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9 | [교사일기]
교사들은 일어나고 있다.
송동한
․
교육대개혁과 해직교사 원상복직을 위한 전북교사 추진위원장
(2004-01-29 15:33:31)
‘교육이 올바르게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라는 말이 있다. 바꾸어 말하면 ‘교육이 바로 서지 못하면 나라가 망한다’ 라는 뜻이 된다.
오늘날 교육현실이 파행을 넘어 벼랑 끝에 내몰려 있음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실로 교육입국(敎育立國)이 아니라 교육망국(敎育亡國)이라는 우려가 절로 터져 나온다.
1945년, 해방은 우리 겨레에게 있어서 감격의 폭발음이었다. 방방곡곡을 누비는 태극기의 펄럭임 속에는 미래에 대한 벅찬 기대가 충일 되어 있었다. 교육계도 절대 예외는 아니어서 그간 황민화(皇民化)교육으로 짓눌린 민족의 영령들이 노도가 되어 민족교육을 외쳤다. 이것은 역사의 흐름이며 민족의 욕구였던 것이다.
그러나 해방군이 아닌 점령군으로서의 미군 진주, 반민특위 해체, 이승만 정권의 반민족적 속성, 친일파의 재득세 등으로 인해 교육계는 또 다시 반민주와 반민족의 수렁을 빠져들었다. ‘친일파만이 친미파가 될 수 있다’ 라는 미군정의 판단은, 오히려 단죄되어야할 친일매국교육관료들을 재등용시켜 죄다 요직에 앉혔다. 그리고 일제시대의 교육관계법들이 정통성을 인정받아 버젓이 교육을 지배했고, 그 법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단 사실이 기막히지 않은가! 물론 친일파 인맥도 고스란히 현재까지 떵떵거리며 이어져 왔다.
또한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도 교육에 대한 관점은 대동소이하다. 교육을 정권유지, 계승 차원의 이용가치 이상으로 바라본 적이 없다는 사실은 놀라움을 넘어 두려울 뿐이다. 숱한 교육통제 속에서 분단 고착화 교육정책은 끝간 데 없이 강화되어 왔고, 우리 겨레의 절대절명의 요구인 ‘자주, 민주, 통일’ 교육은 실종되어 버렸던 것이다. 또한 미국의 신식민주의 정책으로 신식민문화는 무분별하게 유입되어 왔다. 이런 교육현실 속에서 ‘깨어남을 가르치는 교사’는 징계의 칼에 의해 거리로 쫓겨 나갔다. 때론 감방에 쳐 넣어졌다.
현행 교육제도의 모순의 정점은 ‘과열경쟁입시제도’에 있다. 유치원 교육에서부터 줄달음질쳐 가는 고지가 발 대학입시이다. 어린 중학생들을 보라. 아침 자율학습, 보충수업, 정규수업, 오후 보충수업, 자율학습, 심야자율학습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들이 숨막히게 짜여져 있다. 경쟁교육에서 살아남기 위한 투사양성 교육인 것이다. 홍익인간, 전인교육, 인간화교육 등은 학교에서 발붙일 틈이 없다. 성적이 유일선(唯一善)이고 삶의 목표가 되어 버린지 오래다. 좋은 성적은 명문대학으로 이어지고, 그것은 사회적 신분상승의 증명서가 되며, 또 그것은 사회적 풍요와 권리가 송두리째 안겨진다는 연쇄법이 보편화된 시대의 반영임에 틀림없다. 기본적인 가치질서가 무너지고 집단 무감각증에 빠져있는 현실 속에서 자생된 개인이기주의나 가족이기주의의 절정이라 하겠다. 그러나 전문대학이라도 선택될 수 있는 자는 25%에 불과하고 나머지 75%에 달하는 대다수의 학생은 학교생활에서부터 철저히 소외당해 왔고, 대학 문턱 앞에서 절망의 구멍이 가슴에 뚫리운 채 사회바닥으로 미끄러질 수밖에 없다는 제도상의 문제점이 여전히 남아있다. 이런 제도의 고집은 학생들로 하여금 ‘자주, 미주, 통일’에 대한 깨어남의 기회를 철저히 봉쇄하는 효과도 엄청나렷다! 입시제도 뿐만 아니라, 교육과정결정에 있어서도 교육주체들은 참여할 장치가 전혀 없다. 또한 민주교육의 꽃인 교육자치는 요원하기만 하고, 교원양성 과정에서부터 임용이후까지 철저한 통제 속에서 자주적인 교사는 아예 배제해 버림으로써 교육부의 의도에 충실할 수 있는 교사체계를 구축하여 오고 있다. 아무튼 이러한 모든 제도와 장치는 정권유지 차원과 맥을 같이 하고 있으며, 국민의 요구인 참교육실현과는 정 반대의 현실인 것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출현은 교육에 있어서 역사적 전환점에 해당된다 하겠다. 일제시대부터 오늘날까지의 교육이 반민주, 반민족, 분단고착화, 독재정권의 합리화를 가속해 주는 교육이라 할 때, 전교조의 깃발은 ‘민족, 민주, 인간화’라는 일대 개혁적인 엄청난 요구를 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교육의 흐름을 180도 바꾸고 진정 우리 겨레를 살리자는 역사적 소명까지 담고 있을진대, 정권과의 부딪힘은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끔찍한 정권의 탄압으로 1,527명의 전교조 교사가 해직되어 거리로 쫓겨났지만, 조직이 와해되기는커녕, 오히려 확대, 강화되고 있는 사실은 무엇을 시사하겠는가? 1만 5천명의 조합원과 5만에 가까운 후원교사들이 전교조의 깃발을 굳게 지키고 있다는 것은, 해방이후 한 번도 참교육을 펼칠 수 없었던 굴절된 교육현실에 굳센 결단이요, 항변임이 확실하다. 또한 아이들에 대한 참된 사랑, 역사 앞에서 교사로서의 부끄럼이 없는 삶, 어떠한 탄압도 이겨내겠다는 억센 의지의 총화임에 틀림없다.
‘교육대개혁과 해직교사 원상복직을 위한 전국교사추진위원회(전추위)’가 6월 21일 서울 「성문밖교회」에서 결성되자, ‘조완규’ 교육부 장관은 담화문을 발표하고, 전원 징계하겠다고 공표했다. 그리고 전국추진위원장 및 부추진위원장을 전격 해직시키고, 시도추진위원장 12명을 징계위에 회부하여 현재 2,3차 징계위에 올려놓았다. 아울러 서명에 참여한 교사들에 대한 포기각서 요구 등 끊임없는 탄압을 전국적으로 해댔다. 청원법에 의거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실시된 서명운동을 오히려 불법이라고 매도하면서 탄압하는 교육관료들의 논리에 찬동하는 교사는 전국적으로 거의 없는 실정인 바, 교육관료들의 그러한 모습은 차라리 연민의 정마저도 느끼게 만든다. 정권의 들러리나 나팔수로 전락한 교육관료들의 슬픈 모습 속에서 그들마저도 독재정권의 희생양임을 절감해 본다. 우리 교사들은 더 이상 거짓교육, 죽은 교육에 견디지 못한다. 해방이후 독재정권은 우리 교사들을 박제인간으로 만들어 놨지만, 그것은 오히려 교사들에게 산 체험으로 되살아났고, 양심과 진실에 기반한 민족의 교사로 일어서게 만들었다.
교사들은 이제 일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