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1991.7 | 연재 [문화저널]
육지의 섬 죽도를 다녀와서
이용엽 서예가(2004-01-29 14:25:06)

매일 복잡한 생활에 시달려야 하는 나에게 모처럼 야외 나들이 할 기회가 주어지니 마음은 부풀어 어린 동심으로 돌아간 기분이다. 엊그제 이틀 전에애 백제기행에 동행을 “황안웅”시로부터 제안받고 승낙을 하였으나 기행의 성격이나 참석자등이 누구누구인지 조차 전연모르는 상태에서 참석하고 보니 어리둥절 할 수 밖에. 그러나 9시 40분경 차에 오르면서 문화저널 주간 이교수의 인사 소개에서부터 기행에 대한 취지 그리고 각자 자기 소개을 하면서부터 처음 대하는 회원들이지만 십년지기나 되는 것처럼 친근하게 느껴졌다. 참석 회원등이야 중년층부터 어린학생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직업 또한 각양 각색이지만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의 모임답게 감정이나 표현에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 같았다. 대충보아하니 나이가 가장 연장자인 것 같은 수필가 김순영여사의 해악과 익살에 멋임 듬쁙담긴 자기 소개시간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불구불 모래제 아흔 아홉고개 산모퉁이를 돌때마다 차창에 펼쳐진 풍경은 한폭의 아름다운 풍경화요 코끝에 스며드는 향긋한 아카시아꽃 향기는 최류탄 향기에 면역이된 나로서는 미지의 세계에 함몰되는 무이지경에 빠진 기분이었다. 대자얀의 경관도 경관이지만 백제기행이라는 묻혀있는 역사를 재 조명하여 발굴 토론 모임에 문학이나 역사에 무외한인 내가 동참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하고 마냥즐겁기만 했다.
그러나 차창에 비치는 풍경은 즐거운 것만은 아닌 서글픔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모내기 하다말고 차창을 멀거니 바라보는 주름잡힌 농부의 모습에서“우르과이라운드”라는 괴물 앞에서 한발짝도 물러설 수없다는 이 지역의 수호신처럼 느껴지고 일손 부족으로 이 바쁜 영농철에 고생하는 글들에 비치는 우리들의 모습을 상상해 볼 때 과연 어떻게 비칠것인가? 평범한 향략객으로 비칠 수도 있으니 걱정이 된다. 다행이 자동차 앞에 펼쳐 겉은 “백제기행”깃발이 마음의 위란은 되지만, 제발 농부들의 오해가 없기를 바란면서 이런 저런 생각중에 차는 섬진강과 금강의 분수령“강정골”재를 넘어 진안읍을 거쳐 텃목적지인 용담을 향하고 있다. 잘정돈된 아스팔트 길을 당이다 갑자기 덜커덩 소리를 내며 먼지를 뿜는다. 바로 여기서부터 비포장 도로에 접어들었다. 갑자기 뒤바뀐 기분이다. 용담땜 수몰 예정지라 포장을 중단한 채 방치된 현장이다. 우리 일행이 모초럼의 나들이에 기분이 좋을리 없지만 이곳 주민들의 그동안 겪은 고통이 어떠했는지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심정으로 되돌아 보아야 할 것같다. 龍膽댐! 우리 일행은 대부분 전주에서 상고 있어 댐 건설으 학수고대 하겠지만 이곳 현실은 ”결사반대“라는 입장이니 세상은 공평하지 못한 것 같다. 좀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1983년 일제 식민지 시절에 댐 건설이 검토되고 이를 추진하면서 ”농지매수“로부터 필요한 자갈을 간더미처럼 준비 하던중 2차세계대전으로 연기되고 8월15일 해방과 더불어 공사는 중단되어 토지는 다시 한전 소유로 되고 농지 상환법에 따라 다시 십년거치 연부상황으로 경작가에게 소요권이 이전 되는 등......
