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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7 | [문화저널]
‘폭넓음’의 과제와 ‘현재적 계승’의 문제 - 동학농민혁명 백주년 기념사업회 발족 -
원도연․동학농민혁명백주년기법사업회 간사 (2004-01-29 14:27:01)
「동학농민혁명백주년기념사업회」(이하 ‘기념사업회’)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지 반년여만인 지난 6월 13일 창립대회를 가짐으로써 그 모습을 드러냈다. 반봉건 반외세의 기치를 높이 들고 아래로부터 용솟음쳐 올랐던 반역의 역사가, 98년이 지난 오늘의 역사 속에서 그 새로운 자리매김을 위해 제기된 것이다. 더욱이 농민 전쟁의 백주년을 앞두고 바로 그 항쟁의 격전지이자 가장 큰 희생을 치러야 했던 전북지역에서 그를 기념하고 계승한다고 하는 것은, 그리고 그를 어떠한 차별도 없이 역사를 소중히 여기는 모든 이들과 함께 하는 시민운동으로 전개해 간다는 것은 대단히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이 사업은 그 출발부터 비교적 유리한 조건 속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우선 1894년 갑오년의 농민전쟁 백주년을 목전에 둔 시기적 절박성이 그러했고, 이미 이삼년전부터 지역의 문화단체 혹은 학술단체로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되어져 왔던 백주년 기념사업의 당위성들이 지역적 분위기를 형성시켜 왔다는 점에 힘입은 바 컸다. 이처럼 각 직능과 지역에서 성숙되어온 분위기는 91년 11월말 호남사회연구회의 발의를 시작으로 학계, 언론계, 문화예술계 등의 각계 24명이 기념사업회의 창립을 목적으로 하는 "준비위원회 구성을 위한 준비위원회"로 모이게 되면서 본격화하며 6개월여만에 550여명의 준비위원으로 창립대회를 치러내는 개가를 올렸다. 기념사업회의 출발은 몇가지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우선 가장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는 것은 80년대를 이끌었던 우리사회 변혁운동의 흐름이 전반적으로 중요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 가운데서 급격하게 부상하고 있는, 이른바 ‘시민운동’의 커다란 범주속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념사업회의 방향과 구체적인 사업이 어떻게 자리잡힐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다른 또 한가지의 의미는 특별히 지역적 관점에서 제기되는 것이었는데, 요컨대 전북의 지역사 가운데 가장 중차대한 역사적 사건이었던 동학농민혁명을 지역적으로 어떻게 계승하고 흐트러진 역사를 지켜낼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여기에 덧붙이자면 이른바 새로운 ‘민간주도’의 역사적 시민운동으로서 명실상부하게 각계각층을 망라한 기념사업회가 지역운동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시험대에 올랐다는 것이었다. 기념사업회 추진주체들은 초기부터 이 사업의 대중적 확산을 위한 '폭넓음'의 과제에 집요하게 주력하였으며, 그 결과 상당한 정도의 확산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냈으나 그 '폭넓음'의 과제에 대하여 끊임없이 제기되는 또 하나의 문제는 농민항쟁의 대의를 가장 올바르게 계승하는 이른바 '현재적 계승'의 문제였다. 적어도 이같은 '현재적 계승'의 관점에서 기념사업회를 바라보았을 때는 외형적인 확산의 이면에 담겨져 있는 많은 우려와 그 우려의 근거들을 곳곳에서 확인할 있었다. 요컨데 '현재적 계승'의 관점에서 제기되고 있는 가장 주요한 비판의 근거는 농민항쟁의 가장 직접적인 계승자인 현재의 농민운동세력을 비롯한 민민운동단체가 기념사업회의 중심에 어떻게 위치지워져야 하는가 하는 점이었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동학농민혁명 백주년 기념사업의 계승성이라는 추상적인 수준에서의 문제의식뿐만 아니라, 구체적친 수준에서 기념사업회의 조직을 구성하고 사업방향을 기획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차이를 가져오는 문제였다. 