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1991.9 | 연재 [문화비평]
대중가요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⑥/대중가요를 올바르게 수용하자
문윤걸(2004-01-29 15:26:51)

이 땅에 서양음악이 들어온 지 약 100년, 유행가가 시작 된지 6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이모양 저모양으로 모습을 달리하며 팽창을 거듭해 온 대중가요는 이제 우리 주변에서 끊임없이 맴돌며 그 누구도 이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러한 대중가요의 객관적인 영향력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대중가요를 어떠한 시각에서 바라 보아야하고 이를 어떻게 수용해야하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쌓이게 된다. 이는 오랜 시간동안 우리에게 강제되어 온 왜곡된 정서로부터의 탈피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를 무한정 미루어 둘 수는 더더욱 없다.
대중가요를 올바로 수용하기 위해서는 대중가요에 대한 정밀하고도 체계적인 분석고 비판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작업은 기존의 노래문화에 대한 문제제기로부터 구체화되는데 그중 가장 중심적인 것은 대중가요를 비롯한 기존의 노래 문화가 민중들의 진실된 삶의 과정으로부터 완전히 유리된 채 그저 몽환적이고 허구적인 현실의 빈 껍질만을 폭력적으로 제시함으로써 현실을 철저히 왜곡하며 지배자의 이데올로기에 충실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기존의 노래문화가 처해있던 당시의 역사적 상황과도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우리 나라에 초창기 대중가요의 원형이 자리잡은 시기는 이 땅에 일본이 제국주의가 침략의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던 시기와 맞물리면서 민중적 삶에 그 기반을 두고 있던 민요가 창조적 기반을 상실하고 식민지배하의 기형적 근대화에 의해 파생되는 사회경제적 파행과정과 일치하는 유행가의 모습으로 대체되는 과정이었다. 따라서 일제는 자신들의 식민지 통치를 수월하게 하기 위하여 우리 민족이 감수성을 그들 식으로 바꾸려 하였으며 이를 위해 왜색의 뽕짝가요를 탄생시켰던 것이다. 또한 일제는 대중가요에서 뛰어난 상품성을 발견하고 이를 직접적인 경제적 지배의 한 수단으로 인식하면서 대중가요에 자본주의적 상품으로서의 이윤을 극대화하며 더불어 무기력하고 소극적인 정서를 지속적으로 주입함으로써 건강한 민족적 창조능력을 약화시켜 식민지 지배를 용이하게 하려는 교묘한 지배 원리를 세웠는데 이로 인해 우리 나라 대중가요의 역사는 처음부터 왜곡된 길로 접어들 수 밖에 없었다. 본래 대중가요는 그 정서적인 친화력과 확산능력 때문에 다른 대중매체들보다도 가장 첨예한 정치적 압력과 통제의 대상이 되기 쉽다. 이러한 정치적 압력과 통제는 대중가요의 초창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배권력에 의해 지속적으로 행사되고 있다. 지배 권력에 의한 대중가요의 통제는 민중들이 자신들이 처해있는 환경이나 삶의 조건들을 사실에 입각하여 노래하며 이를 통해 스스로의 감정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을 봉쇄해 버리고 오직 지배권력의 이데올로기에 순응하며 허구적이고 몽환적인 문화를 통하여 민중들을 허구의 길로 유도하고 있다.
