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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6 | [문화저널]
차이코프스키 풍물굿
김원호․전북 노동자문화운동 연합의장 (2004-01-29 14:04:59)
언젠가부터인가 부쩍 '우리 것'을 찾자 라는 것이 유행되다가 어쩐 일인지 요즘은 시들해지는 것 같다. 겉으로는, 그리고 대단히 폼나게 민족(성) 운운하며 그리했지만 사실 그 테제만큼 그것이 챙겨주는 수준의 변화발전, 즉 화려하고 세련되게 암울한 신식국독자 문화 현실을 그닥 변화시킬 수 없다라는 것이 이제야 '현실 속에서' 인식되는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것을 찾자라는 내용이란 게 먹을 것, 입을 것 '부터' 소박하게라도 출발하자라고 하지만 맨날 그 '부터'에서만 헤매었지 '우리'라는 것의 당대적 내용과 그를 물화시켜내는 목표나 경로가 없었던 탓이었다. 코카콜라를 먹지 말자가 패스트푸드로 발전하더니만 결국은 얼토당토없이 떡이나 수정과를 먹자가 되는 지경에 이르러서는「리우스」의 만화 「코카콜라」가 문제 제기한 제국주의 수탈에 대한 그나마의 건강성 수준에도 못미치는 우스개가 될 뿐이다. 우리 옷을 입자가 그 힘든 전통의 계승이라는 문제의식 없이 복고적 무드의 新상품의 하나가 되어버리면서 편하다드니, 한국적이니 하는 온갖 입에 발린 합리화가 이루어지는 모습에서는 영락없는 교활한 장사꾼의 '민족적 상표'가된다. 우리말을 쓰자라는 것은, 릴케의 시가 독일어에게 했듯이 그 빼어나게 하는 과정이 없이, 그리고 현실에서 사용되는 사회화과정에 대한 추적 없이 국어사전이나 뒤져서 죽은 언어의 퍼즐적 유식함을 드러내는 데서는 장난을 하자는 것인지 아닌지 조차도 모르게 된다. 이는 소박한 무지일텐데 기실 그 소박함이란 허위적 자위의식이거나 잘해봤자 독점자본 앞의 페레스트로이카이다. 현상의 도덕적 분석과 그에 대해 책임 없음, 소시민적 낭만의 양심 어루만지기 수준 가지고는 독점화된 문화산업의 그 냉혹한 세련됨을 깰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그 우리 것이 진정 당대의 수준 높은 민중성 획득 과정의 민족의식의 올바른 고양이라는 과학적 우리 것이 된다면야 발벗고 나설 일이지만, 어느 시대나 상관없는 '순수한' 신원적 민족자존의 강짜의식이라는 혐의가 현실적으로 짙다. 신식국 독자문화 현상의 반작용에 의한 이러한 의식은, 같은 식의 문제제기자인 (포스트)모더니스트들보다 현실적이지 못하다. 영동의 로데오거리에 붙어있는 나이트클럽 웨이터의 자기선전 포스터보다 사회-경제적 의식이 철저하지 못하고 형식-표현적으로도 초라하기 그지없는 이 과거로의 초라한 회귀는 당대의 '현실'을 오히려 제대로 못보게 하고 있다. 이 우리 것의 총아로서 풍물이 화려하게 등장, 융성하는 듯했다가 그 우리 것이라는 아집과 안이함만큼 지금은 짜그라지고 있다. 풍물이 '과거의 민중성'의 표본으로서 발굴되어 공동체론, 신명론을 대두시키면서 전국적 유행이 된 시기가 있었다. 그 유행의 열기는 곧 우리 것/서양적인 것이라는 이분법을 만들더니 어느덧 부르조아의 진보적 문화유산마저도 단지 서양적이라는 이유만으로 거리낌없이 도덕적 성토를 해대는, 중세의 마녀사냥을 부활시켰다. 이는 당연히 풍물을 '지금 당대의 민중성' 획득을 위한 변혁적 예술쟝르로 발전시켜내는 것보다는 소위 종합연희라는 예술쟝르 내외적 애매한 '과거의 복합체'(굿)를 단순재생산하는데 그치고 말았다. 