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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6 | 칼럼·시평 [문화칼럼]
한국전쟁의 올바른 인식을 위하여
이중호 전북대 교수, 정치학(2004-01-29 14:03:11)

오늘의 우리에게 한국전쟁은 무엇인가? 분단 45년이 지난 오늘에도 우리는 동조상잔의 참혹상과 각자의 주관적, 현상적, 단편적 직접 경험과 기억들을 전후세대에 생생하게 전하면서 북한 공산집단의 침략본성을 폭로하며 민족적 이질감을 심화시켜 왔다. ꡒ분단과 냉전과 침략과 비극이 모두다 저들의 야만성에 기인하며 조금도 그 침략적 본성이 변치 않아 온겨레가 전쟁 재발의 위험 속에서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ꡓ(한국교육개발원편, 고등학교 국민윤리 263,4, 285쪽).ꡒ이러한 상황과 여건 속에서 우리 민족이 살아 남을 수 있는 길은 민족 주체 의식을 강화하고 주어진 여건에서 국가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고 국제 협조체계를 확대, 강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공산주의자들과 일부 몰지각한 지식인들은 민족 주체성을 강화하려는 노력을 복고주의 또는 반동적 파시즘으로 비방하고, 국제 협력 체제를 강화하려는 노력을 국가 이익과 주권을 외세에 종속시키는 기도라고 비방한다. 개발도상국에서는 개인의 자유나 권리를 보호하기보다는 국방, 건설, 경제발전, 그리고 자주 정신의 확립에 큰 비중을 둔다. 계급 이익보다는 민족 전체의 이익을 우선시하여 계급대립을 해소하고 국민 통합을 강화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ꡓ(같은 책, 205쪽)고 교육한다. 과연 타당한가? 침략개념의 타당성 여부를 차치하고 사건의 성격과 집단의 성격은 구별되어야 한다. 또한 계급이익과 민족 혹은 국가의 이익을 이분법적 개념으로 구별하고 있다. 여기에는 부분과 전체 혹은 선과 악의 가치대립을 전제하고 있지만 이는 추상적, 당위적 인식일 뿐 본질적으로 계급 이익의 정당화를 위한 이데올로기적 분석일 뿐이다. 민족주의의 역사적 발전 속에서 유산계급의 네이션(nation)개념 자유민주주의의 초석이었다. 더구나 부르조아적 자유민주주의조차 부정하는 국가주의적, 전체주의적 발상에 이르러는 아연해질 수 밖에 없다.
한국전쟁은 분명 한국현대사의 최대의 결절점이자 오늘의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고통과 모순을 배태시킨 분단 고착화의 가장 결정적인 역사적 계기요, 오늘 우리의 삶을 조건지우는 엄연한 현실이다. 민족사의 측면에서 볼 때, 그것은 일제의 폭압적 식민지배로 단절, 지연된 구한말 이래의 자주적 국민국가의 건설이라는 반외세, 반봉건의 역사적, 민족적 과제가 대전(大轉)후의 해방공간에서조차 제국주의의 점령으로 저지되면서 한국민중의 치열한 반제반봉건 투쟁에도 불구하고 조국분단으로 이어진 체제모순의 귀결에서 기원한다. 전쟁의 전개과정에 미국, 중곡이 개입하여 전쟁의 주체가 변하고 이에따라 그 성격이 복합성을 띠게 될 뿐 아니라 한민족은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공동체의 모든 삶을 갈라 놓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체제로의 이질적인 역사전개를 초래하였다. 세계사적 수준에서도 2차대전시의 국제협력의 얄타체제로부터 종전후의 시모하된 체제간 대립과 갈등이 한반도라는 국지적 수준에서 폭발하여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진영모순을 미․소의 냉전체제로 확고히 한 세계사적 획기(劃期)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볼 때, 한국전쟁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한국현대사를 이해하기 위한 기본적 전제이면서도 강고한 이데올로기적 편향속에서 쉽지 않은 일임을 쉽게 간파할 수 있다. 