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7 | [특집]
『문화저널』 통권 50호의 발행을 축하하며
엎드려 절받기
김복영․「안동」발행인
(2004-01-29 14:31:21)
전주와 안동이 얼마나 먼 거리인가. 그러나 내게는 그 먼길이『문화저널』로 하여 지척으로 느껴진다. 속속들이 다 읽는 것은 아니지만 매호 빠짐 없이 배달되는『문화저널』의 봉투를 뜯는 기분은 전주 뒷골목 어느 식당에서 돌솥비빔밥에 모주를 곁들인 아침상을 받는것 만큼이나 구미 당기는 일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그 『문화저널』이 통권 50호를 낸다고 한다. 비록 민주화의 조짐이 보인다고는 하나, 사회전반이 불투명하던 1987년 가을에 전북지역의 문화와 사람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몇 사람이 모여서, 희생과 봉사에 바탕한 순수한 열정만으로 일을 저질렀다. 그것은 전북인들의 뿌리깊은 문화의식과 향토애를 확인해보고 척박한 토양에서 홀대받고 피폐해진 지역문화 혹은 문화의식의 회생가능성을 가늠해 보기 위해 <전북문화저널>이라는 잣대를 만들어서 겁도 없이 시험대위에 올려놓은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이 해와 호를 거듭할수록 우선 양적으로 창간 당시의 두 배 이상의 두께로 불어났고, 내용면에도 10여개의 제목에 밖으로 드러난 문화 현상을 주로 다루던 것이 이제는 30여개 목차에 역사와 민속, 종교와 사상 그리고 사회문제까지를 폭넓게 다룸으로써 전북인들의 문화저력을 확인하고, 문화가 소수 문화 예술인들의 것이 아니라 다수 민중들의 것임를 검증한 셈이다. 이제『문화저널』은 전북인들에게 있어서는 문화 향수의 구심체로, 타지방 사람들에게는 지역문화의 발전 가능성을 보여준 한 예로 자리를 굳혀 가는 듯하다.
말이 쉬워 '통권 50호'고 '검증'이지 그 과정이 얼마나 어렵고 고통스런 것이었겠는가. 왜 자랑스럽지 아니하겠는가. 축하하고 축하받아 마땅할 일이다. 그러나 선뜻 축하한다는 말을 할 수 없는 것은, 『문화저널』이 꾸준히 발전하면서 통권 50호를 기록하게 되기까지는 지 역 사람들과 독자들의 끊임없는 격려와 축하가 있었기 때문일터인데, 내게는 우선 그 드러나지 않는 축하를 따를만한 진실이 없고, 또 그런 순수하고 귀한 축하를 두고 무슨 구실을 만들어서 '엎드려 절받기'식으로 덤으로 받아보고 싶은 축하에 걸맞는 말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1988년 1월엔가 『몽실언니』로 널리 알려진 아동문학가 권정생씨의 시집 『어머니 사시는 나라에는』 출판기념회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축사를 부탁 받은 어떤 분이 밝지 않은 표정으로 나서서는 대뜸 "출판기념회 같은 것이 왜 필요하냐, 문제 해결은 하나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소위 글을 쓴다는 사람들이 세속적인 시류에 영합해서 출판기념회 같은 것을 할 일이 아니다" 라는 것이었다. 이 말은 물론 안일한 자세에서 벗어나 문제해결에 더 신경을 써야 할 때임을 지적한 말이지만 그 말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했다. 우리의 행동이, 또는 내가하고 있는 일이 과연 출판기념회를 하기 위한 준비는 아닌지 한번쯤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할 것이다
소위 문화를 빌미로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이 상업주의와 권위주의 그리고 자만일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