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6 | [문화저널]
옛적 영험이 미신이 된 오늘
- 장수 조탑신앙 -
이상훈․편집위원
(2004-01-29 14:02:30)
토요일 오후, 학교일과를 마치고 장수를 향하는 마음은 지난 한주일의 찌꺼기를 씻어내고자 하는 것이었다. 장계를 거쳐 순식간에 해발 5백~6백여 미터의 작은 싸리재, 큰싸리재채, 집재를 넘어 활짝 만개한 꽃봉오리같이 겹겹이 산으로 둘러싸인 장수읍내로 버스는 파고들었다.
장수지역에서는 마을굿 신체가 다른 지역과 달리 돌을 원추형, 원통형으로 쌓은 무더기위에 선돌을 하나씩 올려놓는 형태 소위 '조탑'이라 불리는 형태로 되어 있다.
장수지역에는 약 20기 정도의 조탑이 있는데 이번 여정에서는 장수읍내에 있는 조탑을 찾아 봄으로 이 지역 조탑신앙의 면모를 파악해 보고자 한다. (당산 형태가 돌로 만들어진 조탑은 산간지역이라는 지역특성에서 기인한 것으로 생각되며 지금도 몇몇 곳은 마을굿의 신체로 희미하게 신앙되어지고 있다. )
장수읍내에는 몇개의 애드벌룬이 띄워져 있고 읍내는 한산한 편이었다. 잠시 후에 알게된 일이지만, '이웃사촌 한마음 동서가 한마음' '지리산 사돈' '우리는 한 형제 다정한 이웃' 등 애드벌룬에 새겨진 말은 장수중학교에서 지리산을 중심으로 자리잡은 지리산 사촌회에서 우의와 친목을 다지기 위한 「제1회 영․호남 한마음 축제 한마당」이 벌어지고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었다. 아마, 이는 영․호남 지역감정의 벽을 허물기 위해서 마련한 것으로 생각된다.
원송천마을(70호, 논농사․담배, 각성바지) 입구에서 김금옥(82세) 할아버지를 만났다. 나이에 비해 매우 건장하게 보인다. 마을입구에는 10여 그루의 느티나무가 있고, 양쪽에 조탑이 세워져 있다. 높이가 2미터 정도 되는 크기에 원통형 모두 남근석모양의 선돌이 올려져 있다. 언제 만들어졌느냐는 물음에 자신도 모른다면서 아마 마을이 만들어질 때 세워졌을 것이라며 말을 잇는다. 이곳 당제는 섣달 그믐날에 (언제나 똑같은 날에 지내는 것은 아니다) 생기복덕에 맞는 제주만이 음식을 차리고 정성스럽게 당제를 지낸다. 올해도 제를 지냈다는 표시라도 하듯 왼쪽 조탑위선돌에 금줄이 둘러쳐져 있었으나 김금옥할아버지 조차 별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눈치였다. 할아버지와 조탑을 함께 사진에 담고 원종천마을 옆마을인 진다리로 발길을 옮겼다. 조용하고 전혀 인적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마을이었다. 입구에 1미터가 조금 넘어 보이는 선돌이 눈에 띄었고, 마을중심에 둥구나무가 있어 둘러보고 주위를 살펴보니 못자리를 돌보는 아주머니가 있기에 반갑게 뛰어가 인사를 건넸다. 다정하게 웃으신다. 대뜸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 그러면서 나이를 묻는다. 왜냐고 하니 서울에 있는 아들과 같은 또래쯤 되어 보인다며, 당신의 아들이 생각나서 그렇다고 한다. 스물여섯이라고 하는데 서울서 회사에 다닌다며 못자리를 살피면서 진다리 당산은 비석(마을앞 선돌)과 둥구나무라 하며 음력 정월 초이랫날 마을 좋으라고 지낸다며 지금도 지낸다고 한다. 건강하시라는 말을 전하고 경지정리가 한창인 구락마을(40호, 논농사, 하씨․홍씨)로 향하였다. 먼지가 바람에 이만저만 일어나는 게 아니었다. 거의 마무리 단계인양 싶었다. 마을입구에 본래 2기의 조탑이 있었는데 경지정리때 1기는 없어지고 그나마 1기도 숲안(숲거리)에 조금은 엉성한 형태로 현존한다. 제사도 전혀 지내지 않는다고 한다. (서강선 77세)
