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한달 사이에 분신한 8명을 더하면 전태일 이후 분신자살자의 숫자가 125명에 이른다는 치떨리는 집계를 보았다.
1968년 체코의 바츠라프 광장에서 있었던 한 학생의 분신은 소련점령군에 대항하는 노도와 같은 투쟁을 불러일으켰고 베트남에서 있었던 승려들의 분신공양은 외세를 물리치려는 베트남 민중들의 가슴에 불을 당겼다.
우리들의 목숨 값은 이다지도 헐값이라는 말인가?
이러다가는 1년 365일이 분신자살의 기일로 다 채워질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숨쉬고 살고 있다니‧‧‧.
누가 죽었다는 말만 들어도 철렁! 가슴부터 뛰는 이즈음에 책상머리에 앉아 미술이 어떻고 미술비평이 어떻고를 논하다는 것이 매우 사치스럽고 한가한 놀음 쯤으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은 그의 <결코 한가하지 않은 이야기> 중에서 예술비평은 ‘잡초뽑기와 물주기’라고 말했다.
해로운 작품을 호랑이보다 무섭다고 비유했고 문예비평가들은 그것들을 가두는 철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 나는 의 그말에 동의한다 어려운 세상, 추악함이 온 천지를 덮을 때일수록 아름다움의 의미는 소중해진다. 그것을 가구고 매만지고 물을 주는 일은 결코 한가한 얘기가 아닌 것이다.
이태호의 미술평론집 <우리시대 우리미술>은 그런 맥락에서 미술이 당대에 어떻게 관여하고, 형상화 해내야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책이다.
이 미술평론집의 기술방식은 특이하지가 않다.
주로 80년대 초두부터 진행되어온 각종 실천적 미술운동의 사례들을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평론집의 의미 질량이 가볍지 않은데는 몇가지의 이유가 있다.
첫째로 그것은 총6부로 짜여진 각 단원의 제목이 보여주듯 현단계 우리사회의 본질적 문제와 접근된 미술의 실천 사례들을 그 토대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평론가가 하나의 텍스트를 선택할 때 그 선택부터가 이미 평론행위가 됨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것 자체가 하나의 관점인 것이다.
저자 자신이 서문에서 밝혀 놓았듯 미술사를 전공한 그가 박물관에서 고서화나 골동품을 만지는 일에서 벗어나 80년 5월 광주, 농촌의 현실, 구속된 표현의 자유, 민중 삶의 올바른 인식문제, 지역현실, 통일의 문제 들을 왜 집요하게 미술과 관련시켜 가는지를 독자들은 함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둘째로 그의 평론집중 빼놓을 수 없는 미덕으로 보이는 것이 전통미술에 대한 재해석의 시각이다. 80년대 민족민중미술이 자기한계를 깨치고 나서기 시작했을 때 일부에서는 그것을 미술의 통념상 이해될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저자는 80년대로부터 출발한 민족민중미술운동이 해방공간, 조선후기의 미술사적 근거들과 무관하지 않음을 들춰 내보이고 있다.
그것은 지금과 같은 문화종속적 상황에서 전통미술사를 현재적 의미로 되살려 내는 일이 어느때보다 각별하다고 하는 그의 관심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하거니와 전통미술을 민중자주적 역동성이라는 바탕위에 재구성하려는 노력과도 무관하지 않다.
셋째로는 이 책의 여러 곳에서 얼핏얼핏 눈에 띄는 미술작품 평가의 태도에 관한 점이다.
나는 저자의 미술작품에 대한 평가방식을 여러번 가까이에서 지켜본 바 있거니와 일반적으로 다른 미술 비평가들이 현학적인 용어를 동원해가면서 까지 자신의 주관적 심미 기준을 고집스럽게 관철시키려는 나머지 의외로 대중적 정서와 괴리를 빚는 경우를 왕왕 보아왔다. 저자는 그런 점에서 매우 독특한 태도를 취하는데 이를테면 무작위적으로 감상자를 선택, 그들의 작품평을 듣고 자신의 평가기준에 적잖은 참고를 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자신의 평가기준을 대중들로부터 검증받는다는 방식인데 그러한 평가태도는 미술창작자나 지식인 평론가들이 자기편협성에 빠져 놓쳐버리기 쉬운 제반문제들을 의외로 많은 부분 수정 보완케 해준다는 이로움이 있다.
그것은 우리미술의 장래를 민중의 자주적 역동성과 관련시켜 그들의 심미이상을 체현해내는 방식으로 이뤄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믿는 저자의 확신에 근거하고 있다.
대략 이와 같은 이유들로해서 이평론집은 우리시대가 지향해야할 우리미술의 진로를 가늠케 하는데 믿을만한 방향타의 의미를 감당해내고 있다고 본다.
덧붙여 한사람의 독자로서, 또는 한사람의 미술창작자로서 나는 이 책을 읽어가는 동안 시사받는 점이 적지 않았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우선은 대중으로부터 배운다고 하는 평론가로서의 겸허한 태도이다. 그것은 추수주의를 말하지 않는다. 잠재되어 있는 삶 속의 미감을 찾아내고 그것을 자기 기준으로 삼으려하는 끝없는 자기갱신의 노력이다.
다음으로는 저자의 놀라운 부지런함이다 그는 우리시대 우리미술의 참된 싹이 된다고 믿는 모든 전시장, 작업현장을 빼놓지 않고 살펴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시위, 집회현장을 부지런히 쫓아다녀본 사람들은 카메라를 기관단총처럼 가로매고 각종의 시각매체를 낱낱이 살펴보고 있는 그를 늘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의 그런 부지런함으로 모아진 수 만장에 달하는 슬라이드 자료를, 그의 문예이론가로서의 책무를 실천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무기인 환등기를 통해 끊임없이 비추어 주면서 다소 어눌한 목소리를 통해 정리해냈던 기록들이 이 평론집으로 묶여진 것이다.
미술관계자들 뿐만 아니라 관심 지닌 여러분들께도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