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9 | [정철성의 책꽂이]
판 심고서 콩 나기를 바라는가
『소학집주(小學集註)』
김병기․공주대학교 교수, 서예평론가
(2004-01-29 15:06:22)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속담이 있다. 자연의 섭리를 빌어 인간사의 인과관계를 설명한 말이다. 씨앗은 심은 대로 난다. 그러므로, 콩을 거두고자 한다면 콩을 심어야 하고 팥을 거두고자 한다면 당연히 팥을 심어야 한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진리는 세상사 어느 부분에서든 항시 확인이 가능하지만, 특히 교육이 있는 곳에서는 더욱 쉽고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다. 천진난만한 학생들은 어른이 한 대로, 가르친 대로 따라하기 때문에 심은 결과를 보다 쉽게 확인 할 수 있는 것이다.
어린이에게는 근본적으로 “잘못”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 잘못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어른 잘못이다. “청소년 문제”라는 용어도 사실은 사용될 수 없는 용어이다. 어른문제일 뿐인 것이다. 음란․퇴폐 영화나 비디오, 향락적인 유흥업소는 어린이와 청소년에게만 유해(有害)하고 어른에게는 유해하지 않단 말인가?
혹자는 스트레스에 찌든 어른에게는 가끔씩 그러한 오락도 필요하다고 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자식을 키우려면 그런 오락정도는 과감히 배격할 수 있는 절제력이 있어야 한다. 어른이라는 이유만으로 제 멋대로 행동하면서 반드시 콩을 거두겠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은 망상이요 욕심일 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엉뚱한 팥이 심겨지고 있는 것이다. 이미 팥이 심겨진 줄도 모르다가 팥이 열린 것을 보고서야 팥줄기 붙잡고 “콩이 되라니까 팥이 되었다”고 탓하며, 줄기를 할퀴어댄다면 그 팥줄기가 뭐라고 하겠는가!
우리 사회의 상당히 많은 어린이나 청소년은 바로 이 팥간은 처지에 놓여 있지 않을까?
콩을 거두려면 콩을 심어야 하듯 우리의 아들․딸들을 우리의 아들․딸로 키우려면 우리의 아들․딸 되게 가르쳐야 한다. 서양의 교육이론과 방법을 들여다가 심각한 연구 없이 그대로 적용하며 가르쳐 놓고서 한국혼이 없다느니 버릇이 없다느니 하면서 청소년 탓만 하면 어쩌자는 것인가?
해방 이후의 우리의 교육은 애시당초 잘못되었는지도 모른다. 유구한 역사 속에 자생하여 성장한 질 좋은 우리의 교육철학이나 방법은 구시대의 유물쯤으로 몰아 하루아침에 팽개치고 듀이, 불룸, 부루너, 스키너 등 서양의 교육이론을 받아들여 서양식으로 가르치고 주위환경 또한 무분별하게 받아들인 서양문화로 오염시켜 놓고서 전통문화나 예절에 위배되는 청소년의 모습을 보면서는 어른들은 아무 잘못도 없는 양 “요즈음 젊은것들” 운운하며 오히려 손가락질만 하고 있으니 “요즈음 젊은것들” 그게 다 누구네 자식들인가?
조선시대 서울의 성균관이나 지방의 향교 같은 교육기관이 서양의 어느 교육기관보다 못할 리 없고, 퇴계 선생이나 율곡 선생의 교육철학이 결코 듀이나 스키너의 그것에 뒤지지 않을진대, 우리는 이제라도 우리의 교육문제를 심각하게 재고해 보아야 할 것이다.
나는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 어른들에게 『소학집주(小學集註)』라는 책을 권하고 싶다. 그리고, 우리 어른들이 이 책을 읽은 다음에는 어린이들에게 가르칠 것도 아울러 권하고 싶다.
『소학집주(小學集註)』는 중국 송나라 사람 주희(朱熹 ; 朱子)가 삼대(三代 ; 夏․殷․周)에 이미 「소학」이라는 어린이 교육기관에서 교재로 사용했다는 책의 원형을 찾아 볼 셈으로 역대의 가언․명구(嘉言․名句)를 모으고 거기에 여러 사람이 주(註)와 자신의 견해를 곁들여 엮은 책이다. 책의 구성은 교육의 의의와 중요성을 밝힌 입교편(入敎篇)과 부자․군신․부부․장유(長幼)․붕우(朋友) 등 인간관계의 질서를 밝힌 명륜편(明倫), 몸과 마음을 전일(專一)하게 가질 것을 강조한 경신편(敬身)과, 이상의 3편에서 밝힌 입교․명륜․경신의 도리를 옛사람의 언행을 통해 증명한 계고편(稽古), 그리고 역대의 가언과 선생을 계화로 제시한 가언편(嘉言)과 선행편(善行)으로 되어 있는데, 전(前) 4편을 흔히 내편이라고 하고 가언과 선행 두 편을 외편이라고 한다.
주희는 이 책의 서문격인 <소학서제(小學書題)>에서 “옛 사람들은 소학이라는 교육기관에서 물 뿌리고 비질하는 청소로부터 시작하여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응대(應對)와 진퇴(進退)의 예절, 어버이를 비롯한 피붙이들을 우선 사랑할 줄 아는 마음과 어른 공경하는 마음, 친구 사귀는 예의 등을 가르쳤는데 이것들은 모두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기본이 되는 내용이다.”고 전제하여 치국평천하의 기본 도리가 지식습득이나 고차원의 기능연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위부터 청결하게 정리 할 줄 아는 생활습관과 부모를 알고 어른을 공경하는 등 인륜관계를 스스로 느껴 깨닫는 데 있음을 밝히고 있다.
『소학집주』에는 인간이 살아가는 도리가 아주 쉬운 말로 적혀 있다. 그리고 그 도리란 공중도덕 수준의 방법이 아니다. 『소학집주』는 우선 인간이 인간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설명하고 그것을 바탕 삼아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원론적인 도리를 참으로 쉬운 말로 적고 있는 것이다.
혹자는 이 책의 가치를 강조하는 필자에게 중국의 옛 사상에 빠진 또 하나의 사대주의가 아니냐고 반문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소학집주』는 이미 우리의 책이다. 조선시대에 우리는 이 책을 이용하여 우리의 어린이들을 가르쳤고 그러한 가르침이 바로 우리의 전통교육이 되었다. 나는 서양교육 위주의 교육관경과 서양문화 중심이 사회환경 속에서 우리의 아들․딸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우리의 것을 아끼고 사랑할 줄 알게 키우기 위해서는 우리의 전통교육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 선인들이 여덟 살 때 읽었다는 『소학집주』의 가치를 되새기고 싶을 따름이다.
우리는 말로는 우리의 아들․딸들이 “자신의 뜻과 선택대로 살기를 바란다”고 하며, 제법 민주적인 부모, 민주적인 어른인 양하고 있지만, 내면적으로는 ‘……이었으면’ 하는 바램을 강하게 갖고 있다. ‘……이었으면’ 하는 그 바램 중에 아마 ‘우리네 조상들처럼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하고 이웃과 화목하게 살았으면’ 하는 바램이 가장 많을런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물질만능의 소용돌이를 겪고 난 후에 얻은 값진 자각일 수도 있다. 그 바램을 가치있는 것으로 확신하고 또 바램을 끝내 포기할 수 없다면 우리는 그 바램이 실현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할 것이다. 팥을 심어 놓고서 콩 나기를 기대해서는 안될 것이다. 『소학집주』, 이 책을 통하여 우리 모두 자정(自淨)하고 우리의 아들 딸들도 자신있게 가르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