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2월 말 눈보라가 제법 날리던 날이었다. 첫 발령을 받고 들뜬 마음으로 부임지인 경기도 포천으로 향하던 나의 발걸음은 마냥 가볍게만 느껴졌다. 그때에는 평소에 느껴보지 못한 안도감(발령 적체가 심했었음)으로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를 생각하기 보다는-졸업 후 마음을 졸이며 발령을 기다려야 했던 1년 동안의 정신적․육체적 갈등과 고통 때문에-우선 숨 돌릴 겨를도 없이 어서 가서 학생들을 만나고 싶은 설레이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재촉할 수 밖에 없었던 기억이 난다. 그 후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학생들이 내 시야에 하나, 둘 들어오는 것을 느끼게 되었을 때 아! 이제 나도 교단에 서 있구나! 하는 또 한번의 안도감이 비로소 앞으로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했던 기억들이 또 새롭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 그동안의 짧은 교단 생활을 뒤돌아 보니 어느덧 진정한 교사가 아닌 조련사(?)로 변해버린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아직은 교단 생활의 애숭이로서 때(?) 덜 묻은 교사라고 자부해 왔던 나의 좁은 소견이 지금은 오히려 부끄럽게 생각된다. 교육계 일각에서 참교육 실현을 위해 자성(自省)의 목소리를 높여가며 꿋꿋하게 실천해 가는 선․후배 선생님들에 비하면 내 자신이 얼마나 비굴하고 옹졸했던 위선자였는지, 생각해보면 스스로 부끄러움을 감출 수가 없다.
누가 나에게 4년여 동아 교단에 서서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 얼마나 헌신적으로 노력해 왔느냐고 묻는다면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떨굴 수 밖에 없음이 나의 솔직한 고백이다.
그 동안 나는 진리를 갈망하며 내 눈과 입, 그리고 나의 손놀림 하나까지 빠뜨리지 않고 뚫어지게 바라보며, 갈증을 해소시켜 주기만을 기대하는 학생들의 시선들을 묵살․회피해 버리고 앵무새처럼 교과서에 있는 묵은 지식만을 전달하면서 미주알 고주알, 그것도 다방면에 풍부한 지식이나 있는 것처럼 학생들 앞에 군림해 왔던 또 다른 위선자였다. 그런가 하면 지난 2년여 동안 3학년 담임으로 진학 지도를 하면서, 그야말로 교육이 아닌 기계적이라 할 수 있는 훈련(?)을 통하여 대학에 한․두명 더 보내는 것이 곧 능력있는 교사로 인정 받을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에 자율(?)학습과 보충수업, 그것도 모자라 야간 자율학습까지 억지로 강행시켜 왔던 일을 생각하면 내가 얼마나 지독한 교단의 독재자였는지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하물며 혹시 내가 교사로서 유능함을 인정받기 위해 학생들을 도구나 수단으로 삼았던 잘못된 생각을 가진 적은 없었다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는가. 또 험상궂은 인상으로 두 눈을 부릅뜨고 몽두이까지 들고서 침묵을 강요하고, 온갖 감언이설(甘言利說)로 학생들을 내몰았던 것이, 대죄나 짓고 감방에 있는 죄수들 다루듯 하지나 않았는지……모두가 아니라고 잡아뗀다면 그것 또한 나의 또 다른 위선일 수 밖에 없을 거시다.
처음에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교육적 소신만은 버리지 않으려고 번민했지만 결국에는 나도, 역시 잘 길들여진 조련사(?)로 변했던 것이다. 그것을 단지 시류(時流) 탓으로 돌리는 일조차 스스로 괴로운 일이었고, 그것은 곧 나의 어리석음과 교육의 본질이야 어떻든 나만 편하고 위로부터 인정받으면 그만이라는 잘못된 욕심때문이었다. 그것은 뛰어난 조련사가 되려고 안간힘을 기울여 왔으며 학생들에게는 군말없이 순종하는 꼭두각시가 되어줄 것을 강요했던 내 탓이었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시험보는 기계가 아닌 줄 알면서도 내신성적, 출석점수 관리에서부터 반드시 대학에 들어가야 한다는 당위성만을 앞세워 강요 아닌 강요로 충천(衝天)하는 학생들의 기(氣)를 짓눌러 놓았던 일들이 어쩌면 교육의 본질을 외면한 직무유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교단에서는 훈화(訓話)하는 꼬리를 달아 정직하고, 성실하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등 그럴듯한 말로 자신을 치장하면서 사표(師表)로서 행동함이 없이 위세만을 부렸던 것도 역시 위선이었다.
제 아무리 뛰어난 조련사라 하더라도 인간의 교육을 담당하는 참다운 교사가 될 수 없음은 만천하가 다 아는 주지의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 교단에서는 그러한 사람이라야 훌륭한 교사로 평가받고, 거의 대부분의 학부모들과 그러한 사람을 유능한 교사로 추켜세우는 일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 것이 교육계 초년생인 순박한 교사들에게 위선의 탈을 씌워주지나 않을 지 심히 우려될 뿐만 아니라 그와 같은 현실이 자꾸만 서글퍼짐은 나 혼자만의 괴로움-몇년 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교육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갈등에서 뚜렷이 드러나고 있는 것을 보면-은 결코 아니다.
언제부터 생겨난 말인지 모르나 “선생은 있으나 스승은 없고 학생은 있으나 제자는 없다”는 말이 근거없이 생긴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이 시대가 야기시킨 필연적 결과요, 교사들 스스로 ‘위선의 탈’을 쓰고 본질을 외면함으로 생겨 난 말이다.
이제부터라도 새로 태어나는 마음으로 초롱초롱한 학생들의 눈에 빛이 되고자 한다면 그 동안 눌러쓰고 있었던 ‘위선의 탈’을 벗어던지고 학생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서야 할 것이다. 참 교사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하면서 학생들에게만 행동의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이제 진정으로 거짓된 모습으로 제자들 앞에서 추태를 부리지 말아야 하겠다. 옳은 것을 당당하게 옳다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참 교사로서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내가 먼저 스승으로서 제자리를 찾을 때 제자가 있기 마련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