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8 | [문화저널]
새우젓국 바르고, “내가 꽃으로 뵈냐”
김두경․서예가
(2004-01-29 14:57:46)
오실 때 오셔야 할 비가 오시지 않아 애를 태우던 요즈음 그래도 조금 내려주신 비 때문에 급한 목마름을 면하고 나니 어제까지 부산하게 환경파괴가 원인이 되어 장마가 늦었노라던 기상청의 발표도, 심각한 몸살을 앓고 있다는 지구촌 이야기도 우선 내 발등에 떨어진 불이 아니니 “자! 떠나자. 마음껏 먹고 입고 쓰고 남겨서 버리자”는 움직임 속에 묻혀 버리고 거리거리 곳곳마다 행복한 웃음들이 넘쳐난다. ―내일은 어떻게 되겠지. 우리는 능력있는 만물의 영장, 인간이니까―
이런 판국에 문화저널 편집기자님께 원고 마감 기일이 지났다는 독촉 전화를 받고 옛말 사랑 어쩌고 하며 책상에 앉아 뭐 재미있는 말씀 없나 생각하니 문득 아버지께 들었던 한마디 우스개 말씀이 생각나 요번에는 배꼽잡고 발가락 빠는 아야기나 한토막 해야겠다.
옛날도 아니지만 좌우지간 옛날 어느 고을에 정신이 약간 남들보다 독창적이고 진보적인 큰애기가 살았는데 남들이 동백기름 곱게 발라 머리를 빗고 분단장 곱게하고 나들이 하는 것을 보고 나라고 못 할 소냐 나는 첨단 기술을 도입하여 신소재에 의한 전혀 새로운 형태의 머리 단장법을 선보이겠다고 결심하고 연구 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지만 신소재인 새우젓국으로 자존심 머리를 세워 새로운 형태의 머리를 하고 나들이를 하니 벌 나비는 나중에 백마타고 나타나려고 아직 안나오고 파리 모기 개미 심지어 말똥구리까지 달려드는지라 눈꼬리를 살포시 치켜 올리고 손에 든 부채를 가볍게 흔들며
“내가 꽃으로 뵈냐?” 했다더니
진보적이고 독창적인 사람이 있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지라 요즈음은 윗도리만 입고 아랫도리는 안입는 것으로 독창적 진보성을 표현하고 있는데 인구가 많다보니 독창적 진보성을 표현하는 비율도 높아져 이제는 윗도리만 입고 아랫도리는 안입는 정도에 독창적이라는 말을 쓰기에는 어색해졌지만 보다 연구를 많이 하신 분들 중에는 파자마라 부르는 국적 불명의 잠옷을 입은 채 골목길을 활보하며 가게에서 물건을 사거나 자동차를 열심히 닦으시는 분들과 심지어는 그 차림에 강아지 한 마리 앞세우고 집앞 공원을 산책하는 독창성을 발휘하는 사람도 있고 또 한편에서는 반바지에 윗도리는 쌍방울 속것만 입은채 새끼하나 옆구리에 끼어들고 골목길에 쭈그리고 앉아 다리를 득득 긁어대며 잡담을 하는 독창성을 발휘하는 사람도 있다.
하여간 좋다 윗도리만 입고다니건 파자마 차림에 쌍방울 속것 하나로 골목을 활보하건 좋다 살면 얼마나 산다고 좀 자유롭게 살다 가야지…….
하지만 있다 허벅지를 드러내고 살건 배꼽을 드러내고 살건 드러내는 그것이 보기 싫은게 아니다. 다만 생각의 치열함이나 그 치열한 사고에 의한 필연성이 아니라 다만 외형의 모방, 맹목적 유행을 안타까와 하는 것이다. 생각의 치열함이나 그로인한 필연성이라는 말이 너무 거창하다면 다 접어두고 “우리를 알자” 그도 못하면 내가 누구인가를 한번만이라도 생각해보자. 그리고 나서 변하자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새우젓국 바르고 “내가 꽃으로 뵈냐? 하는 진보가 지나친 사람이 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