의 대부분을 차지해온 정치공작, 피비린내 나는 돈과 권력이 다른 나라를 겨냥해서뿐만 아니라 바로 자신의 땅에서도 거침없이 저질러져 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1963년 11월 22일, 미국역사에서 가장 젊은 나이에(60년 취임담시 43세) 대통령이 되었던 케네디는 텍사스주 달라스에서 무개차로 카퍼레이드를 벌이던 중 갑작스런 총격으로 암살당했다. 케데디의 암살 이후 대통령에 취임한 존슨은 1964년 통킹만사건을 계기로 베트남 전쟁을 존격적으로 시작하고 미국의 군산복합체는 변함없는 호황의 가도들 달린다. <JFK>는 60년대의 미국을 케네디 암살사건을 중심으로 냉담하게 보여준다. 올리버스톤 감독은 이 영화에서 케네디암살사건에 대해 1) 단독암살범으로 발표된 오스왈드는 정보공작원 출신으로 그는 암살의 진범이 아닌 희생양이다. 2) 케네디의 암살은 당시 확전을 노리는 정부내 극우파와 군부, 군수산업의 대자본가들, 각 정보기관이 총체적으로 결탁한 정치음모이며 결국 은폐된 쿠데타이다. 3) 케네디 암살 이후 로버트 케네디의 암살, 마르틴 루터 킹의 암살 등 연이은 정치테러는 모두가 이러한 파시즘의 계획된 범죄이다라는 정치적 결론을 끌어내기 위해 모든 자료를 배치하고 동원한다. 카메라는 케네디암살사건에 의문을 품는 개리슨 지방검사(케빈코스트너)의 수사과정을 하나하나 따라가면서 은폐된 역사적 진실들을 들어올리고 그 과정에서 만나는 거대한 힘의 실체들을 '끔찍하게' 보여준다. 공식적인 수사결과 발표가 그 얼마나 허구적인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실증하기 위해 수많은 목격자가 동원되고 현장실험이 거듭된다. 올리버 스톤은 탁월한 연출력으로 당시의 현장필름을 곳곳에 배치함으로써 관객들을 숨막히는 역사의 현장으로 안내한다. 관객들은 화면에는 등장하지 않는 또 한사람의 배심원으로 암살의 현장에 참여한다. 영화속의 배심원들은 개리슨의 열정적인 논고와 눈에 훤히 들여다보이는 정황에도 불구하고 개리슨이 체포. 기소한 피고인, 권력의 하수인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개리슨은 자신의 아내, 아들(아마도 미국의 미래를 상징할)의 손을 잡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법정을 걸어나간다. 그들의 어두운 뒷모습에서 카메라는 멈춘다. <JFK>는 올리버 스톤 감독이 이전의 작업에서 보여주었던 '역사에 뛰어든 한 개인의 미시적 체험과 절규'를 뛰어넘어 '한 역사적 사건에서 드러난 진실을 통해 거시적 차원에서 미국의 본질과 추악한 미국사의 고발'에 까지 도달했음을 알려주는 징표이다. 확실히 이 영화는 다른 '꿈의 제조공장-헐리우드'에서 만든 흥행만을 노리는 미국영화와는 다른 느낌을 준다. 진지한 문제의식과 자칫 식상할 수 있는 소재를 밀도 있게 다루는 송씨 덕분에 관객은 신물나게 보아야 했던 람보식의 가공현실이 아닌 진짜배기 역사를 대면하는 '긴장감'을 맛볼 수 있다. 일반관객들은 이 영화를 통해 '꿈'과 '이성과 합리주의'가 지배하는 사회라고 믿어왔던 미국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을 얻을 수 있을 것이고 좀 더 냉철한 관객이라면 1960년대의 시대적 정황을 오늘에 비교하는 것을 통해 소련없는 미국의 패권주의가 걷게 될 미래에 대한 중요한 시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마지막대목에서 무려 30분간 계속되는 게리슨의 감동적인 법정논고를 주의깊게 지켜보고 있노라면 진실이 수시로 은폐당하고 권력에 의해서 왜곡되는 우리 현실의 답답함에 대한 '감정이입'의 경지까지도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다른 미국영화에 비교해 갖는 탁월한 미덕에도 불구하고 역시 미국영화는 미국영화다라는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다. 아마도 이것은 미국인이 갖는 미국사에 대한 '애정-그래도 버릴 수 없는 조국'과 미국의 주된 피해자였던 제3세계 민중이 갖는 '비판적 거리-붕괴되어야할 제국' 사이의 간극인지도 모르겠다. 올리버 스톤은 이 영화에서 암살의 희생자인 케네디를 미국의 진보와 양심을 실현하려 했던 인물로 그려내고 있다. 그 대칭점에 암살의 주범으로 지목되고있는 군부와 강경극우파, 군산복합체가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1960년대의 세계사를 진지하게 공부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올리버 스톤처럼 우리는 '미국에 절망하면서도 미국을 믿는'심정이 될 수 없다. 