지금가지의 한국전쟁에 관한 연구는 주로 해외에서 진행되었을 뿐아니라 시각과 관점을 서로 달리하였고, 많지 않은 국내에서의 연구는 대부분이 북한 괴뢰집단의 남침야욕 폭로라는 극단적인 이데올로기적 편향 속에서 연구촛점이 개전책임의 소재를 밝히는 기원과 원인에 집중되었다. 사실상 국내의 한국전쟁연구에서는 ꡒ소련제 탱크를 앞세운 북한 괴뢰집단이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38선을 넘어 불법 남침하였으나 국련국(U.N軍)이 이들을 용감히 쳐부수고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했다.ꡓ는 식의 남한정부의 공식견해를 뒷받침하는 일방적이고 현상주의적인 논리가 지배적인 해석이었다. 이러한 해석은 강고한 반공, 반북, 친미 이데올로기의지지 속에서 수십년을 지탱해 왔으나 이는 하나의 화석화된 신화요, 일방의 도덕적 승리를 강변하기 위한 선전에 불과하다고 하겠다. 분단과 냉전의 기원에 대한 논의가 전통주의, 수정주의, 현실주의 등의 여러 가지 관점에서 제기되며, 한국전쟁을 포함한 한국현대사의 진실이 여전히 은폐, 왜곡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러한 이데올로기적 편향을 극복한 객관적 시각을 정립하고, 분단 극복을 위한 통일의 관점에서 재조명해야 하며, 도발책임에 집착한 그간의 연구경향을 탈피하여 한국전쟁의 총체적인 성격규명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면 객관적 시각과 통일의 관점은 무엇이며, 총체적 인식을 위한 노력은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가? 먼저 그간의 논의의 제수준을 검토하여 해석상의 논리를 비약과 왜곡을 바로잡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실과 해석의 긴장 속에서 진실복원 작업을 병행해야 한다.
도대체 한국전쟁은 누가, 왜, 무엇을 위해, 누구와 싸운 전쟁이었던가? 종래의 한국전쟁에 대한 논의의 초점이 전쟁의 기원에 집중되어 있었다지만, 사실은 ꡒ누가ꡓ라는 개전책임의 소재를 규명하려는 전쟁발발 주체에 국한하여 소위 남침설과 북침설로 대립해 왔을 뿐이다.
한민족의 통일에의 염원에 반하여 남북에 분단정권이 수립되고나서 50년 6월 전쟁발발시까지의 불과 1년여의 기간 중에 38선에서의 쌍방에 의한 무력충돌은 각각 수백회 이상씩이나 되었으며, 미국의 군사지원을 유도하기 위해 이승만의 도발과 북진통일노선 그리고 남로당의 무장투쟁에로의 전환이나 제주 4․3항쟁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의 내전적 상황은 북한에 의한 전쟁발발 가능성을 한층 고조시켰다. 그리하여 50년 6월의 한국전쟁 개전은 통일정부수립전술에 따른 북한 정규군의 선제공격이라는 점에 대체로 합의가 이루어짐으로써 이 문제에 관한 한 더 이상의 논쟁의 여지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 한가지 사리로부터 동족상잔의 엄청난 비극이 모두다 불법남침에 환원된다는 단순논리는 일방의 면책과 반공이데올로기의 강화를 통해 분단정권의 정당화를 기도하는 정치적 음모요, 이론적으로도 결과로서 모든 원인을 설명하려는 해석상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러한 논리는 ꡒ왜ꡓꡒ무엇을 위해ꡓꡒ누구와ꡓꡒ어떻게ꡓ라는 전쟁의 원인과 기원, 그리고 전개과정과 성격에 대한 총체적, 객관적 인식을 저해한다. 여기서 원인이라 함은 개전의 동기와 목적을, 기원은 전쟁방식 선택의 조건과 배경을 내포하는 논의와 해석의 또 다른 수준이다. 