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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7 | [문화저널]
인간의 이성과 지성, 자유의 표출 르네상스시대의 서양음악
문윤걸․전북대 강사․사회학 (2004-01-29 14:21:33)
예술사에 있어서 어떤 독특한 양식이나 예술관이 새롭게 자리잡아 가는 시기를 정확히 추정해내는 일이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모든 새로운 경향이나 양식, 예술적 취미들은 과거의 요소들과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서서히 그 면모를 획득해가며 모든 지역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의 시차를 두고 일어나기 때문에 어느 때를 새로운 양식의 분기점으로 삼느냐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문제일 수밖에 없다. 특히 르네상스 시대의 경우는 그 시대개념의 정의에 따라 이러한 편차가 더욱 심한 경우에 속한다. 이는 르네상스 시대가 중세와 근대를 잇는 과도기적 성격을 갖고 있다는 점과 이 시기에 각 지역의 민족국가들이 각기 다른 정치적, 사회경제적 상황에 처해있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르네상스 시대는 중세적 보수와 근대적 혁신이 동시에 자리하던 시대로서 중세에 비해서 자율성을 상당부분 확보하기는 했으나 아직 절대적인 자율성을 획득하지는 못한 중세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는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중세는 기독교가 전세계를 지배하는 이념의 시대였다. 그러나 중세말기가 되면 지역적으로 국한된 지방경제를 중심으로 하는 도시국가가 발달하면서 각 도시국가들이 분립하는 상태가 되었다. 이들 도시국가들은 각각 처해있는 사회경제적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정치적 발전을 보이는데 각 지역마다 상이한 언어들이 등장하였으며 예술에 있어서도 각 지역 나름대로의 독특한 민족적 양식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르네상스는 이중에서도 남부 이탈리아에서 일어났던 제 현상들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이탈리아가 근대 예술의 새로운 담당자로 역사속에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지역이 다른 지역보다 일찍 자본주의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하였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사회 경제적인 여건의 변화는 봉건제의 규제를 반대하는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는 배경이 되었는데 새로운 문화란 바로 인간의 정신과 지성의 힘을 발견하고자 하는 인본주의(Humanism) 운동이었다. 이 운동의 담당자인 휴머니스트들은 인간의 재능과 창조력을 자유롭게 발휘할 수 있는 정신적 자유를 요구하였다. 그들은 지식의 위력을 확신하면서 다양한 지식을 축적하려 애썼는데 이러한 노력은 많은 고대작품의 수집 및 연구라는 고대문화의 탐구로 특징 지워진다. 그런데 왜 이 시기에 고대문화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고 이것이 다시 예술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되었을까? 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으나 가장 직접적인 동기는 그리스지 방에 자리 하고있던 동로마제국(비잔틴 제국)이 이 시기에 망했기 때문이었다. 동로마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터어키인들은 기독교인인 많은 학자와 예술가들을 이 지역에서 몰아냈고 이들은 대거 이탈리아로 피난하였다. 이들이 가져온 고대 그리스의 문화는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강한 일깨움을 주었고 이탈리아의 예술가들은 고대 그리스의 원전들을 직접 대하며 고대 예술전반에 대한연구를 활발하게 진행하였다. 따라서 르네상스 운동을 고전복구운동이라는 의미로 사용한 당시의 사람들에게 고전이란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를 뜻하는 것이었다. 중세의 하나님 위주의 생활을 강요받으며 살아온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그리스와 로마시대는 사람이 사람답게 아름다운 사회로 인간을 위한 뛰어난 예술작품들이 많이 등장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특히 인간의 이성과 능력을 중요시 하는 소피스트 철학자들의 시대는 민주적인 사상과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인간의 자유로운 감정표출을 통하여 훌륭한 예술작품들을 탄생시키던 시대였던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의 등장으로 인간의 모든 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이 가장 중요시하다 보니 사람이 하는 모든 일, 특히 사람이 만든 모든 문화는 사람을 위한 것이기보다는 하나님만을 위한 것으로 되어 버렸다. 