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에서는 태아기로부터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아이의 음악교육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학교에 입학하기 전의 어린이는 부모와 집안 환경에 의하여 음악에 대한 정서가 길러지고, 그 정서에 의하여 어린이의 성격은 지대한 영향을 받게 되므로 정신 건강에 해롭다고 판단 된 음악은 오히려 듣지 않는 것이 정서 생활을 위하여 도움이 될 것이다.
결국 부모 특히 엄마의 정서 생활이 아이의 정서 생활을 결정하게 되고, 따라서 엄마의 음악적 취향이 아기의 음악적 취향을 결정하게 되며, 그 음악 취향이 아이의 성격과 사회생활의 기본적인 흐름을 결정하게 된다.
국민학교에 입학하게 되면 음악 교육은 선생님에 의해 교과서를 중심으로 선생님의 음악적 취향이 가미되어져 수업이 진행된다.
여기에서는 선생님을 양성하는 교육대학의 수업과 국민학교의 음악 수업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교육대학에 입학하는 예비 선생님들은 음악에 대한 인식과 음악교육에 대한 목적을 분명히 갖고 교육과 실습에 임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의식의 변화를 갖추지 않았을 경우 자신이 공부한 내용의 결과는 국민학교의 피상적인 음악시간 이상의 효과를 만들지 못 할 뿐만 아니라, 어린이들을 올바른 정서로 이끌지 못 할 것이다.
우리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음악과 사회에서 흔히 듣는 음악을 구별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현상이 언제부터 생겨났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현재의 교육제도가 시작되면서 구분되기 시작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음악을 양분하려는 현상이 오늘의 음악교육의 문제점을 만들게 되었다. 또 이런 현상이 국민학교 시기부터 서서히 우리의 의식 속에 깊은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는 점은 지적돼야 한다.
마치 학교에서 배우는 음악은 무조건 좋은 음악이고 사회에서 듣고 배우는 음악은 좋은 음악이 아닌 것처럼 교육되고 있는 것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음악은 무엇인가?
‘음악은 곧 생활이다.’ 생활 속에서 음악이 만들어지지 음악만 따로 생겨난 것은 아니다. 바꾸어 말하면 ‘언어는 곧 생활이다’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음악은 언어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언어가 그 국민의 정서를 대변하고 있다면 음악은 그 정서를 표현하는 수단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족과 언어와 음악은 흘러간 역사 속에서도 그리고 현재까지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음악은 음악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우리의 삶을 풍부하게 하는 수단인데 현재의 교육은 본말이 전도되어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릇된 음악의 역할만이 강조되고 있다.
국민학생들에게 음악수업은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어야 한다. 그 즐거움을 친구들과 같이 있을 때도 집에서도 항상 느낄 수 있어야 하는데 대개의 경우 음악시간 외에는 그것과는 동떨어진 세계의 노래를 찾게 된다.
특히 TV의 만화영화 주제곡, 광고음악 또는 성인가교를 즐겨 부른다는 것이다.
왜 어린이들이 학교에서 배운 노래를 즐겨하지 않을까?
예를 들어 노랫말이 어린이의 생활과 거리가 먼 가사를 선택했다든지, 리듬이 노랫말과 제대로 어울리지 못한다든지, 선율의 높낮이가 아이들이 편이하게 부를 수 있는 음역을 벗어났다든지, 전체적인 장단이 기계적으로 반복된다든지, 선율 진행이 부드럽지 못하다든지, 노래가 율동과 함께 어우러지지 못한다든지 등등 여러 가지 문제점을 꼽을 수 있다. 또한 음악교사의 수업방식이 어린이의 능동적인 참여보다는 수동적으로 따라 오도록 하는 경우도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그리고 어린이가 조금만 잘못하여도 꾸짖게 되는데 사실 어린이들이 배운 그대로 하기가 힘들 경우도 있고, 능력이 안되는 경우도 있다는 점이 고려되어져야 한다.
사실 음악교육의 수업내용과 수업방법은 많이 개선되고 있다. 또한 수업 효과를 높이기 위한 연구도 상당부분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음악의 역사성, 음악의 민족성, 음악의 사회성이 얼마나 반영되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노래와 유희 속에서 우리나라의 역사를 익혀야 할 것이며, 노래와 유희 속에서 민족의 동질감과 전통문화를 느껴야 할 것이고, 음악이 사회생활에 도움이 되어야 하는데 앞에서 언급되었듯이 학교음악과 가정음악, 사회음악이 일치를 못보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문제점을 학교교육에만 무조건 떠 넘겨서는 안된다. 학교는 학교대로, 가정은 가정대로, 사회는 사회대로 공감대를 형성하여 서로 협조하여야 하는데 현재 우리의 실정은 서로 떠 넘기려고만 하는 듯하다.
하기야 아직도 우리의 생일날에 부를 수 있는 우리 노래 하나를 제대로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으니 한심하기만 하다. 혹 우리의 생일 노래를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정서와 거리가 먼 노래를 만들었기 때문에 배운다고 해도 실생활에는 사용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자장가가 오히려 아기를 깨우는 노래가 돼버리듯이….
국민학교 6년 과정은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고, 호기심에 이런 일 저런 일을 하게 되고, 부모한테 꾸중과 칭찬을 번갈아 가며 듣고, 선생님 말씀이 부모의 말씀보다 더욱 무게있게 느껴지는 그런 시기이다. 이 때 우리는 어린이에게 지식을 전달하기 위하여 무진 애를 쓰고 있지만 이 사회는 그들에게 모순된 일을 보여주고, 그것을 따라하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국민학교 6년 동안 어린이들에게 우리의 문화, 우리의 정서를 올바르게 느끼도록 할 수는 없을까. 과연 6년 과정의 음악 수업을 통하여 우리는 그들에게 무슨 음악을 가르치고 있는가. 혹시 왜곡된 음악이 마치 우리의 음악인양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수업의 능률만을 위하여 어린이들을 어린이답게 만들지 못하고 있지는 않을까.
6년동안 우리의 흥과 멋을 느낄 수 있는 장단 하나 제대로 가르쳐 보았나 우리가 쓰고 있는 한글의 어법에 맞는 노래 하나를 제대로 만들고 가르쳐 보았나, 그 흔한 장고나 꽹맥이․징 또는 단소나 소금 등 치고 불기만 하여도 우리의 정서가 표현 될 수 있는 악기를 하나를 제대로 가르쳐 본 적이 있나.
매시간 딱딱한 피아노 음에 억지로 우리의 감정을 얹어 혼나가면서 배우는 노래는 금방 잊혀지지만 그래도 잊지 않기 위하여 반복을 하면 훌륭하고 서구적인 문화인이 되리라고 생각 하는가 우리의 정서는 그렇게 각이 지거나 틀에 딱 맞는 그런 정서가 아님을 누구나 알고 있다. 한국문화 속에 나타나는 현상들은 모두 그 나름대로 시대 시대를 거쳐 걸러지고 응집되어 만들어진 결정체이다. 그 문화에 예술이 있고, 그 예술에 음악이 존재하게 된다. 한국문화와 음악은 별개의 것이 아니고 같은 것이다.
현재 교육대학 음악과 수업이 한국문화의 관점에서 음악교육을 하고 있는지와 한국문화 속에서 음악을 가르치는 음악교육자를 양성하고 있는지를 깊이 반성해보고, 특히 교과서에 수록된 음악이 한국문화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이제 진지하게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