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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8 | [문화시평]
단절된 춤문화, 옹골찬 전승의 가능성 「전라도의 춤, 전라도의 가락」을 보고
이상덕․전주일보 문화부 기자 (2004-01-29 14:48:39)
전통예술공연이 옛날처럼 어떤 특별한 계기에 마당이나 뜰에서 연행도리 적에는 그 분위기에 맞는 예술형태를 연행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므로 공연예술의 다양화는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요즈음 처럼 극장무대에서의 예술공연이 다양하게 표현되면서, 양적인 풍성함에 걸맞는 우리네 심성을 대변하는 우리 춤사위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러한 춤문화의 현실속에 더욱 아쉬움을 갖게하는 것은 조상 대대로 전래되었던 많은 춤사위가 제대로 전승되지 못하고 단절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이러한 단절된 춤문화를 옹골차게 전승키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민중의 가슴속에 살아숨쉬는 숨은 계기들을 찾아내어 자주 공연할 계기를 마련해줌으로써 끊어져가는 예술적 미감을 이어주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지난 6월 20일 춤의 해를 기념하기 위해 전북예술회관 무대에 올린 「전라도의 춤, 전라도의 가락」을 우리들 마음속에 두는 것은 참으로 뜻깊은 일이었다. 빛나는 옷이 흙속에 파묻힌 것처럼 잊혀져가거나 숨겨져있는 우리 고유 민속춤들이 출연자 개개인의 수준높은 예술성과 완숙한 기량을 통해 선보인 이날 춤판은 전통춤의 정수를 보여주었으며 다채롭고 흥미로운 프로그램 편성을 통해 춤에 내재되어 있는 참된 정신세계를 음미할 수 있었다. 출연자들이 각기 다른 개성과 특성을 담아냈던 이날 춤판은 예술성을 보여주는 표현수단과 방법이 판이해서 그 나름대로 독창적인 예술의 경지를 관객들로 하여금 감상할 수 있게 하였고, 이 지역 예술계에 전통춤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전통춤에 대한 오늘의 참뜻을 이어내기에 충분한 자리였다. 특히 우리나라 전통적인 춤사위를 기층문화에서 싹튼 민속무용과 선비문화에서 탄생된 궁중무용으로 분류해볼 때, 민중적 의식에 바탕을 둔 샹향식 문화의 기능성을 가진 민속춤이 한자리에 선보인 이날 춤판은 출연자들의 오랜 연륜과 시종일관 외길로 정진하며 헌신적으로 닦고 다듬은 춤사위가 신명과 멋으로 한데 어우러져 가식없는 그대로 무대에 올랐다는 점에서 신선한 공연물이었다. 잊혀져 가는 춤의 본래 의미를 되살리고 그들의 삶속에 우러났던 춤의 정서를 오늘에 이어냈던 이번 춤판에서 나금추씨는 상쇠춤을 선보였다. 판굿에서 벌어졌던 민중적 춤사위가 아직도 개인 춤으로 승화되지 못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나씨의 쇠치는 솜씨는 그 장단에 춤이 스며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신선한 놀라움을 불러 일으켰다. 그의 삶과 예술의 쇠소리속에서 녹아들고 춤사위속에 절도있게 펼쳐진 상쇠춤은 진진몰이로 몰아나갈수록 그의 진가를 더욱 빛나게 했다. 그는 억제의 효용을 알고 있어 부드러움이 얼마나 강한것인가를 또한 관객들로 하여금느끼게 했다. 김이월의 한량춤은 화평하고 안정된 기분이 들었으며 팔 한번들고 한 발걸음 내딛는 것에도 절제와 법도가 있어서 일동일정이 소홀하거나 허술함이 없이 짜임새있게 펼쳐져 곰삭고 무르익은 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남성들에게 전수되어온 한량무가 김씨에게 아직도 제자를 잡지못한 불안감을 다소 보여주어 아쉬움을 남겨 주었다. 