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8 | [문화저널]
남해금산에서 모악까지
박남준․시인
(2004-01-29 14:47:21)
남으로 남으로 달렸습니다. 차장밖으로 하나 둘 깜박이며 고개 내미는 먼 불빛들 뒤로하고 밤차는 쉬지 않고 달려갔습니다. 밤차의 창밖으로도 하늘엔 별들 떠오르고 내 어린 날 울어머니 경대 앞에 다소곳이 앉아 곱게 그려놓은 눈썹같은 초생달 걸려있습니다. 저 달이 질 무렵이면 나는 남해의 바닷가에 닿아 질 것입니다.
언제부터 눈을 감았는지 통통배의 발잰 소리와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에 눈을 뜨니 작은포구를 낀 남해의 상주리 해수욕장이었습니다. 먼동이 터오르는 포구는 이제 막 기지개를 키며 일어나고 벌써 갈매기들은 아침바다의 뱃전을 돌며 끼루룩--- 아득한 추억의 향수같은 울음으로 바람을 가릅니다.
아! 바다, 푸른바다 물안개로 번지며 다가오는 김나는 바닷가에 서서 나는 몇번이나 큰 숨을 들이켰는지 모릅니다. 그 상쾌한 기분
그러나 그 좋은 아침은 오래가지 않고 불과 몇분후에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상주리 해수욕장의 한쪽 마을에는 허름한 돌담장에 초가집이 한채 있었습니다. 집은두칸이었는데 바깥채는 쓰지 않는 듯 문쩌귀도 뒤틀리고 문살도 다 헐어 빠져나간 것이었습니다. 아 외롭게 할머니 홀로 사시는 모양이구나. 젊어 그 고생고생하며 자식들 키워 놓았더니 저 잘나 다 컷다고 헌짐짝, 다 삭은 고무신짝처럼 버리고 떠나갔구나. 몹쓸 것들. 토방앞에 한껏 움추리듯 주저 앉아있는 할머니의 얼굴엔 자욱히 검버섯 피어나서 더욱 애잔하게 했습니다.
안된다 사진을 찍을라먼 삼만원은 줘야한다. 굽이치는 세월의 갖은 풍상을 다 겪은 이땅의 촌로들이 낯선 젊은이들을 편안하게 해주려고 곰살맞고도 여유로운 농담 한마디로 여겼었다. 그래 적적하셨겠지 어디 말동무라도 되어줄 사람 있었을려고 동네 아주머니 귀뜸대로 막걸리값이라도 드려야 하겠어 “안된다카이”막걸리라도 한병 사드시라고 슬몃 밀어놓은 돈 이천원이 뭐냐고 저번에 온 사람들은 삼만원을 주고 갔었다고… 할머니의 잘못은 아니었을게야 돈께나 있는 서울사람들이 놀러 왔다가 초가집의 향수에 끌려 찾아들었을지도 몰라. 돌아가신 고향 집 어머니 생각에 용돈이나 하시라고 돈을 내놓았을지도 몰라. 옳다 사람들이 찾아와 사진을 찍는다거나 하면 돈을 주고 가는구나. 늙고 궁한 할머니는 이렇게 단순히 생각하셨을게야. 툇마루 한켠으로 팽개쳐진 돈 이천원과 씁쓰레한 마음을 서둘러 거두어 뒤돌아 섰습니다. 마을 저편뒤로 남해금산이 바람 한점 쓸어보내 그 일일랑 새겨갈 것 없다 쓸어 냈습니다. 이성복의 시집 남해금사이 떠올랐습니다.
삼동에서 늦은 아침을 해먹다. 적벽의 맑은 계류 작은 소에는 아직 맑은 물에서만 산다는 섬진강에서도 이제 찾아보기 어려운 은어들이 한가로운 유영을 즐기고 있었다. 남해의 미조만을 지나 지족, 창선도, 한려수도로 이어지는 미조만의 푸른 바다위에는 쪽진 여인네의 고운 가르마같은 굴양식장의 하얀 부표들이 수천 수만의 괭이 갈매기들이 바다위에 정여히 내려앉아 있는 것처럼 끝없이 펼쳐 있었습니다. 창선도에서 배를 타고 삼천포로 가다. 짧은 거리이지만 오랫만에 타보는 뱃길이다. 충무에 가다 연안 부두에서 별미로 알려진 충무 할메 김밥을 먹다. 충무 할메 김밥은 우리가 흔히 먹는 김밥, 그러니까 김을 높고 그 위에 참기름으로 살짝 버무린 밥과 시금치 나물이며 당근 계란부침 단무지 등 먹음직스러운 속들을 넣어 만든 것이 아니라 그냥 맨밥을 둘둘말아 한입에 넣은 만큼 짧게 썰어놓고 반찬으로 넓적넓적 썰어 놓은 무김치와 오징어 무침, 실가리 된장국이 전부였다. 지금은 그 김밥도 틀을 써서 매끄럽게 말아 놓은 것이었지만 몇해전까지는 손바닥만한 김위에 밥 한술 떠서 주먹을 쥐듯 꼭꼭 쥐어놓은 모양이었다고 한다. 차라리 그 모양의 김밥이 더 먹음직스러웠을 것 같다.
