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9 | [특집]
삶에 리듬을 부여하는 제사와 놀이
박현국 ․ 우석대 강사, 민속학
(2004-01-29 15:35:23)
현재 우리나라에서 지켜지고 있는 명절 가운데 가장 비중 있는 명절이라고 한다면 ‘한가위’ 즉 ‘추석’을 꼽을 수 있다(그밖에 음력 팔월 보름을 지칭하는 말이 여럿이 있으나 여기서는 ‘한가위’로 사용함.). ‘한가위’는 조상의 성묘를 주로 하는 날이라는 점에서 새해의 설계와 마을이나 집안의 어른을 찾아 인사하는 ‘설날’과 구분된다. 설날이 신년의례의 기점으로서 그날부터 정월 보름까지 많은 놀이나 행사가 치러지지만 ‘한가위’의 중요성은 결코 그것에 뒤지지 않는다. 우리 민족은 ‘한가위’에 조상의 묘에 성묘하는 것을 가장 중요시하고 그밖에 지역에 따라 다양한 민속놀이를 행한다. 그러한 것으로는 올베심리와 풋바심, 소먹이 놀이, 거북놀이, 줄다리기, 사자놀이, 지신밟기, 강강수월래 등을 들을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놀이에 대한 개별적인 논의보다는 이런 모든 행사를 포함한 ‘한가위’의 일반적인 원리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한가위’에 대한 기록으로 『삼국사기』(권 1 羅記儒理王)에 나오는 가배(嘉俳)의 적마희(積麻戱)를 살펴 볼 수 있다(왕이 육부를 정한 다음 한가운데를 갈라 둘로 나누고서 왕녀 두 사람으로 하여금 각기 부내의 여자를 거느리고 끼리끼리 편을 지어 가을 칠월 십육일부터 날마다 일찌감치 대부의 뜰에 모여 길쌈을 하고 한밤중에 파하되 팔월 십오일이 되면 그 성적의 다소를 평가하여 진 편이 주식을 장만하여 이긴 편에게 사례하도록 하였다. 그것을 ‘가배’라 일렀다. 그 때 진 편에서 한 여자가 나와 춤추고 탄식하여 회소회소라고 하는데 그 소리가 애절하고 청아하였다). 그러나 실제적인 기원은 오히려 『삼국지』위지 동이전에 나오는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이나 예의 무천, 삼한의 가무의식 등의 고대 제천의식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제천의식은 주로 오월이나 시월에 행해지는데 오월의 경우는 파종제의의 형식을 지니고 시월의 제의는 추수감사제 형식의 잔치이다. 비록 시월이라고 표현되기는 했지만 추수감사의 잔치라는 측면에서 팔월의 한가위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겨진다. 한가위가 한해의 농작물의 풍요에 대한 감사의 잔치로서 풍요에 대한 은공을 조상에게 돌린다. 즉 수확의 주제신을 조상으로 정하고 섬기는 날이 ‘한가위’이다. 앞에서 언급한 우리의 고대 제천의식 역시 기록에 의하면 파종이나 수확과 관련된 좋은 날을 정하여 하늘에 제사하고 춤추면 노는 잔치이다. 이 잔치는 같은 제천의식의 잔치나 오늘날 귀성길로 이어지는 ‘한가위’의 성묘와 놀이 등과 하나로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먼저 좋은 날이라고 함은 추수한 곡식을 걷우어 드린 풍요로운 날이다. 이 날으 s한해의 수고로움과 자연재해를 극복하고 얻은 결과를 반성하고 그것을 얻게 한 하늘의 신에게 감사하는 날이다. 그리고 하늘은 비와 바람과 이슬 등 자연현상과 우주순행을 주관하는 신이 하늘에 있어 우리 인간에게 도움을 주어 농사의 풍요를 내렸다고 믿는 그 신이다. 이 하늘의 신은 단순한 하늘만이 아니라 우리 조상신의 거처이기도 하다. 우리는 보통 사람이 죽으면 몸은 땅으로 가서 흙되고 영혼은 하늘로 간다는 관념이 있다. 그래서 상례시 영혼을 부르는 초혼(皐復이라고도함)을 행할 때에는 죽은 사람이 살았던 집의 지붕에 올라 죽은 영혼을 부른다. 이것은 하늘을 신성시하는 우리 민족의 대륙성 기질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고대의 제천의식에서 하늘에 제사했다고 하면 하늘의 상징성과 관련하여 하늘을 조상신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지금은 그러한 것이 조상의 주검이 모셔진 구체적인 장소로서 산소에서 제사가 행해진다.