그래서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들은 민간을 위한 문화를 되찾기 위해서는 고대그리스와 로마문화의 재생이 필요하다고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는 도시의 신흥 부르조아 계층의 부를 바탕으로 성장하였으며 많은 예술가들이 이들의 도움을 받았다. 이들 신흥 부르조아지들은 초기에는 매우 생산적이며 모험적이고 혁명적이었다. 그들은 세계를 끊임없이 흘러가는 하나의 유동체로 파악했는데 이처럼 모든 것이 역동적으로 흘러가면서 변화하고 있다는 그들의 생각은 예술작품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그러나 초기에는 진보적이던 부르조아지들은 시간이 흘러 자신들의 위치가 어느 정도 확실해진 무렵부터는 보수적인 경향을 띠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전성기인 16세기 르네상스는 현세 지향적인 경향을 띠게되었으며 그 속에는 세계를 하나의 유한한 전체로 파악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 이제 그들은 모험보다는 확실한 이익의 보장을 추구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후기에 이르면 더욱 반동화하여 귀족과 영합하여 현상유지를 위한 보수적인 생활이상을 그대로 드러내기에 이른다.) 초기의 신흥부르조아지들은 그들의 강력한 부를 바탕으로 새로운 예술의 후원자를 자처하면서 많은 예술가들의 후원자가 되었다. 당시의 예술가들은 교회나 궁전, 귀족들, 그리고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신흥부르조아지들의 후원에 의지하기는 하였지만 인본주의의 영향은 이들의 사회적 지위에 근본적인 변화를 주었다. 중세의 예술가들이 단순한 수공업자나 '쟁이'에 불과한 대우를 받았다면 르네상스의 사람들은 예술의 즐거움에 몰두하는 인생이 보다 고상한 삶이라는 생각을 갖게됨으로써 예술가들의 사회적 지위가 그만큼 상승하였다. 따라서 이제 예술가들은 단순한 '쟁이'가 아니라 예술이라는 고귀한 정신적 영역의 소유자가 된 동시에 '위대한 작곡가'나 '천재'라는 개념을 등장시키며 그렇게 불리워졌다. 1450년부터 1600년까지를 음악사에서 보통 르네상스시대라고 부르는데 다른 예술분야보다는 그 시작이 비교적 늦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이론적 측면에서의 고대음악의 재생만 있었을 뿐 실제 음악양식상의 변화는 17세기 오페라의 탄생전까지 뚜렷한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했다. 고대음악에 관심을 보인 많은 학자들은 음악이 가지고 있는 몇 가지 한계성-음악의 추상적 성격, 즉 고대음악은 기록으로 남겨지지 못하고 구전으로 전해졌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본래의 모습에서 변질될 가능성이 있으며, 소리는 만들어진 그 순간에 없어지고 말기 때문에 미술이나 조각, 건축과 같이 남아있는 것이 없었다. -때문에 다른 예술 쟝르에 비해서 분명한 변화의 방향을 설계하기에 어려움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고대음악이론에 관한 연구를 통해 개인으로서의 음악가의 개별적인 감정을 중요시하고, 엄격한 형식을 없애며, 가사와 음악을 친밀하게 결합하고, 음에 색채를 주는 반음계적 화성을 첨가하였으며 중세에 배척당하던 기악음악의 발달을 모색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중세의 신비적인 관념에서 벗어나 자연스러움을 추구하고 인간의 감정에 충실하며, 예술을 예술로써 즐기면서 현세적인 것을 추구하는 인간중심의 세계관의 한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중세와 비교해 볼 때 르네상스 예술의 가장 특징적인 면과는 동시성과 통일성이라는 개념에서 찾을 수 있다. 고딕미술의 그림은 각각의 부분들이 모두 독자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중 어느 한 부분을 떼어놓아도 그 자체로 하나의 그림이 된다. 이것은 연속적으로 움직이는 이야기식(story-telling)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고딕시대의 음악을 대표하는 '여러소리 음악'도 마찬가지이다. 기본이 되는 하나의 선율에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 또 하나의 선율을 병렬적으로 진행시키며 첨가하는 형식이었는데 이 때 각각의 선율은 독자적으로 하나의 기능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 그러나 르네상스에 오면 이 모든 것이 통일과 조화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즉 그림의 각 부분은 전체적인 통일성의 원리에 종속되어 각 부분은 그것만으로는 아무런 의미를 가질 수 없었으며 하나의 작품이란 더하거나 빼거나 변형시킬 수 없는 하나의 완전한 세계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 시기의 음악도 이러한 경향으로 발전하게 된다. 하나의 작품 속에 포함되어 있는 각 성부를 동시에 작곡하면서 각각의 성부는 그 자체만으로는 전혀 독자성을 갖지 못했으며 이들이 동시에 울려 퍼질 때에만 비로소 의미있는 선율로써 구실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는 화성음악의 발달을 의미하는데 화성적인 양식이란 몇 개의 음을 동시에 공간에 울리게 하는 것으로 수평적인 구조라기 보다는 수직적으로 구축되며 이는 음의 조화에 각별한 주의를 요구한다. 