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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9 | [저널초점]
신판 알에서 태어난 인물들 신화가 깨지면 비참한 거짓만 남는다
윤억향 ․ 발행인 (2004-01-29 15:32:37)
우리나라 고대 국가의 건국설화에는 알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적지 않게 등장하고 있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고구려의 동명왕을 비롯하여 신라 시조인 박혁거세, 금관가야의 시조인 김수로왕이 알에서 태어났으면 이외에도 신라의 김알지, 석탈해 등이 모두 알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우리네 선조 중에 알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그저 그러련하는 정도로 인식될 수도 있으며 전혀 황당무계한 일로 치부되기도 한다. 알에서 태어난 분들의 후손에게는 죄스러운 말이지만 알에서 사람이 태어날 수는 없다. 그럼 왜 알에서 태어났다는 류의 얘기가 기록되어 있는가? 그것도 한두사람이 아니고 다섯분 이상이나 되니 ‘三人言市有虎’라고 사실일 수도 있지 않은가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이런 저런 얘기가 있으나 결국은 보통 사람과는 다른 비범한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하여 알에서 태어났다던가 단군설화처럼 하늘의 자손이라는 식의 설화가 있게된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즉 알에서 태어난 분이므로 보통사람과는 다른 점이 있는 특별한 사람이며 따라서 보통 사람에 비하여 우월적인 힘을 가진 존재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같은 설화의 주인공이 되는 인물만이 아니고 그 후손도 특별한 사람의 후손이라는 점에서 고대사회나 미발달 집단에서는 일정한 정도의 권위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즉 알에서 태어났다는 것이 본인과 그 후손에게 두고두고 지배를 위한 권위를 부여해주는 것이다. 알에서 태어난 사람과 같은 류의 권위를 고대사회나 미발달된 사회집단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형태를 달리할 뿐이지 오늘날에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까운 예로 북한의 위대한 지도자는 일찍이 어린 나이에 항일운동의 선봉에 섰으면 그의 아버지 할아버지조차 항일, 반외세 운동을 펼친 명문가문의 후예이다. 뿐만이 아니라 그는 ‘가랑잎을 타고 물을 건너는’ 신통한 힘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그의 아들은 태어나자마자부터 각지의 나무에 이름에 새겨지는 이변을 가지고 태어난 것으로 선전되고 있다. 신판 알에서 태어난 인물들이다. 북한만이 아니다. 형태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바로 우리 사회에도 존재하고 있다. 유신치하에서 민주화를 위하여 무지몽매한 민중을 이끌고 투쟁을 한 분들은 민주화 투쟁경력이 알에서 태어난 것과 다름없다. 사사건건 민주화 투쟁의 선봉에 섰던 것이 자랑이요 공적이면 오늘의 이런저런 모습을 모두 감싸고 싸바를 수 있는 무소불위의 힘을 가지고 있다. 민주화투쟁 경력을 코에 내세우면 오늘의 비민주적인 발상이나 행태조차 모두 민주적인 것으로 분장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긴 지도자로서의 권위를 알에서 태어났다고 하여 얻는 것보다는 민주화 경력을 코에 걸어서 얻는 것이 합리적인지도 모른다. 또 있다. 우리 사회를 언필칭 민주화가 완성된 사회로 단정하고 ‘공자가 주문왕을 들먹이듯’ 내세우는 6.29선언이라는 것이 있다. 