거제대교를 지나 청마 유치환 시비앞에 서다. 시비 옆 지금은 마을 안쪽으로 이사를 갔는지 문짝이며 유리창들이 깨어지고 떨어져나간 텅비어 을씨년스러운 우체국의 풍경에서 청마가 살다간 암울한 조국의 시대상을 보는 것 같았다. 지금이라고 뭐 그리 달라진 것이야 있을라고.
바다위에 펼쳐놓은 금강사이라는 수려한 절경의 해금강은 온통 곳곳에 쓰레기더미로 몸을 뒤틀고 있었다. 술병, 음료수병, 과자봉지, 먹다버린 음식 찌꺼기, 곳곳에 무엇을 해먹었는지 새카맣게 그을린 돌무더기, 소리내어 욕을 해대고 싶었다. 쓰레기 같은 것들, 무식한 것들, 다 잡아다가 저 쓰레기더미에 얼굴을 처박아 짓뭉게 주고 싶었다. 못난 것들. 못된 것들, 쓰레기더미의 그곳에서 사진 몇장 찍다. 까마득한 절벽아래 부서지는 파도의 하얀 물거품 보며 아득한 현기증 느끼다. 도장포의 신선대를 뒤로하고 학동 몽돌 해수욕장에 가다 이제는 토사가 밀려와 이름뿐인 금모래의 명사해수욕장에 가다 구조라 해수욕장에서 또 한밤을 보내다.
파도 소리에 잠을 깨었습니다. 산자락에 걸려 있다 이제 막 솟아오르는 붉은 일출이 고요했습니다. 너의 그 붉은 정열로도 세상은 갈수록 안타까워지는구나. 더는 물러서길 없는 가진 것 없고 힘없는 사람들의 삶이 그러합니다. 벌서 몇 달째 날이 가물어 길게 목을 늘이며 더운 한숨을 내쉬는 대지에 뿌리내린 농부들의 삶이 그러합니다. 각종 산업 공해와 쓰레기더미로 신음하며 죽어가는 지구의 모든 생태계가 그러합니다.
저곳에 밤낚시꾼들이 모여 있었었지 어제 밤에 낚시꾼들이 앉아 두런거리던 곳, 그곳엔 빈 병이 어지럽게 쓰러져 있었으며 잘라내버리고 간 낚시바늘 몇 개 눈에 띄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쓰고 남긴 갯지렁이들이 빈 깡통 속에 숨어 간간히 몸을 꿈틀거리고 있었습니다.
덫, 그것은 일종의 음흉한 흉계이며 함정입니다. 낚시바늘에 미끼를 끼워 교묘히 위장하고 먹이를 통해 유인해내는 낚시 말입니다. 장난삼아 잘막잘막한 낚시줄을 이어 바늘을 묶고 갯지렁이를 꿰어던져 보았더니 손바닥만한 박대 새끼들이 금세 물려 나왔습니다. 허 이놈 좀 봐라. 그나마 그놈은 미끼를 채 먹지도 못하고 주둥이에 바늘이 불쑥 삐져나올 정도로 몹시도 단단히 물은 모양입니다. 고무신을 벗어 신발 한쪽에 고기를 담고 한쪽 신발로 덮어 두었습니다. 한 열마리는 넘게 잡은 모양입니다. 나중에는 친구를 불러 그릇을 가져오게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 친구와 둘이서 낚아올린 작은 광어며 우럭까지, 합하면 족히 매운탕 한솥거리는 잡은 모양입니다. 햐! 제법 생선 매운탕 맛이 나는데. 남해 금산을 첫 여행지로 떠나온 다섯명의 일행중에 갈비집을 하는 말씨좋은 아저씨 같은 ㅅ형과 ㄱ씨가 끓여내온 조금전의 그 생선 매운탕으로 우리는 간밤의 숙취를 풀며 해장술을 나누었습니다.