김용순의 소고춤은 여자라는 춤사위를 느낄 수 없이 진중하고 활달해 보여 보는 이로 하여금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춤사위와 가락을 표출했다. 특히 지칠줄 모르는 힘의 분배와 소박하기 그지없는 그의 추은 정․반․합으로 나타나 소고춤의 의미있는 진솔함을 표현했고, 특히 무대를 넓게 이용하는 그의 춤세계는 소고춤이 마당놀이에서 실내 공연물로 정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어 공연된 장녹운의 살풀이는 안정된 몸자세와 끊어질 듯 하면서도 다시 이어지며 연결되는 팔의 동작이 춤의 묘미를 더해줬으며 우리 춤의 본질인 몸과 팔 무릎의 굴신이 정지없이 연결되어 명인다운 자태를 보여주었다. 특히 그의 춤사위는 특이한 표현양식을 갖고 있다. 그것은 현대 서사극의 대가인 브레히트가 그의 이화효과론(異化效果論)에서 언급한 동양적 몸짓의 제시이다. 이른바 감정의 이화라고 해서 눈물․슬픔․웃음․기쁨의 감정마저 무대위에 객관화 시키는 기법이 그의 춤사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남으로써 우리는 살풀이속에 잠재된 서사극적 요소를 직접 체험으로 받아들일 수가 있었다. 고창농악으로 무대에 오른 황귀언 유만종 강대홍의 설장고와 소고춤은 가장 전라도스러운 우도농악의 가락과 춤사위를부드럽고 흐드러지면서도 섬세하게 표현했다. 살아온 인생에 비해 훨씬 역동적이고 힘찬 춤과 가락을 선보인 설장고와 소고춤은 빠른 박자속에서도 마치 제비가 하늘을 날아다니듯이 무대를 왕래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참으로 멋진 표현이 되었고, 그속에서도 특히 정중동의 표현은 일품이었다. 설장고와 소고춤의 조화는 관중을 매료시켜 만장의 박수를 받을만큼 이채롭고 특색있는 무대였다. 또한 이 지역의 대표적인 풍류가락을 간직해온 전태준(대금), 강동일(거문고), 강정열(아쟁), 정회천(가야금), 이성근(장고)의 반주음악은 전라도의 춤사위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가락으로서, 손색이 없었다. 옛 선현들은 춤사위를 일컬어 일신(一神) 이기(二氣) 삼태(三態) 사술(四術)이라 했다. 술은 배울수가 있고 태는 지을수가 있으며 기는 기를수가 있고 신은 배우거나 짓거나 길러서 될 수 없는만큼 천부의 재능이 있어야 하지만 많이 배우고 오래 짓고 힘써 기르면 나중에 절로 생길 수 있다고 하였다. 전통춤의 경우는 태에서 머무는 경우가 많으나 이번 춤판에서 선보인 경지는 많이 배우고 오래 짓고 힘써 길러서 후천적으로 신이 생긴 위상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이 지역에 숨어사는 명인들을 발굴해 우리춤의 고유모습을 찾아내고 그 춤과 가락을 지켜온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이번 공연은 분명 우리 춤문화의 건강성을 회복하고 전통춤을 온전하게 자리매김했던 행사였다. 특히 밟음의 춤과 푸는 춤의 교감을 통해 우리 민중들에게 내재되어 있는 흥을 표현했던 이번 공연은 우리 춤이 간직하고 있는 자연순응의 미의식과 슬픔․정․환희 등이 융합된 인본주의의 순수성을 느끼게한 자리였다. 이 행사가 앞으로도 지속적인 발전을 통해 이 땅에 숨어사는 예술인을 찾아내길 기대하며 이들이 최소한의 문화정책 혜택을 통해 그들이 간직해온 진솔한 춤문화가 올바르게 전승되도록 우리는 계속해서 지켜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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