그 독특하게 갖고있는 흥과 신명의 짜임새가 주는 정서적 감동이 현대화되기는커녕 놀고 풀어버리는 용이한 도구, 자위수준의 지멋에 겨운 흥, 있어봤자 부분적인 맛, 까닭 모를 멋들어짐 등이 복고주의의 야릇한 '갱의식'을 만들어내어 풍물의 발전을 정체시켰다. 이와 같은 갱의식은 당대에 이념적으로 또 예술적으로도 애매모호한 국수주의에 다름아니며 이는 노동자나 학생의 풍물굿판에 보이는 소재적 구호의 기술적 결합(형식)과 나열화(내용)가 주는 천박성으로 나타났고, 어느덧 그 발전의 한계를 눈치챈 대중들에게 아마츄어리즘의 유치함이나 난삽한 소음으로 여겨지게끔 풍물은 전락되었다. 이는 김덕수네 사물놀이패라고 대변되는 소위 전문사물놀이패도 예외는 아닌데 초기의 그 음악적 신선함이 정체되 더니만 결국 전통가락 테두리 내에서의 쇼적 운용을 해대는 매너리즘에 빠졌고, 그를 돌파한다고 시도된 재즈나 교향악단자의 협연이라는 것은 형식실험의 어설픔과 난삽함에 그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인류의 예술발전사가 확보해준 인접예술의 유물변증법적 성숙과정, 그리고 그 성과와 호흡을 같이 하며 풍물의 제요소의 구분-통일로의 과학적 발전이 없고 내용없는 분리-결합만이 있기 때문이다. 풍물의 당대성 확보는 「리듬악+춤」의 종합화가 근본바탕이자 출발의 중핵이다. 미분적으르도 전통풍물의 주요 요소이자 현대적(contemporary) 발전의 구분-구조화에도 유리한 「리듬악+춤」의 구분-통일이 우선 선행되고, 그것이 만들어내는'독특한 감동방식'(외견상 단점의 내용상 장점화)이 밑천 되어야만 새로운 당대의 종합연회적 발전도 꿈꾸어볼 수가 있다. 이는 지면관계상 다른 글로 논하겠다. 풍물은 '과거의 우리 것'이지만 '지금의 우리 것'은 아직 아니다. 어설픈 우리 것이라는 아집과 나태함에 갇혀있지 말고 인류의 진보적 예술 쟝르 발전과 그 호흡을 같이 해야만 당대 민중의 삶에 유의미한 예술쟝르화를 꿈꿀 수 있다. 올바른 민족성은 세계성을 가진다라는 말이 반추되어야 한다. 차이코프스키한테서 풍물을 한 수 배워보자.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3중주50번(A단조)」의 1악장과 2악장은 공히 풍물적이다. 1악장은 작고한 선배 루빈스타인을 애도하는 비가(悲歌)적 성격인데 작은 엘레지풍(충분히 보통빠르기로-빠르되 정확하게) Pezso elegiaco(Moderate assai-Allegro giusto)속에서 대조적인 3개의 모티브가 혹은 독자적 발언을 하며 변화와 어울림이 풍부하게 교차한다. 물론 선율이 없이 리듬만 있는 풍물이 만들어내는 정서의 영역은 이 3중주와는 다른 질을 가질테지만 모티브의 운영능력은 풍물이 그러한 비슷한 형식을 갖고 있는 「재능기영산」보다 훨씬 풍부하다. 「재능기영산」의 단선적 구조가 풍물, 즉 리듬악의 소위 '선율적 맛'이라는 형식적 경지와 주제운영능력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이 구성에 대한 풍물적 해석은 커다란 힘이 될 것이다. 2악장은 몇 개의 동기로 이루어진 불규칙한 러시아 민요의 성격을 띤 주제가 독창적이고 대조적인 11개의 변주로 변용되고 피날레와 코다가 새로운 질로 종합하는데 얼마나 섬세하고 정확하게 의도되는지 살펴보자. 