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9 | [문화저널]
봉선이의 빨간 고무신
이세일․시인, 전북문협사무국장
(2004-01-29 15:21:33)
어떤 우화(寓話)
인파가 출렁이던
초파일날 밤
위대한 석가 탄생의 밤
……정혜사에서
고무신을 잃어버린 한 여인이
「고무신을 보았냐」고 묻길래
나는 말했지「보았노라」고,
분명히 보았던 빨간 고무신……
그랬더니 여인은 고함을 치더라.
「이놈아 고무신을 내 놓아라」
나 어릴적 소꼽동무
봉선이 신을 보았는데
논 물가에 벗어놓고 소금쟁이를 잡던
봉선이 신을 보았는데
어떻게 내놀거나.
어떻게 내놀거나.
현대인의 고독의 대상은 어떤 것인가. 우리는 흔히 쓸쓸하고 외롭고 혼자있는 것, 그리고 사랑과 이별 등 일차원적(一次元的)인 것에 대해서만 고독이라고 느껴왔다. 하지만 오늘날은 그것들의 고독보다 더 아픈 고독이 있다.
까뮈의 작품<객(客)>의 마지막 장면처럼 휴머니즘(Humanism)에 입각한 인간적(人間的) 선(善)의 길을 인도했지만 아랍인은 그것을 거부하고 감옥으로 가는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광대무변한 고원에 서서 「너는 우리 형을 잡아갔다. 두고 보자」라는 글씨를 보았을 때의 그 고독, 그 억울함이 현대인의 고독인 것이다.
나는 이러한 상황, 말못할 억울함 같은 것을 한국적인 감각으로 표현해 보았다.
어느 해 사월 초파일 석가 탄생의 밤, 나는 정혜사(구, 안행사)에 들렀다. 그 절은 완산칠봉 뒷쪽에 있는 여승들이 수도하는 사찰이었다.
그 날도 사람들은 어김없이 타인의 입장보다 자기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고 있었고 석가의 진리보다는 자기에게 돌아오는 복만을 빌고 있었다. 거기에는 자신의 인생(人生)을 돌아보는 참회의 빛도 일체만상이 무(無)로 돌아간다는 생(生)의 원리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일순간의 향락과 숱한 행복의 조건들만 희구하면서 인파는 출렁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어느 나무 밑에 앉아 무엇인가를 증오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등뒤에서 나를 부르는 여인이 있었다. 돌아보니 40대 중반에 들어선 중년부인은 신발을 잃어버린 모양이었다. 어디서 무엇을 하다가 신발을 잃어버렸느냐고 물었더니 법당에 들어가 빌고 나온 내용은 대단히 슬펐다. 고급 아파트 한 채가 추첨에 붙었는데 그것이 배가 남도록 다시 비싼 가격으로 팔리게 해 달라고 부처님께 빌었다는 것이다.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왜 하필이면 사월 초파일날 복부인이나 투기꾼들이 복(福)을 빌러 오는지. 남의 집 전세방도 살기가 힘들어 일년이면 한 차례씩 이사를 가는 철새의 무리들이 거리를 떠도는데, 저 부인은 아, 저 부인은…….
증오심이 머리끝까지 올라와 나는 고무신을 보았다고 말했다.
분명히 나는 해방직후 고무신을 신고 학교에 다녔고 그 고무신으로 소금쟁이나 물강구를 잡으면서 놀았기 때문이다. 논 물가에 빨간 고무신을 벗어놓고 하루종일 소꿉장난을 하던 봉선이 신도 생각난다.
오늘날 산업문명이 우리들의 눈물을 빼앗아가고 돈으로 사랑의 척도를 재는 이 시대에는 기차표나 말표 고무신을 잃어버렸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 유년시절, 지독히도 가난했던 그 유년시절을 잊을 수가 없다.
학교가 가까워 점심시간에 집으로 밥을 먹으러 오면 찬밥 한덩이와 고구마 두 개가 놓여있는 밥상을 바라본다. 그것마저도 다음에 동생들이 먹을 것을 남겨놓고 고구마 한 개만 들고 돌아서던 학교 길에는 쓰라린 배고픔이 있었지만 그래도 눈물과 인정은 있었다.
술찌꺼기(쇠지래기)를 먹고 수업시간에 졸다가 선생님한테 몹시 매를 맞던 친구도 생각나고 그 선생이 돌아서서 울던 얼굴도 역력히 떠오른다.
이렇게 가난했던 우리 한민족이 잘살게 된 것은 다행스런 일이고 퍽으나 축복 받을 일이지만 그럴수록 인간성은 상실되어가고 정의와 도덕과 그리고 천륜이 말살되어가는 이 시대에 서서 우리는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역사의 연구>에서 토인비가 말한 것이 떠오른다. 「서양문명은 과학의 만능과 물질의 풍요로움 속에 인간의 정신이 극도로 타락했다. 모든 문화가 최고도에 오르면 다시 몰락하는 길 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서양은 서서히 몰락해 가는 황혼녁에 들어서고 있다」고 했는데 여기를 보라 우리 동양을, 아니 우리 조선의 땅을, 이미 몰락해 가는 문명, 퇴폐해 가는 정신, 수 없이 난무하는 향락의 가치관을 우리는 이제사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슬픈 일이냐.
가장 동양적이고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길인 것을 우리는 망각하고 살아왔다. 촌스럽고 보수적이고 봉건적인 것들이 우리 한민족의 정신을 지켜왔으며 그때의 문화들이 세계의 정상에 올라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 여인이 잃어버린 고무신을 내가 보았다고 말했을 때, 여인은 나의 옷자락을 움켜잡고 「이놈아 고무신을 내 놓아라, 초파일날 도둑질하는 놈도 있느냐」고 고함을 질러대고 있었다.
나는 가난했던 어린시절의 고무신을 보았고 같이 놀던 봉선이 신을 보았는데 그 여인의 한복 고무신을 내놓을 길이 없었다. 더군다나 아파트 투기꾼들의 고무신을 나는 내놓을 길이 없어 부처님 앞에 켜 놓은 오색찬란한 불빛만 쓸쓸하게 쓸쓸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오, 세계의 거리에 넘어진 이정표여, 바로 이것이 이 시대의 고독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