이러한 음의 구축원리는 통일성과 동시성이라는 양식원리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르네상스 음악의 또 하나의 특징은 가사와 음악의 긴밀한 결합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시대의 음악이론가들은 고대음악에 있어서 시와 음악의 밀접한 연관성을 상기하고 멜로디, 화성, 리듬 등 모든 음악적 요소들이 가사에 종속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따라서 가사인 시의 이미지를 그대로 따르기 위해서 슬픈 내용에는 슬픈 이미지의 화음을 쓰거나 느리게 연주하며 기쁜 내용에는 경쾌하고 빠르게 연주하며 밝은 색채의 화음을 쓴다든지 하는 가사에 대한 새로운 음악개념을 도출해 냈다. 즉 인간의 복잡한 감정변화를 표현하기에 적합한 각각의 화음을 찾아낸 동시에 그에 상응하는 리듬들을 찾아낸 것이다. 이는 음의 회화로서의 음악과 테마에 바탕을 둔 구조로서 음악이라는 개념에 상응한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성악곡의 가사를 더 쉽게 알아들을 수 있게 하기 위하여 가사의 억양에 충실하게 따르려는 태도가 나타났는데 이처럼 가사의 분위기나 억양을 생생하게 표현하기 위하여 작곡가는 기존 형식의 틀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울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반음계적인 화성과 리듬 그리고 장식법 등이 특정한 가사의 적절한 음악적 표현을 위해 어느 정도 자유롭게 사용되었던 것이다. 이는 중세 그레고리안 성가의 고도로 절제된 간결성과 단순성 등과는 상반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있었는데 이중 14세기의 백년전쟁, 16세기의 종교개혁 등은 음악양식의 변화에 큰 영향을 주었다. 백년전쟁은 오늘날 우리 귀에 익숙한 '도'와 '미', '미'와 '도' 등 3도와 6도 화음을 전 유럽에서 널리 사용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유럽 대륙에서는 다성음악에서 나타나는 4도나 5도 화음을 주로 사용하였는데 프랑스 영토에서 영국과의 전쟁이 일어남으로써 영국인들이 프랑스에 오랫동안 머무르게 되고 이 과정에서 영국인의 음악이 자연스럽게 전파되었는데 영국에서 많이 사용되던 3도나 6도 화음이 이때에 대륙으로 건너왔고 이 음악들이 따뜻한 느낌을 주면서 급속도로 전 유럽으로 퍼져나간 것이다. 백년전쟁이 가져다 준 또 하나의 결과는 영국과의 오랜 전쟁 때문에 프랑스가 국력이 약해진 틀을 타고 프랑스 접경지역에 '버간디'라는 조그마한 나라가 생긴 것이다. 이 나라는 이 시기를 대표할 만한 뛰어난 음악가들을 많이 거느리고 있었는데 이들은 후에 네덜란드악파로 불리면서 중요한 작곡기법 중의 하나인 '모방' 기법을 만들어 내었다. 이 모방기법은 처음에는 돌림노래와 비슷하게 짧은 선율을 계속해서 돌려 부르는 정도였지만 나중에는 '카논'이라는 형식으로 발전하면서 대단히 복잡한 음악으로 발전하여 갔는데 이는 오늘날에도 작곡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하나의 양식으로 인정되고 있다. 음악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종교개혁을 통해서 일어났는데 당시에 종교개혁이 일어난데는 물론 종교적인 이유가 강했지만 중세말 북부유럽에서의 민족의식의 성장과 왕권국가의 성립이 큰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과정중에 일어난 종교개혁은 음악에 있어서 루터파 교회음악이라는 새로운 양식을 탄생시켰다. 루터파 교회음악의 가장 큰 특징은 코랄에 있는데 오늘날 교회의 찬송가와 같이 예배시에 회중 모두가 합창으로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는 것이다. 회중 모두가 노래를 부를 수 있기 위해서는 잘 알려진 곡을 선택해야 했으며 가사도 라틴어가 아닌 독일어로 부르는 등 과거의 종교음악과는 상당히 다른 면모를 보여 주었다. 그러나 가장 큰 변화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예배음악에 성가대가 아닌 일반회중이 참여할 수 있었다는 것으로, 이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음악관의 변화였다. 이는 중세 이후로 잘 지켜 내려오던 교회음악의 단순성, 고결성, 엄격함이 무너져 내리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였는데 이에 대해 카톨릭교회에서는 반종교개혁운동을 통하여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를 역전시켜보려 하였으나 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이러한 여러 가지 변화들을 살펴보면 르네상스 시대의 여러 예술적 표현들이 과거에 비해서 보다 인간 중심적인 세계관을 함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르네상스시대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여러 가지 양식적 특성들은 그것이 어느 한 싯점을 분기점으로 하여 갑작스럽게 뛰쳐나온 것은 아니었다. 이미 중세시대에 벌써 행해졌던 것들도 있고 그 연장선상에 있는 변화들도 있으나 분명한 것은 르네상스 시대를 인간의 이성과 지성, 자유 등을 최초로 맛보는 시대로 구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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