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무 갱무 갱맥갱”, 이것은 진안 좌도 중평굿 전수장인 성수면 중평마을에서 울리는 꽹과리의 세마치 가락이고, 그 주인공들은 5박6일의 합숙훈련을 결의한 진안군 관내 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들이다. 처음 시작할 때에는 어설프게 장구, 꽹과리가 제 각각이었는데 하루 이틀 맹연습을 거듭하면서 마침내 신기할 정도로 잘 어우러졌다.
아, 얼마나 맹렬한 연습이었던가! 눈을 뜨자 마자 식사당번을 제외한 전원이 아침식사 때까지 입장단연습(입으로 소리를 내면서 가락을 연습하는 것). 오전 8시부터 저녁6시까지 호랑이 사부님의 엄격한 지도, 그 무더운 여름날에 하나라도 더 배우고자 하는 긴장감과 연습으로 온 몸은 열기로 후끈 거렸다. 그럼에도 더위를 느끼지 못함은 어떤 이유인가!
사흘째 부터는 팔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그러나 중평굿을 끝까지 배운 후의 뿌듯함은 이루 헤어 릴 수 없었다.
게다가 밤에는 시골 특유의 고요함과 그 속에서 듣는 풀벌레들의 노랫소리는 우리 일행들을 가수로 만들었고 가마솥에 솔가지로 불을 지펴 지은 쌀밥은 우리를 감동 시켰다. 금상첨화격으로 “가마솥의 누룽지를 닥닥 긁어서”먹는 누룽지나 물을 부어 만든 숭늉의 맛은 바로 고향의 맛이었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산계곡에서 흘러 내리는 물에 몸을 씻노라면 그 시원함은 뼈속을 가로지르고 나는 도를 닦는 도사인 양 착각이 들 정도였다.
사실 일주일 가까운 시간은 합숙까지 하면서 연수를 한다는 것은 특별한 각오가 필요하였다. 그러나 우리 일행은 전통의 핏줄을 이어가고 진교조진안지회의 발전을 위하여 굳게 결의한 것이다.
더욱이 좌도 풍물중에는 필봉굿이 많이 알려져 있고 대다수 사람들이 필봉굿을 배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교육운동이 지역운동과 결합되어야 한다는 것을 공동인식하고 진안 중평굿을 배우기로 결심한 것이다.
예전부터 배우고 싶었던 풍물이 기에 신나고 재미있었으며 더위는 단지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는 구경꾼일 뿐이었다. 올 여름 방학에는 훌륭한 피서법을 터득하게 된 셈이었다.
휴가란 쌓였든 피로를 풀고 새로운 일을 힘차게 하기 위하여 힘을 재충전하는데 의의가 있다면 우리의 여름방학 풍물연수가 그 모범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러나 우리의 풍물연수는 푹쉬고 힘을 비축하는 소극적 의미의 휴가보다는 거기에 더하여 미지의 분야나 관심의 분야에 대하여 접근하고 소질을 개발하는 적극적 의미의 휴가라는데 더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꼭 하고 싶었던 일 중에 못 이룬 것들을 휴가 기간에 함으로써 의미 있는 휴가를 보내야 겠다.
나의 여름 휴가 /조용하게 보낸 여름 휴가
이혜령
지난 여름 무더위가 한층 기승을 부리던 8월초, 바닷가에 놀러가자는 친구들의 유혹을 뿌리치고 배낭에 짐을 꾸려 한적한 시골에 위치한 조그마한 절을 찾았다. 면소재지에서 택시를 타고 구불구불한 자갈길을 희뿌연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20여분 후에 그 절에 도착했다. 시간에 쫓겨 초조하게 운전해야하는 도시의 택시운전사와 달리 시골의 택시운전사는 구수한 사투리를 써가며, 승객과 유대를 맺기 위해 노력했었다. 절 앞에 우람하게 자란 이름 모를 나무에서는 숫자를 헤아릴 수 없는 매미들이 하루하루 지나는 여름을 아쉬워하는 듯 자지러지게 울어대고 있었다. 한사코 여자손님은 재워줄 수 없다는 스님을 졸라 스님들의 식사공양을 돕겠노라는 약속 까지하며, 겨우 식당 방에서 하룻밤 지내도 좋다는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워낙 작은 규모의 절이어서 스님은 모두 네분이었고, 절방을 얻어 공부하는 학생이 네면, 출․퇴근하면서 스님들의 식사공양을 하는 나이든 보살님 한 분이 전부였다.
양념과 조미료를 쓰지 않아 깔끔한 맛이나는 절음식으로 밥 한그릇을 단숨에 헤치우고 밥사발에 찬물을 부어 깨끗이하여 마셨다. 약속한대로 나는 설거지를 했고, 한 스님은 수고했다며 손수 녹차를 끓여주셨다. 다도를 지킨다면서 무릎꿇고 한 손으로 잔을 받쳐가며 마신 녹차맛은 그지없이 좋았다. 까만 밤하늘에 별들이 총총히 박혀있었고, 밤늦도록 두명의 학생과 스님과 부처님의 말씀을 논하였다. 그리고 불교가 부처를 믿는 것이 아닌 부처의 가르침을 실천하면서 나 스스로를 부처로 만들어 가는 것이고, 부처는 단지 중생을 가르침의 길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는 걸 어렴풋이 깨달았다. 새벽 예불에 꼭 참석하고 싶었는데, 예불소리에 잠이 개어 절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침안개에 휩싸인 절은 마침 꿈속에서나 볼 수 있는 천상의 세계 같았다. 아침식사는 흰죽이었다. 그야말로 깨끗이 밥그릇을 비우고, 또 한번 설거지를 하고 짐을 꾸리며 이 가난한 절에 내 음식의 일부를 시주하고, 하루 더 묵으라는 스님의 청을 뒤로하고 미리 부른 맘씨 좋은 시골운전사의 택시를 타고 그곳을 떠났다.
이 무더운 여름날 행락 객으로 가득한 바닷가나 계곡을 찾아 더위를 식히는 것도 좋은 피서가 되겠지만, 조용한 산사에서 보낸 하루가 여름 내내 내 마음에 시원한 청량제 역할을 했다. <전주시 금암동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