그리고 제사는 의례로서 인간이 정성을 다하여 제물을 장만하여 대상신인 하늘에 올려 드리는 거룩한 의식이다. 이 의식은 아무나 행할 수 없다. 고대 제정일치 사회에서는 임금 곧 제사장이 주관했지만 후기로 내려오면서 일정기간 금기를 행하는 제관이 하고 집안에서는 한 집안의 가장 우두머리인 연장자가 몸가짐을 정결히 하여 행하고 있다. 이 제사에는 그 해 생산된 새로운 곡식으로 제물이 마련된다. 이 새 곡식에는 하늘의 신령한 힘이 들어 있기에 존귀하고 값지다. 그래서 앞에서 열거한 ‘올베심리’라고 하는 풍습은 새 곡식을 잘 보관하여 다음 해의 종자로 보관하기도 한다. 그리고 정성껏 마련한 제물을 신에게 올려 드려 신이 흠향한 뒤 이 제물은 제사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음복한다. 이 음복은 신의 가호와 복이 내린 음식으로, 인간이 이것을 먹어서 몸으로 신의 힘을 옷입는 행위이다. 음복을 한 다음 인간은 제사 음식 특히 제상의 술을 마시고 그 술에 취하여 한껏 뛰놀며 노래 부르는 잔치를 치른다. 이 잔치를 통하여 전반적인 제사의 의례를 강화시키고 구체화시킨다. 이렇게 뛰어 놀며 행하는 잔치가 바로 오늘날 단편적으로 행해지는 ‘놀이’ 이다. 그래서 원래 놀이는 놀이만이 단순하게 전해진 것이 아니라 제사의 일부였던 것이 제사의 신성성의 소멸과 함께 외떨어져 전해진 것이 아니라 제사의 일부였던 것이 제사의 일부로 행해지는 이잔치는 두 편이 나누어서 치려지는 경쟁성을 주축으로 한다. 이 두편은 남녀가 각각 나워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줄다리기나 여타 놀이에서도 그렇지만 여자가 이겨야 좋다고 한다. 이것은 여성이 지닌 생생력을 강화시키기 위하여, 경쟁을 통하여 극대화시키고자 하는 예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행해지는 잔치는 단순히 신의 가호에 대한 감사와 풍요의 기원에만 그치지 않는다. 이러한 잔치를 절기나 해에 따라 주기적으로 반복함으로써 태초의 원초성을 확보하고자 한다. 이 태초의 원초성은 만물을 처음 소생시킨 최고의 인자이기에 제의를 통하여 그 원초성을 회복하여 일상적인 생활에 활력과 리듬을 부여한다. 즉 잔치는 일상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비일상적이다. 태초의 원초성을 회복하고자하는 것은 우주가 처음 만들어지던 상황을 재연하는 것이다. 태초의 상황은 카오스(CHAOS)의 상황이다. 바로 잔치는 술에 취해 남녀가 한마당 춤판을 이뤄내는 카오스의 상황이다. 이 카오스의 상황은 태초의 춴초성의 상황이기에 인간의 부정이 개입하지 않은 거룩한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적인 코스모스(COSMOS)의 세계에 리듬을 부여할 수 있고 활기를 채울 수 있다.
이처럼 ‘한가위’에 행하는 중요한 미풍양속으로서 조상의 묘에서 성묘하는 풍습과 나머지 놀이는 모두가 원래 하나의 큰 잔치로서 제의였던 것인데 후기로 내려오면서 놀이는 놀이대로 제사는 제의대로 분리되었다고 본다. 그런데 이 제사와 놀이는 피상적인 행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삶에 리듬을 부여하고 삶을 더욱 풍부하고 윤택하게 하면서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