케네디에게 그가 암살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 때문에 전쟁에 반대하는 평화주의자의 이름표를 붙여줄 수는 없는 것이다 1960년대 초반의 상황에서 케네디 정권은 미국의 전세계적인 지위에 생긴 균열들을 <새로운 방식과 쇄신된 활동>을 통하여 막아낼 수 있기를 바라면서 곧바로 세계전략과 대외정책 노선을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케네디 정권은 이전의 대량보복전략을 대신할 새로운 처방으로써 '유연한 대응'이라는 새로운 입장을 제시하였다. 그 결과 전세계에 걸친 군사적 개입주의로부터 <제한된 후퇴전략>이 실행되었다. 어느 글에서처럼 '보다 민주적인 과장법'을 통해 미국의 패권유지를 위한 시도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케네디는 그 일환으로써 평화봉사단을 창단하고 남미에서 진보동맹을 결성하였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평화봉사단은 군사력보다는 경제, 문화적인 수단을 통하여 개발도상국에 대한 최대한의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미국에게는 매우 효율적인 민간차원의 '침투기관'역할을 하였다. 진보동맹 역시 남미에서 미국의 재정적 뒷받침에 의하여 이 지역 일부 부르조아계급의 지배를 강화시키려는 '평화적 예방혁명'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이러한 우회적 정책뿐만 아니라 케네디는 집권초기에 베트남에 1만6천명 규모의 군사고문단을 파병함으로써 이미 대규모 전쟁의 첫발을 내밀고 있었다. 케네디는 '국지전을 통한 분쟁해결'을 위하여 다수의 혁명용 특수전 부대를 육성했으며 월남에서는 미국의 정책에 장애가 되는 고딘디엠을 암살하기까지 하였다. 우리 역사와 관련하여서 잊어서 안될 것은 케네디 정권 하에서 5.16 군사쿠데타가 발생하고 미국이 이를 즉각 승인했다는 점이다. 이렇게 볼 때, 케네디를 이야기할 때 주로 거론되는 <뉴 프론티어>정신은 새로운 조건에서 국민을 통합하고 동원하기 위한 통치 이데올로기였다는 것이 명백해진다. 결국 케네디의 진보성이란 미국의 전반적인 국가-독점체의 이익을 옹호하고 실현하는 것과 정면매치 되는 것이 결코 아니었으며 오히려 보다 세련된 형태의 개입전략이 만들어낸 허구의 이데올로기였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물론 이러한 일시적 제한적 후퇴 전략의 채택이 동반한 몇가지 개혁정책(인종문제나 사회주의권과의 평화적 공존 추진)이 가져온 일정한 진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항상 그 본질에 있지 않은가. 케네디는 변화가 요구된 미국의 대외정책과 그 <노선변화>를 둘러싼 미국 내부의 입장대립에서 보다 분명한 우익정책과 확전을 요구하고 또 그것을 통해서만 연명 할 수 있었던 군산복합체, 극우정치인, 군부가 정치공작을 통해 승리하는 과정에서 제거되었다. 존슨과 공화당은 이 길에 순조롭게 동조함으로써 정치적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1968년 두달 사이에 저질러진 로버트 케네디와 흑인민권운동가 마르틴 루터 킹 에 대한 암살은 미국사회를 이끌어 가는 파시즘세력이 '빛조차 스며들기 힘들 정도로' 미국사회를 조여 가는 과정에서 성가신 장애물을 제거하는데 이제 정치적 암살이라는 수법을 고전으로 채택했음을 알려주는 증거물이었다. 60년대 이후 미국사회에 울린 형식적 민주주의에 대한 조종은 소련이 없어진 세계에서 새로운 단일패권주의 전략으로, 부시즘으로 끊임없이 울려나오고 있다. 지난 2백년의 미국사는 결코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 미국과 한국의 '관계사'에는 김구암살, 분단정권의 수립, 5.16, 미국에 의해 지도된 정보기관의 창설, 미국에 의해 치밀하게 육성된 친미군부, 10.26, 광주항쟁… 결코 자랑할 수만은 없는 오욕의 역사들이 널려 있다. 미국은 우리 역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그 오랜 노련한 공작의 손을 뻗쳐 우리 역사의 진보적 전진을 가로막아 왔다. 영화 <JFK>에서 드러난 추악한 범죄는 우리 역사와 맞닿아 있다. 바로 그런 점에서 <JFK>는 미국의 본질과 정치공작수법을 올바르게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유용한 텍스트이다. 영화 <JFK>의 한편으로 오늘도 안방극장을 점령하고 있는 '머나먼 정글', '맥가이버', '소머즈' 류의 미국영화들은 미국의 3세계 개입을 정당화하는 문화조작의 첨병으로 그 충직한 역할을 계속 하고 있다. 우리의 진정한 <이성>과 역사의식이 그것들이 강요하는 허위를 짓부셔 버리지 못하는 한 <JFK>의 유용성은 여전할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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