한국가요가 종속문화로 변질되고 일본과 동화된지 60년이란 세월을 되돌아 볼 때 일어문화권내에 속해 있는 기성세대들의 일본가요의 음감적인 아이덴티티는 현재에 이르러서도 대단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아직도 도처에서 발견되는데 모 방송국 T.V의 옛 노래를 위주로 하는 프로그램(그 방송국은 전통가요 프로그램이라고 이야기하는데 그러나 1920년대 후반부터 전래된 일본의 엥카조의 대중가요를 굳이 우리의 ‘전통가요’라고 선언하는 것은 오늘의 대중가요의 건전한 발달과 내일의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의 전개를 생각해 볼 때 커다란 오류가 아닐 수 없다. ‘전통’ 이라는 문화적인 의미 자체가 일제에 의한 식민 잔재를 완전하게 청산하지 못하고 가치판단을 흐리게 하는 오늘의 우리들에게 현대적인 의미에서 바람직한 방향으로의 전통을 이어 나가는 데에 전파매체로 인한 문화적, 전통적인 침해는 모두가 경계해야 할 일이다.)은 인기리에 장수하고 있으며 1985년 모 레코드 회사에서는 <쌍쌍파티>라는 카세트 제작으로 10억원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고 한다. 이에 고무되어 잡다한 흘러간 옛 노래들을 통키타와 전자 오르간, 그리고 리듬 악기 만으로의 반주 음악에 실어 뽕짝풍의 단세포적인 구성으로 엮어 만든<선술집 고고파티> <밤무대 디스코파티><밤무대 김선달><신들린 각설이><디스코 쌍쌍파티> 등 많은 저질스러운 아류작들이 쏟아져 나왔다 돈벌이가 된다고 하여 레코드 메이커들이 경쟁하다시피 메들리물을 제작해냈으며 전래민요까지 그 제물로 삼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결국 전국각지에 산재해 있는 관광지와 위락시설이 있는 휴양지에서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선남선녀들이 저질스러운 메들리 리듬을 타고 얼치기 디스코춤에 시간가는 줄 모르는 광란의 현장을 연출하기 까지 하였다.
트로트(Trot)란 외래어는 사교춤(볼륨댄스)의 리듬을 말하는 것이다. 과거 이런 리듬을 위주로 만들어졌던 노래들의 대부분이 일본 음악 중에서 일본의 속요음계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다. 이는 서양음악과의 접목과정에서 새로운 일본적인 정서의 특징으로 표현되는 엥카의 탄생을 뜻하는 것으로 이런 시기에 우리의 옛 가요도 식민지 문화적인 풍토 속에서 싹텄던 것이다. 따라서 현재보다 추억이 담긴 옛 노래가 일어 문화권내의 속성을 담고있지만 불우했던 옛날을 감상적인 미화나 추억만으로 값 싼 센티메탈을 유발시키는 것만으로 자위해서는 안 된다. 수많은 노래 중에서 생활문화에 도움이 되는 우리 정서가 듬뿍 담긴 노래를 발굴, 새롭게 단장 시켜 무대를 꾸미는 지성적인 감각이 절실히 필요하다.
경제적 이윤의 추구와 정치적 지배의 도구라는 초창기 대중가요의 구조적 원리는 해방이후에도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미군정의 지배를 거치면서 본격적으로 유입된 많은 서구사조에 의해 대중가요는 또 한차례의 왜곡 과정을 거치면서 왜색뿐만 아니라 서구색 이라는 또 하나의 기이한 변종을 탄생시켰다.
유행가라는 명칭이 대중가요로 개명된 것은 1945년 이후의 일로서 종래의 유행가의 개념적 인식을 바꾸어 놓기 위한 작업의 하나였다. 당시 활자매체에서 가장 많이 쓰이던 어휘가 ‘대중’ ‘민중’ ‘소시민’ ‘서민대중’ 등의 단어들이었는데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대중 가요라는 낱말은 자연스럽게 수용되었다. 일제의 종속문화적인 성격을 띠고 있던 대중가요가 8&#8228;15해방과 더불어 영어권의 문화로 변신해 간 것이다. 우선 외래 적인 대중음악의 홍수 속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미국의 재즈음악과 미국적인 팝송이었는데 그 영향으로 인해 한국의 대중가요는 외래적인 음악의 리듬패턴으로 다양해지기 시작하였다. 이로써 우리는 외국에서 수입된 다양한 리듬의 변천과정을 통해 한국적 흥겨움보다 외국적 흥겨움에 더욱 익숙해지기 시작하였고 외래음악과 함께 수입된 마약, 섹스 등 세기말적 퇴폐주의가 이 땅 곳곳에 슴들게 되었다.
