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7 | [문화저널]
임실지방의 들독(들돌)
이상훈․편집위원
(2004-01-29 14:29:22)
오늘날 한국농촌사회에서 공동노동이란 의미는 많이 퇴색해졌다. 이는 산업화와 기계화로 인하여 농촌노동인구의 절대감소로 기계에 절대적으로 의존함에 기인한다. 흔히 말하여지는 공동노동의 작업 공동체로서의 두레는 옛말이며, 농사짓는 수고에 비하여 손에 거머쥘 수 있는 수익은 얼마 남지 않는 현실은 농촌을 60~70대의 노인들에게 맡기고, 청장년층은 공단이나 도시의 막노동판으로 가야만 하는 모습을 만들었다. 이와 같은 사실은 필연적으로 농촌공동체문화의 변질이 당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는 현재의 우리농촌의 상황을 말해주고 있다. 이렇기 때문에 과거에 행하여졌던 민속신앙물에 대한 만남은 먼발치에서 가슴졸이며 서성거리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그것은 민속이란 자체가 자연스럽게 행하여지는 것인데, 많은 부분에서 그 현장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오히려 가식적으로 면모를 보여주려는 자세와 선입견으로 본래 모습이 오도되는 상황이 오늘날 민속은 본래 민속이 아니며 또 다른 오늘날 민속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번 저널여정은 두레가입으로 육체능력을 인정하기 위한, 술맥이와 더불어 힘자랑하기 위한 것으로 행하여졌던 들독에 관하여 찾아보고자 한다.
오수에서 산서쪽으로 가는 군내버스에 몸을 싣고 가면 눈앞에 커다랗게 와닿는 팔공산(1151m)이 보인다. 10분 정도 달리면 왼쪽 도로변에 있는 영천마을(30호, 논농사․생강)에 닿는다. 도로변 바로 옆에 세그루의 느티나무와 함께 모정이 있다. 들독은 바로 모정옆에 있다. 직경 35cm, 둘레 135cm 크기로 달걀모양을 한 들독이다. 마침 논에 다녀오신다는 여병 현(남․60세)씨를 만나 들독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어느때 부터 들독이 있었는지는 본인도 모르며 무척 오래전부터 있었다며 옛날에 힘자랑 하는데 사용되었다고 한다. 영천마을 들독은 무게가 150근 정도 된다. 예전엔 이렇게 무거운 들독을 마을에서 힘깨나 쓴다는 청년들이 어깨 위에까지 올려들고 모정을 한바퀴까지 돌기도 하였으나 요사이 사람들은 무릎까지만 들고도 서너발작도 가지 못한다고 한다. 실제 여병현씨는 어떻게 들어올리는지 방법까지 취해주셨다. 실제 들독은 모습이 달걀모양이며 바닥은 판판하다. 그래서 아무렇게나 들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들독을 세운 다음 이렇게 세우면 마치달걀을 세워놓은 모습처럼 된다. 편편한 면은 가슴팍에 대고 양손으로 돌을 둘러싸고 올린다고 한다. 실제 이러한 방법으로 하지 않으면 들기가 대단히 어려운 상태이다. 그런데 이러한 들독은 단순히 힘자랑 만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본시 마을노동조직인 두레에 가입하기 위해서 육체노동의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서 들독을 들어야만 했다. 이때부터 어른 품앗이를 인정받게 된다. 노동능력은 들독의 크기에 따라 좌우된다. 그리고 칠월 칠석날이 나 백중날에 술맥이를 하면서 들독을 들기도 하였으며 또 들독은 들어야만 장가를 갈 수 있다고 한다.
지금도 가끔씩 마을청년들이 들독을 들기는 하나 예전 같은 감흥은 없다한다. 하기야 마을에 청년들이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우리나라 농가당 인구가 두명도 안되는 1.5명이라니.
다시 거슬러 지사 면내를 지나 이제사 경지정리를 끝내고 모내기를 할 삼산마을(30호․논농사) 에 닿았다. 무척이나 큰 느티나무(수령 300년 정도) 주위에 조금씩 크기가 다른 들독 3기가 있다. 나무그늘에 앉아 계시던 김한흥(남․81세)씨는 든다고 하여 '들독'이라 부르며 여럿이 모이면 힘자랑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해준다. 주로 술 마시고 청년들이 들며, 예전에 머슴에게 새경을 주기 위함이라고 한다. 실제로 들독을 들어보는 시늉을 하신다.
실제 들독을 잡아들어 올리기, 가슴에 붙여들기, 배에 붙여들기, 들고 허리펴기, 들어서 일어서기, 땅에서 조금만 들기, 돌을 들고 몇 걸음 걷기 등이 있다. 이 가운데서 들독을 들고 가슴과 허리를 완전히 편채 두 다리를 꿋꿋이 디디는 방식을 제일로 친다. 제주도에서는 '뜽돌'이라 하는데 여기선 주로 청년들이 신체단련, 힘겨루기를 하기 위해서이다.(민속대사 전)
그런데 이곳 전북지방에서는 단순히 힘자랑하기 위한것 만이 아니라, 농촌공동체의 노동조직체인 두레가입과 관련시켜 마치 육체적인 성인식을 하는 의례처럼 행해졌다. 그리고 '여름철 내내 농사짓고 칠월 칠석날이나 백중날에 머슴들이 힘자랑함과 동시에 술맥이를 함으로써 그들의 심신을 풀어주기 위한 것으로, 여기서 장원을 하면 황소나 사다리를 탈 수 있도록 했다. 이는 농경생활의 소산으로 농촌공동체 노동조직의 한 단면을 파악할 수 있는 민속물이라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