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7 | 칼럼·시평 [시]
피노리의 밤
김판용(2004-01-29 14:36:03)
피노리의 밤
김판용
살아서가 아닌
의롭게 죽기 위해 피했던
한 시대의 역사는
어둠이었나
죽창을 꽂은 땅
눈물 만든 대지에
녹두꽃은 하르르 하르르 지고
뒷산 닭울음 형세로도
아직 어둠이었나
옛 주막자리 우물터
백년 동안의 물을 마시면
어디즘 묻혀
땅 속을 흘러온 그분의 분노로
이가 시리고
아찔 아찔 정신 드는데
노론‧노비 피해와 이룬 마을
농촌 피노리엔 못 살아
다시 도시로 피난 가는
이 시대 농업은
어둠이었나
뽑지 못하고 그 논엔 묻힌
죽창이 숨배로 썩어
못 막은 그날 외세
농산물 침략.
잘리는 건 목이 아니라
목구멍
명분이 아니라 밥그릇인 걸
역사는 이 밤처럼 저물고
그이는 무너미 고개 넘어
압송되는 이 시대
작별이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