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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8 | 연재 [교사일기]
"선생님 사랑의 매는 너무 아파요"송안나 장수번암중 교사
송안나 장수번암중 교사(2004-01-29 15:09:20)

"따라~단~딴. ~따 다라~딴. 따라" 서둘러서 2층을 오르던 나는 평소와 달리 조용한 복도를 지나면서 다소 침착하게 교실 문을 들어섰다. "몸가짐 바로, 절!??? 반가움의 인사 대신에 힘없이 고개를 떨구는 아이들. 무언가 석연치 않음을 느꼈으나 그대로 수업진행을 하고자 교과서를 펼치려고 하자,
"선생님, 선생님들은 우리를 진짜 사랑하셔요?" 평소 까불고 촐랑대던 꾸러기와는 달리 심각한 표정의 진지한 질문에 한참을 머뭇거리며, "그럼 선생님들은 너희들을 사랑한단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통을 주어도 되나요? 그것이 사랑의 표현인가요?" 그때서야 앞 시간에 체벌이 행하여 졌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잘못된 길에서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때론 사랑의 매도 필요하지"라며 애써 체벌의 정당성을 설명하려 하자 갑자기 울음소리가 가까이서 들린다. ○○시험을 못 보았다는 이유로 심각한 체벌이 행해졌음을, 50여명중 13명을 제외하고 사랑의 매라는 미명하에 제물이 되었음을, 특히 상훈이와 수미는 무려 30대를 고스란히 맞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순간 성적으로 모든 것이 평가되는 우리의 교육현실과 동료교사의 무자비한 폭력(?)앞에 분노보다 더 큰 슬픔이 솟는다.
아이들의 얼룩진 상처에 어느새 눈물이 앞을 가린다. 선생님의 정당하지 못한 행위에 무력할 수밖에 없는 아이들, 희생양에서 제외된 아이들의 우월의식이 이기심, 감정에 의한 체벌……. 우리 교육현장의 교육부재를 말해주는 사실이 어찌 이것들 뿐일까?
물수건과 연고로 종아리를 맛사지 하면서 다시금 사랑의 매로 치장된 엄청난 폭력이 당연하게 자행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왜소하고 깡마른 수미의 종아리는 퍼렇다 못해 차마 볼 수 없을 정도로 검푸른 피멍이 들고, 까불이 상훈이는 여전히 큰 눈을 껌벅이며 웃고 있다. 얼마나 아팠으면 울음을 더 큰 웃음으로 표현할까? 대체 이 아이가 무엇을 얼마나 잘못했단 말인가? 넷 중에 하나를 잘 고르지 못한, 운 나쁜 날에 대한 댓가가 이렇게 엄청난 것이어야만 하는가?
오늘 아침 교무회의(일명 지시조달시간)에서 보았던 관리자의 고도의 언성이 소름끼치게 떠오른다. 교사의 본분은 가르치는 일이고 그것이 가시적 표출은 높은 성적으로 나타난다며 낮은 학기말고사의 평균을 교사의 게으름 탓으로 치부하던 그 아침이.
자라는 과정 속에서 나타나는 아이들다움의 건강함과 활동성이 버릇없는 말썽꾸러기로, 속 빈 문제아로 매도되던 날 급기야 담임 선생님은 옥상으로 이사를 가시겠다고 한, 웃지 못할 그 날 아침이 이 무더위를 더욱 짜증스럽게 한다.
지옥같은 입시교육속에 잘난체 하는 “1”자 때문에 우리의 초롱한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다.

행복은-그 잘난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매일같이 공부 또 공부 지옥같은 입시 전쟁터.
어른들의 그 뻔한 얘기 이젠 정말 싫어요-.
행복과 성적이 정비례하면 우리들의 꿈은 반-비례 잖아요.
행복은- 그 잘난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자율학습 또 보충수업 시험 시험 시험-입시 전쟁-터
세상은-경쟁 공부 대학 출세 명예 돈-.
서로 서로 사랑하고 나눠주는 세-상은 어-디.
행복은- 그 잘난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내 무거운 책가방 속에 무엇이 들었을까.
아주 공갈 사회책, 따기기만 하는 수학책,
외우기만 하는 과학책, 국어보다 더 중요한 영-어-책.
부를게 없는 음악책, 꿈이 없는 국어책.
얼마나 더 무거워야 나는 어른이 되나.
얼마나 더 야단을 맞아야 나는 어른이 되나.
행복은 그 잘난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1번 2번 3번 4번 넷중에서 행복은 몇-번.
우리들-살고 싶은 사랑 가득한 세상-
내 무거움 책가방 속엔 행복은 없-고 성-적 뿐이-죠.
행복은-그 잘난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피멍든 종아리가 아른거린다. 아이들의 가슴속에도 피멍이 깊어가고 있으리라. 지금도 이 순간 또 다른 자질구레한 이유가 우리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있다. "선생님 사랑의 매는 너무 아파요“라는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선생님 사랑해요“라는 해맑은 웃음소리로 달려올 그 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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