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9 | [특집]
자연에 대해 외경심을 갖자
김현주 ․ 자유기고가
(2004-01-29 15:29:26)
휴가 기간이 끝나면 휴가때 골병든 얘기가 으례껏 화제거리로 등장을 한다.
모처럼만에 얻은 휴가기간에 피서를 가서 “잔뜩 바가지만 뒤집어 쓰고 왔다”거나 “차가 막혀 3시간만에 갈 거리를 7시간내지 10시간은 족히 걸렸다”는 푸념을 늘어 놓으면서 우리는 마치 누가 더 어렵고 힘든 후가를 다녀왔는가를 경쟁이라도 하듯 너스레를 떤다.
고생이란 소생은 바가지로 하고 다시는 생각조차 하기 싫다며 휴가철에 당한 경험담을 늘어 놓을 때보면 다시는 휴가갈 사람이 없을 것 같은데, 다음해 휴가철이 되면 어이없게도 또다시 떠나보겠다고 아우성이다.
아니 그나마 휴가기간에 이런 저런 고생도 못해본 사람은 화제의 대상에서 소외되기 일쑤다.
말로는 그저 “집에서 꼼짝 않고 있는 게 최고의 피서”라고들 하지만 정작 떠나지 않은 사람들을 보면 “남들 다가는 피서도 못 가고 뭐했냐”는 반응들이다.
따라서 우리는 일년에 단 한번밖에 없는 소중한 휴가이기에 떠나기도 하지만 못난 소시민이 되지 않기 위해서도 떠난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의 즐겁고 신나는 휴가를 방해하는가.
휴가하면 약방의 감초처럼 따라 붙는 지옥같은 교통난과 바가지 상혼, 사라져 버린 공중도덕과 쓰레기 문제가 바로 즐겁고 신나는 휴가를 망치는 주범이다.
어디 그 뿐인가. 좋다고 소문난 곳은 어디나 콩나물시루를 방불케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가을 한철 메뚜기처럼 여름만 되면 고생ㅇ르 바가지로 하고 골병이 들대로 드는 휴가를 간다고 너나 할 것 없이 나서게 된다.
휴가는 정확히 말하자면 잠시 일을 하지 않고 쉬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휴가하면 피서나 여행이 먼저 떠오르는 것을 보면 휴가는 분명 우세두세 짐을 싸들고 더위를 피해 산이나 바다로 떠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아무튼 일단 휴가문화는 피서문화, 즉 여름나기를 얼마나 잘할 것인가로 보고 말문을 열겠다.
우리 민족은 극성스러울 만큼 잘 노는 민족이다 아는 사람 셋만 모여도 천연덕스럽게 젓가락짝을 두들겨 가며 노래를 주거니 받거니 하고, 사시사철 절기마다 명절날을 정해 실컷 놀았던 민족이 바로 우리 민족이다.
시절식을 곁들인 명절 사이사이에는 어승날이니 콩볶아 먹는 날이니 해서 그럴듯한 구실을 붙여서 걸판지게 놀았던 우리 민족은 따라서 놀이 에 명수요 귀재가 아닐 수 없다.
놀아도 마구잡이로 논 것이 아니라 은근한 멋과 풍류를 곁들여서 그럴듯하게 놀았다.
휴가문화 운운하다가 뜬금없이 무슨 놀이문화가 튀어나오느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올바른 휴가문화가 정립되려면 먼저 올바른 놀이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컷 힘들이고 돈들여서 놀러가서는 고작한다는게 화투짝이나 돌리고, 마이크를 잡고 남에겐 소음이 되거나 말거나 아랑곳하지 않고 노래를 하는게 고작이다.
아니 이외에도 휴가를 가서 노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이를테면 뙤약볕 아래 오고 가는 사람을 마냥 구경한다거나, 내일이야 어떻게 되든 오늘은 삼수갑산을 가더래도 가자 하는 심정으로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어서 물쓰듯이 쓰는 행태, 젊은 혈기에 치근대며 귀찮고 못살게 구는 모습 등등. 휴가를 간답시고 떠나면 얼마든지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닌가.
남이야 옆에서 괴롭든 말든 내 알바 아니다라는 심정으로 염치고 뭐고 다 내팽개친 채 노는게 요즘 세태다.
물론 남을 먼저 생각하고 주위를 의식해서 조심을 하는 사람도 많지만 체면 차리고 예의 갖추다보면 무시당하는게 또한 휴가 가서 당하는 어이없는 일 중에 하나다.
왜 우리는 우리 선조들에게 본받아야 할 멋과 풍류가 깃든 놀이문화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어렵고 힘든 시대상황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공동체 의식이 흐트러지고 나를 중심으로 한 이기주의가 팽배해진 결과라고 본다.
즉, 물질문명은 극도로 발달을 했지만 정신문명은 발달한 물질문명에 발맞추지 못하고 오히려 황폐화되고 퇴보를 한 결과다.
노는 방법이 유별나야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가까운 골짜기를 찾아 새소리 바람 소리를 들으며 흐르는 물에 발을 씻는 탁족회나 시내나 강가에서 고기를 잡아 매운탕을 끓여 먹는 천렵 또한 휴가문화의 한 형태, 놀이 문화의 한 형태로 받아들이자는 거다.
우리나라 사람이 바닷가를 해수욕장으로 인식한 것은 겨우 85년정도 밖에 안되는데도 여름 한철 해수욕을 못하면 큰일이나 날 것처럼 호들갑을 떨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각설하고, 왜 우리는 한해에 겨우 한 두 번밖에 없는 휴가기간을 이처럼 스스로 생각해도 못마땅하게 허비하고 마는 걸까?
