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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9 | [문화저널]
장마 도깨비 여울 건너가는 소리
김두경․편집위원 (2004-01-29 15:28:52)
올해는 장마가 유난히 짧고 싱겁게 지나가버려 장마 도깨비 여울 건너가는 소리도 들을 새 없이 여름이 가버렸다. 하지만 인류의 축제인지 힘자랑인지 바르셀로나 올림픽 열기로 온 국민이 밤잠을 설쳤다는 TV의 끊임없는 설득에 나는 어김없이 장마 도깨비 여울 건너가는 소리를 했거니와 금빼찌 달고 싸움질하는 꼬락서니나 갱제로 발음하며 침체되는 우리의 살림상이 소식, 복직된지 며칠만에 또다시 해직시키는 교육 현실을 보고는 장마 도깨비 여울 건너가는 소리로는 어쩔 수 없어 ‘X새끼들’이 입에 붙어 버렸다.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께서 도대체 장마 도깨비 여울 건너가는 소리가 뭔 소린지 자꾸 혀쌌냐고 허는디 바로 그거요 내 귀에는 안들리고 당신들 혼자 ‘도대체 뭔 소리여? ’하고 불만스럽게 중얼중얼하는 것 고것이 바로 장마 도깨비 여울 건너가는 소리여.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허고는 쬐께 다르고 비맞은 중 담 모퉁이 돌아가는 소리 허고는 같은 말이여. 헌 바지 불알 삐지듯 말이 옆으로 삐졌는디 자세한 내막을 알고 싶으면 연락 허시오. 좌우지간 우리의 여갑순이 금메달도 좋고 황영조가 몬주익 경기장에 들어서며 7만 관중이 기립박수를 보내고 50억 인구가 지켜보느니 한민족의 저력이 어쩌느니 하는 들뜬 목소리가 심장을 두드리는데는 어쩔 수 없이 닭이똥 같은 눈물이 심장 위로 떨어지는 것을 우리 국민이라면 누구나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눈물 밑바닥에서 끊임없이 솟구치는 또 하나의 피눈물을 느끼는 것은 나만의 것일까? 분명 아닐 것이다. 경제를 갱제로 발음하는 카멜레온이나 똥색 빼찌달고 싸움질하는 잠 덜 깬 높으신 분들 말고는 모두 피울음을 느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날개와 발목을 묶인 채 철창에 갇힌 친구, 형, 누나, 동생, 아버지, 할아버지까지 있는 이 땅의 국민이라면 인생이고 나발이고 적성이고 뭐고 인류 대학에 합격을 위해서는 과외 선생에 목줄을 끌려 다니며 삶을 느낄 수 있는 책 한 권 연극 한 편 감상할 수 없는 입시생들이 있고 이들의 지친 삶에 한줄기 청량제가 되려던 선생님들이 교문 밖으로 밀려나는 가슴 아픈 우리의 현실과 미래를 볼 수 있는 국민이라면, 최소한 신문을 보며 TV를 보며 장마 도깨비 여울 건너가는 소리를 하게 되는 소시민, 우리는 그 눈물을 느꼈을 것이다. 프랑스, 영국, 스위스, 일본이 우리 보다 힘이 없어서 금메달이 우리보다 뒤지며 우리보다 금메달이 뒤져서 세계 속의 일본이 아니며 세계 속의 스위스가 아니란 말인가? 한국의 청소년 대표가 해외에 나가 좋은 성적을 올리는데 비하여 성인이 되면 힘을 못쓰는 까닭은 무엇인가? 매년 열리는 한일 고교선발야구대회를 보면 알 수 있다. 우리는 무조건 이기려 든다. 당장 이겨야 시원하다. 일본은 그렇지 않다. 최선을 다하지만 그들에 있어서는 그들이 성장하는 과정일 뿐이다. 올림픽에서도 마찬가지다. 최선을 다 하지만 그들이 멋있게 살아가는 과정 중에 한 부분일 뿐이다. 우리처럼 전부가 아니다. 지리산을 알려면 지름길 등산로를 수백 번 오리고 1백 회 기념 잔치를 1천 번을 해도 지리산을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샛길도 가보고 길을 만들며도 가보며 어디에 무슨 꽃과 나무가 있는지 꼼꼼히 메모하고 겪으며 지나 갈 때 지리산은 한 번 올랐어도 지리산을 잘 아는 것이다. 제발 생각하자. 그리고 귀 기울이자.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착한 우리 국민이 하는 장마 도깨비 여울 건너가는 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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