오늘날 대중음악의 가치관을 좌우하는 힘은 오로지 전파매체에 귀속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전파매체의 예능 오락프로그램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대중가요가 차지하는 비중이 제일 크다는 것을 할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무분별한 외국 강의 표피적인 감상이나 유행이 유혹, 그리고 외국가요나 가수를 그대로 모방한 형태의 음악들이 전파매체를 장악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들이 우리의 청소년들은 물론 우리의 삶에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한번 자성해 볼 필요가 있다. 오디오 산업이 극도로 발달하고 있는 지금 음악산업이라는 레코드문화의 풍요 속에서 경제적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속칭 상업가요의 창작품만이 명멸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더불어 인공위성을 통한 지구촌 가족이라는 새로운 문화적 개념은 주체성을 상실하는 대중문화의 부작용만을 남발하면서 현대적인 감각이라는 위장 속에서 우리 문화의 확립에 역기능적인 역할만을 확대하고 있다. 일제의 종속문화적인 대중음악에서 탈피하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곧바로 또 하나의 외래문화인 양키문화에 의한 종속적이 영역을 확장시키는 일에 이제 제동을 걸어야 할 때이다.
본래 사회발전을 정상적으로 이룬 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구전되는 공동체 민요는 대중매체가 등장하기 이전에 직업적 음유시인에 의해 불리워지는 발라드로 계승되며 이러한 전통의 일부는 인쇄매체와 더불어 근대시로 발전하게 되고 또 다른 일부는 대중매체에 의해 전파되는 대중가요로 이어지는 연속적인 발전과정을 밟게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일제에 의한 식민지적 근대화로 인하여 이 과정을 결정적으로 왜곡시켜 버렸으며 연속되는 미군정과 독재정권의 등장은 왜곡된 발전 경로에서 정상적인 발전 경로로 복귀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민중과 함께 하는 생명력 있는 노래문화로 재창조될 수 있는 기회를 전혀 제공해 주지 못하고 말았다. 따라서 노래문화 뿐만 아니라 새로운 창조적 문화를 창출하기 위한 문화운동의 노력들이 이처럼 단절된 우리의 문화적 전통을 어떻게 극복하며 단절된 문화적 전통에 익숙해져 있는 수용자 층의 의식에 어떻게 자리잡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대중가요는 본질적으로 현실상황에 객관적으로 필요한 내용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인기를 생명으로 하는 하나의 상품으로서 유통되는 과정 속에 존재하기 때문에 현실에 영합하는 것을 추구하게 되고 결국은 현실을 호도하고 만다. 따라서 쉽게 권력에 굴복하게 되고 높은 판매수익을 위해서는 해서는 안될 일마저도 쉽게 해버리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본래 노래라는 것이 그 시대의 상황이나 의식 구조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정치&#8228;경제적 지배원리의 규정을 받게 마련인 대중가요의 경우 대중의식의 단순한 반영이나 영합의 정도를 넘어서 적극적으로 왜곡하고 조작하는 측면을 지니게 마련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대중 문화에 대한 수용자로서의 감시와 자구노력을 바탕으로 지배자의 이념에 충실히 봉사하는 음악적 언어로 표현된 노래가 아닌 민중들이 직접 자신이 삶과 의식을 솔직하게 표현한 노래, 삶의 구석구석을 커버할 수 잇는 생활가요, 또 개인적인 정서에서 공동체적 정서로의 발전, 우리 자신의 상황을 주체적인 노력으로 해결해 나가는 동시에 오염되지 않은 건강하고 인간다운 삶과 문화를 가질 수 있겠는가 하는 각도에서 대중가요를 인식하고 수용해야 할 것이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