그들에게 있어 6.29선언이야말로 6공 성립의 알이며 그 알에서 태어난 6공은 민주화를 완성시킨 위대한 치적을 가지고 있다. 그 덕분에 소위 위대한 보통사람과 민주화에 대한 개념이 새롭게 정립되어야 할 판이다. ‘신행주대교’의 붕괴도, ‘창선교의 붕괴’도, 끝간데 모를 정도로 추락하는 ‘증권시장’도 6.29선언의 기본 정신에 의하여 보통사람 모두의 책임이므로 관계장관은 그만두고 그 흔한 피라미 공무원의 인책마저도 없다. 책임의 철저한 공유제도가 정착된 탓인가 보다(?). 전교조 문제로 학교를 떠난 사람들의 문제도, 5공보다 늘어났다는 정치범의 존재도 6.29정신에 따라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도자들이 노상 강조하는 것처럼 우리 사회는 6.29선언과 그 실천으로 민주화가 완성된 사회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 사회에서는 선생이 자리를 그만두는-자의냐 타의냐는 따질 것 없이-자유가 확실하게 보장되어 있으면 정치범이라고 하든 양심범이라고 하든 파렴치범이라고 하든간에 위대한 보통 사람 정부의 자유권에 속하니까 말이다. 동전을 삼킨 어린아이 때문에 그 어머니가 어쩔줄을 모르자 배를 쓸어내리면 된다는 답을 했던 옛적 우리 조상처럼 모든 것이 배를 한번 쓸어내리면 끝이다. ‘정보사 땅사기 사건’도 단순한 사기사건으로 도대체 중학생 정도면 뻔히 알 수 있는 사기수법에 이나라 보험회사가 말려든 단순사기극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에서 중학생과 보험회사 부동산 전문가의 평준화를 볼 수 있다. 그들의 사기에 대한 감별능력은 위대한 보통사람의 시대라서 평준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무소신 무정견으로 일관하던 6공은 드디어 임기말에 비장의 소신과 정견을 가지고 국가 백년을 내다보고 ‘조자룡 헌 창쓰듯’ 바쁘게도 나댄다. 그 여러 가지중 ‘이동통신’을 누가 맡을 것인지를 모르는 성인 남자는 극히 일부 관계자르 제외하고는 없을 것이다. 절간에 가서 절밥 공양을 받지 못하는 주변머리 없는 보통 사람까지도 그 사업의 주체가 결국 어떻게 되고 관계당국의 답변이 어떤 것인지를 이미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답변의 끝에 ‘...사돈이라서 선정된 것은 절대로 아니며 오히려 그 점 때문에 결정에 어려움이 있었다’는 친절한 주석이 붙을 것이라는 것까지 알고 있다. 그야말로 정부의 현명한 결정과 보통 사람들의 짐작이 공통되는 확실한 예가 아닐 수 없다. 다만 관계당국자는 배를 쓸어내릴 것이고 냉수조차 얻어먹지 못한 일반 보통 사람은 한숨으로 땅이 꺼질까봐 고개를 쳐들어 하늘을 보는 점만 다를 뿐이다. 갑자기 불붙듯 일어난 소신이 6공 초기부터 있었더라면 이나라는 거덜이 나거나 무역 흑자가 넘쳐나서 큰 문제가 되었을 것이다. 그 점까지를 감안하고 뒤늦게 발동이 걸린 소신에 감사하는 한숨이며 안도의 한숨인 것이다. 정치라는 것이 문화와 완전히 별개의 것이었으면 정말 좋겠다. 이따위 고통스러운 글을 늘어놓지 않는 때가 된다면 정말 좋겠다. 쫑알거리는 것조차 여간 짜증스럽고 역겨운 것이 아니다. 그런데 참으로 ‘돌로 입을 헹구고 시냇물을 베고 잔다’는 식의 억지로 일관한 지도층이 이제는 막무가내로 5공의 어떤 인물을 이사장에 임명하고 그 잘하는 견강부회조차 생략하는 판이라서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언제까지 6.29라는 알을 팔아서 연명할 것인가? 이승만 대통령은 항일독립투사라는 알이 없어서 하와이로 망명을 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승만의 알은 6.29보다 클 수도 있다. 그리고 알은 언젠가는 깨지기 마련이고 신화가 깨지면 비참한 거짓만 남는다. 신화는 신화로 남고 현실은 현실로서 평가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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