다시 장수읍내로 와서 천천 방향으로 20분쯤 걸어 선창리 음선 마을에 닿았다. 이 마을에도 역시 마을입구에 제법 큰 2기의 조탑이 세워져 있다. 역시 위에는 남근석 형태의 선돌이 세워져 있고 왼쪽 조합에는 지금도 금줄이 둘려 쳐져있다. 정월 보름 이후에 제를 지낸다는 말 이외 더 이상의 말을 듣지 못하고 되돌아 와야만 했다. 사람찾기 힘든 것이 오늘 장수중학교에서 열리는 행사 때문인 듯 싶었다. 돌아오는 길에 예전에 장승이 세워져 있던 노하리 숲을 찾았다. 운동을 할 수 있도록 시설이 제법 잘 꾸며져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이리저리 장승을 찾아보았으나 역시 없다. 그것에 모인 여러 어른께 물어보니 예전에 장승이 세워진 자리를 가리키며 지금은 없다고 한다. 장승이 있었을 때는 이곳이 무서워 오지 못했다며 웃으신다. 그중 한 분은 미신을 누가 믿겠느냐며 예전에 여기뿐 아니라 다른 곳에도 세워진 것을 보았는데 지금까지 남아 있는 곳은 없다고 하며 장승뿐만 아니라 돌을 쌓아 놓고 정성을 드리면 모두 신(神)이 깃들인다면서 말끝을 흐린다.
조탑신앙도 민속신앙의 한 형태로 분명 마을의 공동체의식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이제 남녀노소가 미신이라고 자연스레 말한다. 미신이라는 말에서 우울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터가 중심을 잃어버리는 상황이 더욱 우울하게 만든다.
몇 년 전에 비해 대부분의 마을 호수는 수십 호씩 줄어들고, 빈집도 늘어가고 있다. 흔히들 고향 땅에서 정신적인 휴식을 얻을 수 있다지만, 혀빠지게 농사지어 봤자 한해 농협에서 빌어다 쓴 농약값, 비료값 등을 치르다 보면 남은 게 없다. 이러하니 정신적인 휴식을 준다는 고향을 어쩔 수없이 떠난다. 그러다보니 옛적에 영험하다고 하는 둥구나무나 조탑에 마을굿 칠 사람들 하나 둘 떠나고 나이든 할아버지들만이 마을을 지키고, 마을굿 지내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큰일이 닥칠줄 알고 매년 거르지 않고 지내다 어느 해부터인가 띄엄띄엄 지내다 이제는 아주 지내지 않게 되었는데도 별스런 일이 생기지 않으니 그 옛적 영험은 미신으로 금새 둔갑해 버린 것이 아닌가. 아직도 희미하게 신앙되고 있는 것은 그 옛날의 미련,향수 때문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말이 될까. 본시 마을사람들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행하여지지 않는 민속이란 이미 죽은 민속인 것이다. 죽어있기에 억지로 되살리려고 하나 그것이 본래대로 될 수 있겠는가. 인위적으로 하는 것 자체, 그것은 이미 문제가 내재되어 있다는 말이 아닌가. 오늘 동서화합의 마당 역시 문제가 이미 크게 발생하였기에 이렇게라도 하여 해소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것으로 문제가 해결된다면 다행이겠으나 이미 썩어 문드러질 대로 문드러진 상태에서 무엇을 크게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의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그러는 가운데서 오늘날 문화를 자연스럽게 창조할 수 있는 거름을 마련하여야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장수중학교에 근무하는 늘벗과 돌아오는 길을 함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