무려 반세기가 넘도록 이 직역은 이방지대로 취급되는 공통을 받고 모든 가옥과 도로가 육십년전 그대로 민속촌을 연상캐하는 모습을 간직한 채 하루 하루를 보낸 이곳 주민들의 반대 이유를 우리들은 십분 이해해야 할 것 같다. 덜컹거리는 자동차는 옛날 “용담현”의 세곡을 실어날랐다는 “이포”마을을 뒤로 하고 자동차 한 대 비킬 수 없느 실날같은 좁은 고개“고남이제”를 넘어 용담향교에 도착하고 보니 열한시가 넘었고 급히 서둘러 진안지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태고정”에 올라 수정같이 맑은 물을 내려다 보며 우암 송시여르송준길 등의 현판을 관람하고 시원한 물에 발 한번 담글 시간이 없어 서둘러 용담향교로 향햐T다. 안내하는 향교의 유성근 전교님의 “명륜당”“대성전”등에 대한 자세한 설명에 모두들 메모하며 견학하는 태도는 젊은층 보다 중년층이 더 열성이었고 특히 기행에 관심은 대상이었던 제기고(祭器庫)에 보관중인 옛 “삼천서원”의 현판 및 목판의 글씨는 시간에 쫒겨 대략 점검하는 상태로 견학하고 시장기를 느낀다는 대다수의 회원들 요청에 급히 서둘러 차는 다시 금산 방면으로 물따라 달리고 이번 기행의 예정지“삼천서원”옛터는 차창으로 위치만 안내자의 설명으로 확인하고 용담댐발주 예정지인 진안끝 송풍리를 뒤로하고 다시 “주차전”“정자천”“안자천”이 합수하는 물을 가로질러 길다란 다리를 건너 안천을 향해 달린다. 이곳도 비포장이라 먼지에 시달리고 피로하지만 마음만은 모두들 미지의 죽도를 상상하니 즐거운 모습이 역력했다. 이길은 댐이 완공되면 물에 완전히 잠기는 지역이라 십년후엔 이기을 뱃길로 유유자적 건너야 할 현실이지만 실감이 나질 않는다. 먼훗날 이곳을 백제기행의 코스로 해보자는 대화속에 안천소재지를 거쳐 상천면 죽도를 향해 달린다. 울창한 숲속에 차창 앞만 빤히 보이는 오르막길 고개를 넘다보니 이고개가 “코큰이고개”(鼻大)란다.
우리나라 지명치고 이느 곳 하나 사연 없는 지명은 없겠지만 이 코큰이재도 지명에 걸맞데 우리역사상 가장 비극적이라 할 수 있는 6 25때 미제 24사단장“딘”소장이 이 고개 아래 마을에서 붙들려 포로신세가 되었다는 사싱은 코큰사람의 수난을 우리 선조들은 몇천년 전에 내다보고 있었던 같은 사실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고개를 넘고나니 다시 포장도로다 신이난다. 이제 차는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물을 거슬러 올라 달리고 옛날“진안현”의 세곡선“출항지”였다는 “월포”를 지나 목적지 죽도에 도착시간은 1시 30분경 뙤 오랜 여정 끝에 급히 서둘러 미리 준비라 이지역 “일미”라는 “천립국”(물고기국)에 밥 한그릇에 소주 한잔 가미하니 더 바랄 것 없고 맑은 물깍아지듯 듯한 바위위에 병풍처럼 펼쳐진 푸른 숲 죽도 말그래로 육지의 섬!
그러나 우리는 이곳을 찾는 목적이 관광보다 “정여립 박역의 현장과 호남편견”이라는 주제의 토론이기에 시냇가에 둘러 앉아 정여립을 회상하며 그의 생에 그의 학문 그당시 시대상 등을 해설자 황안웅씨와 유덕행 교수님의 특강으로 진지한 토론에 시간가는 중 모르고 곧이어 400년전 임진왜란 당시 치열했던 응치 전적지를 향해 떠났다. 그러나 5월의 긴긴 하루도 벌써 석양이라는 현장 입구에서 대략 먼빛으로 지형 설명만 듣고 아쉬움을 남긴 채 전주에 돌아왔다. 짧은 시간에 너무나 많은 곳을 기행하고 보니 아쉬움이 많았지만 다음 기행을 약소하며 마쳐야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