다시 말하면, 전자의 수준에서는 국내외 정치세력들의 입장과 정세판단을, 후자의 수준에서는 분단상황과 민족모순 그리고 그 극복을 위한 처절한 민중항쟁들이 고려되어야 한다. 끝으로 전쟁의 성격과 관련하여 단정노선(單政路線)을 추구한 이승만 정권의 타도를 위한 내전적 성격의 제한전이야, 자본주의적 사회질서를 타파하고 지체된 사회개혁을 추구한 혁명전쟁이냐, 제국주의를 상대로 한 민족해방전쟁이냐, 미․소를 축으로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양대진영의 대립과 갈등의 폭발로서 그 괴뢰집단들에 의한 대리전적 성격의 국제전이냐하는 총체적 성격의 규명을 위한 논의의 새로운 수준들이 제기된다. 전쟁의 성격은 전쟁의 목적, 교정주체, 전황과 결과에 따라 규정되어지기 때문에 전쟁의 전개과정에 따라 변모된다. 최근의 연구업적들을 정리해 볼 때, 한국전쟁은 사회개혁과 조국통일을 위한 북의 개전으로 남북한 정권간의 대결로 시작하여 미군의 개입과 작전권의 장악 후에는 전쟁의 주체의 변경에 따라 그 성격이 변모되고, 급기야 국련군의 38선 북진 후의 중공군의 개입은 국제전적 성격의 전면전으로까지 확대된다. 이에 따라 전쟁의 성격도 내전적인 기본성격이 유지된 채 민족해방전쟁과 체제간의 국제전적 성격이 부가, 중첩된다. 이는 전시 중 각각의 점령지역에서 추진된 정책들에 의해서도 확인되어진다. 북한군이 장악했던 지역에서 행해진 정책은 친일파의 숙청 등 일제 잔재의 청산을 포함하여 당, 인민위원회의 부활, 토지개혁 및 노동법령의 실시 등 디체로 해방후 북한에서 실시된 반제반봉건민주변혁과 유사한 것이었다. 이에 반해 미국의 즉각적인 개입과 작전권의 장악은 전쟁을 전면전화하고 그 주체와 성격을 바꾸어 놓았다. 국련군의 점령정책은 민정이 아니라 미군이 지휘하는 군정이었다. 전쟁의 전개과정에서의 전선의 교착국면과 수복지역에서 비전투요원인 민중들이 공산주의자 소탕이라는 미명하에 미군과 반공청년당등의 보복으로 대량학살되었고 월등한 장비와 기술에 의한 무차별 폭격으로 전 국토가 초토화되었다. 휴전과정에서조차도 반민중적 조치들은 계속되어 엄청난 전쟁의 참상을 야기하였으마 이는 주로 전쟁의 참상을 야기하였으나 이는 주로 전쟁의 성격변화에서 비롯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해방 5년사의 갈등구조에 비추어 볼 때 한국전쟁의 주요 대립축은 한국 민중과 미국, 통일세력과 분단세력으로 설정될 수 있다. 그 연장 위에서 폭발한 한국전쟁의 주체는 그들의 전위(前衛)이거나 전화(轉化)된 형태일 것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전쟁의 성격에 대한 논의 조차도 동일수준의 것이 아닐 뿐 아니라 상호 중첩적인 성격의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한국 현대사의 주체적 입장에서의 올바른 인식은 한국민중이 계급모순과 민족모순, 그리고 그것이 응축된 분단모순의 동시적 해결을 위한 몸부림 속에서 좌절한 비극의 주인공들이며, 그 해결을 위한 노력을 도외시한 책임전가의 단순논리는 문제를 호도하고 반공 독재의 강화와 이질감의 심화라는 민족적 비극의 재생산만을 초래하였고 하리라는 인식이다. 해방으로부터 한국전쟁에 이르는 해방 8년사를 분단과 통일, 혁명과 반혁명, 제국주의와 민족주의의 대립축을 중심으로 살펴보면서도 객관적 시각과 통일의 관점에서 올바로 인식할 수 있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고민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전쟁 당사자들의 정세판단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들이 충분히 공개되어 있지 못한 현재의 상태에서 관점과 사실, 사실과 해석들 간의 긴장에는 부득이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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