주제 : 느린 걸음걸이의 빠르기보다 약간 빠르게 Andantecon mote, 변주1 : 노래하듯이 Cantabile, 변주2 : 보다 빠르게 Piùmosso, 변주 3 : 보통빠르기보다는 빠르게 Allegro moderato, 변주4 : 박자가 바뀌어도 박의 간격을 바뀌지 않게 L'istesso tempo, 변주5 : L'istesso tempo, 변주6 : 왈츠의 빠르기로 Tempo di valse, 변주7 : 보통빠르기보다는 빠르게 Allegro moderato, 변주8 : 빠른 퓨가 Fuga : Allegro moderato, 변주9 : 슬픔에 찬 느린 걸음걸이의 빠르기로 그러나 너무 빠르지 않게 Andante flebile, ma non tanto, 변주10 : 마주르카의 빠르기로 Tempo di mazurka, 변주11 : 보통빠르기 Moderato, 코다종지부를 위한 변주(결연히 빠르게 그리고 활기차게) Variazione finale a Coda(Allegro risolutoe con fuoco). 리듬과 그 성격의 변화만 해석해도 「갠지갠굿」의 조여나가는 버라이어티보다 보다 의도되고 절제되고 계산된 '즉흥성'의 감동을 준다. 특히 2악장은 러시아 민요의 빼어난 재생이 이루어지는데 필자는 민요의 세계성 획득의 대부분 사례를 이러한 러시아 민요이외의 경우는 거의 보지 못하였다. 몇개의 수를 더 배워보자.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c단조)」의 2악장의 구성(빠르되 유머스럽고 경쾌하게→1보통 빠르기로→매우 빠르게→보통 빠르기로→빠르게→익살스럽게→빠른 2박자로→아주 빠르게→장엄 하게→결연히)은 보다 단선적 시나위의 빠르기를 발전시키면서 긴 호흡의 풍물 1거리를 구성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고, 베르디의 교향곡 「I VESPRISICILIANI」의 조바뀜은 가락편제의 의도성, 같은 주제가 현악 또는 관악 중심이 될 때의 차이는 쇠소리 와 가죽소리의 결합과 분리를 보다 의도적이게 할 것이며, 심지어 양악적 엇부침도 시사받을 것이다.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브람스의 「대학축전서곡」이나 차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은 주제를 구성하는데 유리하다. 「공주는 잠못이루고」나 「정결한 집」,「저 타는 불길을 보라」같은 아리아는 주제표현을 위한 섬세함, 강함, 풍부함, 즉 감정의 내용 찾기나 주제표현을 위한 빠르기 운용 능력을 줄 것이다. 록이나 메탈의, 전주와 간주를 중심으로 리듬 구사력과 구성력 파악은 주제와 변주의 긴장을 통한 가락의 새로운 질의 변화에 도움이 된다. 또 레드 제플린의 「MOBIDIC」은 드럼 하나의 리듬구사력이 파워 그 자체이며, 영화 「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의 삽입곡인「RIOT : 폭동」의 불안한 긴장력은 아직 풍물에서는 없고, 김민우의 대중가요 「입영열차」의 전주는 쥐어짜내지 않는 경쾌함을 준다. 내친김에 몇 걸음 더 나가보자. 길옥윤의 구음 섹스폰 연주는 애드립과 풍물적 연기에 커다란 시사점을 줄 것이고, 뮤지컬 「SINGING IN THE RAIN」에서 진켈리가 빗속에서 혼자 춤추는 천진난만함은 정서가 증폭되며 기예가 복무하는 씬인데 풍물개인놀이의 내용성 확보를 위한 필수교재가 될 것이다. 뮤지컬 「ROYAL WEDDING」의 카리브해의 춤 중 후레드 아스테아와 조연들의 블라킹 얽힘. 특히 제인 포웰과의 이인무. 더 특히 포웰의 도전적 자세와 시선의 변화, 뮤지컬 「BROADWAY MELODY OF 1940」의 아스테아와 진 할로우 단 둘이 커다란 무대 2~3개를 종횡으로 장악하는 스케일과 구성과 블라킹, 뮤지컬 「파리의 미국인」의 에필로그의 이야기와 얽힘은 풍물연출의 새로운 질을 보장해 줄 것이다. 아이스 댄싱은 속도와 호흡이 있는 블라킹이 있다. 훼어댄싱의 다소 기예적인 것과 비교하여 이야기(주제)가 풍부하게 들어나는 점, 특히 기예와 이야기의 '나름의' 행복한 결합 수준은 풍물을 기예로 전락시키지 않을 것이다. 