그러나 수차례의 공식․비공식 접촉에도 불구하고 결국 '폭넓음'과 '현재적 계승' 사이의 현실적인 딜레마에서, 기념사업회의 추진주체들과 민민운동진영은 이 문제에 관한한 적절한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서로의 제안들을 보류 한채로, 구체적인 사업을 통한 협력과 연대의 기본자세만을 확인하는 것으로 이에 대한 논의들은 마무리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현실적인 수준에서 이 문제를 바라 보았을때 기념사업회의 추진주체들과 민민운동진영과의 차이가 도저히 좁혀질 수 없는 재기불능의 상태로 빠져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기본적으로 이 기념사업이 가지는 그 역사적 성격이며, 적어도 '반역'을 기념한다고 하는 사업자체가 갖는 지향성의 문제에 모두가 동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문제는 비로소 백여년만에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던 동학농민혁명백주년 기념사업회의 과거 지향적인 성격이 오늘 1990년대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되살아 날 것이며 어떻게 계승될 것인가 하는 점에 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앞으로의 기념사업회가 부닥쳐야할 중요한 문제중의 하나는 전국적으로 흩어져 있는 각 직능 또는 지역단위의 기념사업회들과 어떻게 연대하며 어떤 관계들을 설정할 것인가 하는 점에 있다. 특히 백주년을 맞이하면서 조직되게 될 각각의 기념사업들을 어떤 형태로 묶어낼 것인가 하는 점도 역시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또한 앞으로 기념사업회는 스스로가 밝히고 있듯이 지역내의 다양한 학술, 문화운동체 등의 폭넓은 참여를 견인함으로서 그를 하나의 힘으로 결집시켜 내고 이를 통해 전북지역의 한바탕 잔치마당을 만들어 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같은 의미에서 기념사업회가 가져야할 지역문화에 대한 올바른 관점과 조직방식에 있어서도 기념 사업회가 가지는 역할은 먼저 출발했다하는 다소의 권리와 그에 못지 않은 대단히 무거운 의무를 지게되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적어도 이 같은 문제들은 언제나 그러했듯이 시작하는 입장에서의 당연히 받아야할 부담이며 또한 앞으로의 과제라고 하는 점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요컨데 지금이 기념사업회에 정작 요구되어지는 것은 이미 우리 모두가 인식하고 있는 원칙과 그에 대한 집요한 확인뿐만 아니라 그것을 농민항쟁을 기념하고 계승하고자 하는 사업들에 올바로 적용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힘이다. 그리고 이같은 힘은 적어도 이 기념사업의 당위를 인정하고 그 출발을 의미 있게 평가하는 모든 개인과 단체의 적극적인 관심과 활발한 상호 침투 속에서 진행 될 수 있을 것이다. 왜곡된 역사를 극복하고, 소실되어져 가는 역사적 유산을 그 생생한 현장 속에 그리고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 되살려내는 일, 그리고 그 역사와 만나감으로 오늘의 삶을 보다 풍부하게 하는 것은 비록 시작한 이들만의 과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과제라는 점에 깊히 주목해야 한다. 이제 기념사업회는 비로소 그 백여년전의 치열한 싸움의 현장을 오늘에 되살려 내는 엄중한 역사적 시험대에 올랐다. 시작한다는 것의 지리하고 힘겨웠던 역정이 이제는 보다 구체적인 사업과 조직 속에서 평가받게 되는, 오히려 더욱 어려운 출발이 우리 모두에게 주어져 있다. 그 지난한 역정 속에서 일관되게 견지해야하는 기념사업회의 원칙은 역사를 기념하는 '폭넓음'의 문제와 그 '현재적 계승' 사이의 건강한 긴장관계를 지켜내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창립선언문에 담겨져 있는 "자랑스런 역사를 계승하고…… 진실한 실천을 통해 참된 민족적, 민중적 이해와 지향을 실현시키는 것만이 농민혁명의 참뜻을 바르게 잇는 일이 될 것"이라는 선언과 "다양한 형태로 살아가는 시민들로 하여금…… 진솔한 실천적 삶을 통해 이를 이루어 가고자 하며…… 체념과 보신주의의 몸짓들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반봉건, 반외세를 소리 높여 외쳤던 선조들의 기백을 우리의 가슴속 깊이에서 뿌듯하게 확인"하는 일, 바로 지금 그것은 우리 모두 앞에 주어진 과제라는 점을 다시금 확인해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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