자료집으로나마 그 아수라장의 피묻은 역사를 더듬어봐야하는 거제포로수용소를 지나다. 한국전쟁의 극심한 이데올로기 대립의 한 단면이 생생히 기록되어 있는, 이제는 몇 남아있지 않는 곳이었는데 옥포 조선소가 들어서는 등 거제도의 개발로 말미암아 대부분 흔적이 사라지고 말아 안타까움이 일었습니다. 마산을 지나다. 밀양에 가다. 한여름에도 얼음이 언다는 가지산 얼음골에 가다. 가진자들의 독버섯 같은 검은자본의 마수는 그곳에도 뻗쳐와서 골짜기 바로 옆에 호텔을 짓는다 뭐다. 위락시설단지 조성공사가 금속성의 소음으로 가지산 가득 덮고 있다. 한겨울 얼음을 깨고 발을 담고 있는 것처럼 아흐-- 그 시린 물에 발을 담고 담배 한 대 태워 물다. 경주에 가다. 붉은 조선 소나무들, 도래솔이 빼어난 풍치를 이룬 경애왕의 삼릉에 들리다.
동해의 작은 포구 강구에 닿았습니다.
성긴 눈발이 휘날리던 몇해 저의 겨울
그 겨울밤 포구 한쪽 구석
흘러나오는 포장마차 몇촉의 칸데라 불빛에도
나는 눈시울 붉혔습니다.
울아버지 돌아가신 그 겨울이었습니다.
영덕대게, 지금은 산란기때여서 드러 내놓고 잡지는 않는다지만 그 겨울 내가 두팔을 벌려서 크기를 가늠했던 영덕대게, 내 소원을 풀어주마고 ㅅ형은 주머니를 다 털어내는 것이었습니다. 맛있다라는 말을 내가 가지 언어로 어떻게 표현해야할까? 다 밤이 되어서야 우리는 영해의 대진에 몸을 풀었습니다. 철이른 모래밭에 텐트를 치고 바로 밑 한발너머까지 파도쳐 오는 물결소리로 잠을 청했습니다. 꿈꾸었습니다. 이 검은 장막의 밤에 밀물지듯 밀려와 푸른 동해의 아침을 열며 떠오르는 붉은 해의 장관 말입니다. 바람을 가르며 힘차게 날아오르는 새들의 푸른하늘 말입니다.
벌써 뜨거워진 모래를 맨발로 뛰었습니다. 파도쳐 부서지는 바위섬까지 마음껏 물장구를 치며 헤엄쳐갔습니다. 고동을 따고 돌미역을 따고 홍합을 따고 한발이 넘도록 바닥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동해바다속으로 자맥질했습니다. 주먹마한 백합들을 담백하고도 푸른 바다내음나는, 춤추며 밀려와 새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노래하는 파도내음나는 동해의 백합죽을 끓여먹던 그날밤 나는 콧물을 주루룩 훌쩍거리며 가벼운 신열에 빠져들었습니다.
병곡에 가다. 후포를 지나다. 성류굴앞에서 발걸음을 돌리다. 불영계곡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다. 봉화에 가다 영주에 가다. 안동 하회 물도리동에 가다. 상주, 김천, 무주 아! 길가의 양옆 곳곳의 공터에 집집마다 거리거리마다 마을 마을마다 산더미처럼 무더기무더기로 쌓여 팔려날 기미가 없는 양파무더기들이여! 수입농산물에 밀려 헐값 똥값으로도 팔려나가지 않고 악취로 썩어 문드러질 이나라의 양파들이여! 밭작물이 타들어가고 이제 막 뿌리를 내린 어린 벼들이 타들어가고 아! 모내기마저 못하고 백답으로 잡풀우거져가는 논배미들이여!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무겁고도 침울했습니다. 여행의 노독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산골 저의 집, 모악산방아래 주씨 아저씨네는 내일, 내일, 내일까지만 또 내일까지만 기다려보자던 못자리의 웃자란 모들을 끝내는 낫으로 울컥울컥 베어내고 말았습니다. 다리를, 팔을, 온가슴을 철컥철컥 베어내는 것이었겠지요, 백답으로 묵어가는 산골 천수답 저 다랭이 논에 이제금 무슨 희망은 남아있어 익어가는 것들 거두어질 날 있겠는지요. 무심한 하늘 그날밤부터 그토록 기다리던 단비는 줄기차게 뿌려댔습니다. 이제는 심어둘 모도 없는 빈 논바닥 백답가득 무심한 물줄기가 넘쳐 흘러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