특히 영화 「FAME」의 에필로그는 두개의 멜로디가 클래식적, 록적 상호침투가 일어나고 성질이 다른 남여 독창, 재즈적 이중창, 합창과 그 변용 심지어 애드립, 간주적 춤이 일사분란하게 구성되어 있으며 풍물창작의 종합적 모델이 될 수 있다. 물론 국악, 전통풍물 영역내에서도 할 일은 많다. 무엇보다도 音(樂)의 귀명창이 되어야 한다. 특히 국악이 갖고 있는 장단의 분박구조의 특수함이 체화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국악을 귀에 달고 다녀야 한다. 그래야만 음악적 '이야기'와 그에 대한 해석력, 정서의 구축을 위한 구성, 형상화 방법까지 폭넓고 여유 있게 분석 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풍물은 '호흡'이 내재적 요소로 기여하는 타쟝르와 달리 호흡자체를 '드러내고', '연행하기' 때문에 리듬적 호흡 분석, 즉 리듬의 구성요소인 장단, 셈여림, 빠르기의 호흡성에 대한 치밀한 운영과 해석은 필수이다. 산조는 달달 외어야 하며, 시나위와 살풀이의 즉흥성을 수준 높게 편제해 보는것, 나아가 지금 빠르기의 구성은 진양조부터 휘모리까지 단선적이나 주제에 의해 빠르기의 구성을 복합화해내야 한다. 감정 구축화의 내용과 형식을 획득하기 위해 긴장과 이완, 템포와 앙상블, 복합, 어울림, 강조, '내고 달아 맺고 푸는'의 치밀함과 영역 확대. 푸지고, 볼가지고, 내닫고, 앵기고, 절름거리고 등의 단선 형용사의 객관적 깊이의 풍부화 뿐 아니라 내고 죽 끌고, 톡 튀어 받고, 위와 먼데 아래와 부딪치고, (가죽) 튈 때 (쇠)가 사그라 들고, 맞물려 가빠지고, (북편) 잦아들며 (열채)소리 들리고 등까지의 복합적 정서구축의 풍부함의 깊이를 객관적 타당성화 시켜야 한다. 자, 이정도도 없이 '우리 것'이라는 풍물이 그 선언만큼 따놓은 당상이 될 수 있을까 ? 불행히도 민중성을 획득해낸 ‘풍물적 이야기'의 당대적 내용과 형식은 지금 없다고 보아야 한다. 풍물의 감동의 영역, '건드리기에 유용한' 정서영역에 대한 미학적 근거를 창작을 통해 확보해 들어가면서 풍물의 예술적 발언을 축적시켜나가는 것만이 풍물은 당대의 민중성을 획득해낼 것이다. 전통풍물의 발굴 수준 내에서 노는 자위적 즉흥성의 '우리 것' 정도가지고 이제 민족을 팔아먹지 말아야 한다. 풍물이 아무리 즉흥편곡과 연주가 도드라지는 쟝르일지라도 예술적으로 수준 높은 즉흥성이 되기 위해서는 그 앞에 당연히 의도되고 계산된 엄청난 실험의 과정이 축적되어야 하며, 이는 너무나도 상식인 인류의 진보적 문화유산을 자기화할 때만이 가능하다. 진정으로 '우리 것'이 되는 풍물은 대규모 민중과 하는 혁명적 퍼포먼스를 지향해야 하며, 지금부터라도 뜬쇠 양순용과 뜬쇠 차이코프스키가 삼투해나가지 않는 한 전혀 그리 될 수 없다. 풍물을 우리 것이라고 생각하고 애정을 주었던 여러분. 우리 것이라고 무조건 우호적이 되는 멍청이가 되지 맙시다. 우리는 지금 이선희의 「추억 속을 걷네」라는 노래의 색스폰 소리만큼 세련되고 건조한 도회풍에 젖어 살도록 요구되어지고 있는 신식국독자의 민중입니다. 지금 일제 시대 물산장려운동적 수준의 애국행위를 여러분에게 요구하고 있는 풍물이 똥도 조선똥은 아름답게 보아라고 하면 어쩔랍니까? 모순투성이 남한에서 진정 우리 것이라는 것은 시-공간적으로 미래로 열린창입니다. 오늘은 그 창문을 열어놓고 차이코프스키가 치는 신명나는 풍물굿을 한 번 들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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