그 가장 큰 원인은 현대사회의 다분히 모순된 휴가기간에서 찾을 수 있다. 즉, 휴가철 하면 그 많은 달을 제껴두고 7~8월을 떠올리고, 여름의 뜨거운 태양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오직 여름 한 철로 집중돼 있는 휴가 기간 때문에 온갖 사회 병리 현상이 증폭되고 있는데도 휴가기간은 좀처럼 시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휴가철만 되면 되풀이되는 지옥같은 교통난을 해소하고, 삐뚤어진 상업심리를 없애고, 쓰레기와 무질서로 엉망이 된 자연을 지키는 방법은 여름 휴가기간을 연중 휴가기간으로 재편하는 방법 뿐이다. 아울러 올바른 휴가문화를 정립하기 위해서는 휴가기간에 불필요한 과시욕을 버려야 한다고 본다.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면 교통체증도 해서하고 여로모로 편리할 것을 부득부득 남의 차까지 빌려 타고 가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어디 그 뿐이랴. 터무니없이 비싸게 부르는 바가지 요금을 눈하나 까딱 않고 줘버리는 사라들. 바가지 상혼을 외면할 줄 모르는 사람들 덕분에 한철 벌어 한해 먹고살겠다는 비뚤어진 사업 심리가 건재하다.
터무니없이 비싼 요금에 항의할 배짱이 없으면 아예 필요한 것은 대충 준비해 가는 알뜰한 피서법을 택해보는 것은 어떨까.
올 여름에도 어김없이 휴가를 떠났던 분이라면 휴가 기간에 고생했던 생각이 떠오를 것이다.
마음과 몸을 좀 편히 쉬어 보겠다고 떠난 것이 오히려 병이 돼서 짜증은 짜증대로 나고 몸은 몸대로 지친 휴가기간.
나만 재수가 없어서 당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재수 없이 보낸 휴가기간에 이제 갈 곳이 없다고 푸념을 하는 분들도 많다.
좀 조용하고 깨끗하다 싶어 점찍어 두면 어떻게나 빨리 소문이 나는지 그 다음해는 발디딜 틈도 없이 북새통이 된다. 이제는 더 이상 찾아갈 곳도 없다고 한숨을 있는대로 들이쉬고 내쉬는 분들은 휴가 보낸 장소를 달리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이를테면 고향 산천을 찾는다거나 모두다 빠져나간 도심의 한적한 계곡이나 산을 찾아 보는 방법도 그 하나겠다.
욕심같아서는 남들에게 얘기해서 “야! 대단한데”하는 탄성이 나올만한 곳에 다녀오는 것도 좋지만 고향집이나 시골의 친척집에 가서 아이들에게 자연교육을 시키고, 가까운 강이나 계곡을 찾아가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절약한 휴가비용으로는 부모님 용돈도 드리고, 과일도 사다가 실컷 먹는 알뜰 피서법.(본인이 해본 결과 만족할 만하다는 결론 아래 귀뜸을 해 드리는 것임)
마지막으로 나는 올바른 휴가 문화를 위해서 가장 중요하고 또 반드시 우리가 지켜야 할 제언을 하나 하겠다.
그것은 자연에 대해 경외심을 갖자는 거다.
우리 조상들은 예부터 산에 갈 때 칠합혜의 짚신에서 엉성한 오합혜의 짚신으로 갈아신을 만큼 한갓 미물의 생명까지도 소중히 했다.
또 산에 들어 갈 때는 반드시 대소면을 받아 가지고 나올 그릇을 들고 들어갔는데, 이것은 행여나 시성한 산을 더럽힐까 하는 조심스런 생각에서였다.
그 뿐인가. 산중에서는 큰 소리로 얘기하는 것도 삼갔고 부정탈 말도 하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감히 산에 오른다고 하지 않고 산에 든다고 표현했을까.
산 분만 아니라 물에다가도 오물을 버리거나 빨래를 하면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금기가 있었다. 이것은 모두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두려움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휴가를 가면 온갖 악취에 시달려야 한다. 피서지에서 온갖 인상을 쓰게 하는 쓰레기는 누가 아니라 바로 우리가 버린 것이다.
어차피 내가 떠서 밥해 먹을 물에 있는 대로 세제를 풀어서 빨래를 하고 샴푸로 머리를 감는다. 위쪽으로 가면 좀 나을까 싶어 물을 길어 오지만 그 물 또한 누군가가 빨래를 한 빨랫물이다. 이렇게 되풀이되는 악순환을 알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으니 일단 편한 대로 빨래도 하고 머리도 감는다. 이런 식의 휴가문화는 하루 빨리 버려야겠다.
어쨌거나 휴가 때 피서지에서 재수 없이 바가지를 쓰고, 길바닥에 시간이란 시간은 다 허비하고 무질서와 쓰레기 때문에 고생했다는 얘기가 쏙 들어가면 그때야말로 올바른 휴가문화가 정립된 셈인데, 그런 날이 오기까지는 많은 시행착오와 인내의 시간이 필요할 줄 안다.
다만 올바른 휴가 문화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다른 누가 아니라 내가 먼저 솔선수범해서 휴가문화를 정립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
우리 모두가 자연에 동화대 자연의 일부로 겸허히 돌아간다면 올바른 휴가 문화를 정립하자는 주장을 하지 않아도 될텐데 하는 욕심을 내보며 이 글을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