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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7 | [특집]
멍청하고 등신같은 책으로 있어달라
김사인․시인 (2004-01-29 14:31:53)
문화저널의 지령이 50호에 이르렀다. 구구한 축하의 말 다 쓸데없고, 살다가 별 희한한 일 다 본다 싶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로 하면야 50호 아니라 100호라 한들 웬 방정맞은 호들갑이냐고 핀잔을 듣겠지만, 무슨 배부르고 잘난 소리! 돈푼이나 있다는 자들 나서서 무슨 신문이요 무슨 잡지요 하며 아침나절 요란하게 나팔 불다가 저녁이면 베잠뱅이 방귀 새듯 종적 없기가 예사요, 이름깨나 앎직한 이들 모여 무슨 단체 무슨 협의회, 시작은 번드레한데 사흘 못가서 뱀꼬리를 그리고 말던 경우가 한두 번이었나. 한데 50호라고! 몇 번의 합본호를 제외하고는 한 차례의 결호도 없이, 그것도 월간으로, 아는이들은 다 안다. 말이 쉬워 월간이지, 그 일을 꾸린다는 게 볼일보고 바지 앞자락 살필 겨를도 없이 한달 내 널뛰듯 해도 빠듯한 노릇. 종이 한 장도 다 돈인 터에, 넉넉찮은 주머니들은 또 얼마나 죽어났을 것인가. 모르긴 하되 뉘집 곳간 하나는 족히 거덜이 났을터이다. 일 잘하자고 들면 별 시덥잖은 것으로도 서로 낯붉히고 마음 상하기 예사였을 것이요, 이런 저런 소리들이 안팎으로 힘을빼면 그만 다 걷어치우자 싶을 때가 어디 한번 두 번 이었을까. 그 노고 오죽했으랴. 그런데 그 애물단지, 훤칠하니 잘도 났어라, 특별시 직할시 그 어디서도 못한 일, 높지도 낮지도 않은 목소리로 『전북문화저널」 지령 50호야(也)라! '따끔한' 한 마디 덧붙여 달라는 주문이지만, 똥밭에 뒹근 개꼴로 엎어져 있는 주제에 뉘도 안붙은 이들에게 언감생심 무슨 할말. 통권 9호째부터 문화저널을 차곡차곡 모아두고 있다고 으시대보자 해도, 몇 해 전에 만원 보탠뒤 겉보리 한 됫박도 거든 게 없으니 지레 눈치만 보인다. 그렇지만 송두리째 무임승차로 몰리기는 좀 억울한 뿐이다. 오며 가며 만나게 되었던 서울, 부산, 대구, 청주 등지의 유지들이 지역 매체 문제를 놓고 앞이 곱네 뒤가 곱네, 무크입네, 계간입네, 기저귀도 못 땐 주제에 환갑 걱정하는 소리. 지껄일 때마다, 나는 장팔사모 벗겨든 장비 뽄새로 눈꼬리를 위로 찌익 찢어 뜨고 대갈일성, 벽력같이 외친 바 있다. 왈, <전북문화 저널>을 아는다 모르는다 ! 앞으로는 마누라 속옷을 내다 팔아서라도 구독료를 장만해 올릴 요량이다. 그런 다음 전주. 전북 지역에 대한 내 문화적 시민권을 주장할 작정이다. 마지막으로 쓸데없는 걱정 한 마디. 나는 원칙적으로 문화저널이 근사한 월간지가 되는 것에 반대다. 잘되면 잘되는 대로, 못되면 또 못되는 대로 필자와 독자들, 실무 일꾼들과 지역 주민들의 마음이 한 자락씩 보태져서 유지될 일이지, 책 팔아 제작비 건질 생각은 안했으면 한다. 애초의 겸허하고 소박한 뜻, 그것만이 문화저널의 알맹이다. 아트지 겉장에도 나는 반대다. 빠른 속도로 부피가 늘어나고 책값이 조정되는 것에도 반대다. 모양 차리려다 보면 헛욕심 나고, 욕심내면 저도 모르게 조급해지고, 조급해지면 억지를 부리고, 억지부리다 보면 마음 잃고 돈에 빌미 잡힌다. 그러다 보면 사람 지치고 본(本)을 놓친다. 요컨대 이 이악스런 세월에 문화저널은 좀 멍청하고 등신 같은 책으로 있어달라는 것인데, 50호의 장본인들께서 어련하시랴. 기우일 뿐이다. 책을 받을 때 마다 나는 감동한다. 그리고 송구하다. 고약한 시절에, 그러나 아직은 항심(恒心)을 지닌 벗들이 이렇게 살아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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