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9 | [특집]
“팔월이야 대보름날 일년중에 으뜸일세”
심인택 ․ 우석대 국악과 교수
(2004-01-29 15:35:55)
팔월한가위를 맞이하여 우리의 조상들이 무슨 노래를 부르며 살아왔는지 살펴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오래된 기록으로 중국 문헌 <삼국지>와 <후한서>의 동이전 편에 부여, 예, 고구려는 일년 중 일정한 시기에 노래와 춤으로써 하늘을 섬기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부여는 은정월에 고구려와 예는 10월에 각각 제천의식을 가졌는데 그 이름을 부여는 영고, 고구려는 동맹, 예는 무천이라고 하였으며, 마한은 5월에 씨뿌리기를 끝냈을 때와 10월에 추수가 끝났을 때 많은 사람들이 무리져 노래부르고 춤추고 술 마시기를 밤낮을 쉬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신라 자비왕 때 낭산 기슭에 가난하게 살던 백결 선생이 명절을 맞아 부인을 위로하고자 금으로써 방아 찧는 소리를 냈다고 하는데, 이 소리는 세상에 대악이라고 전해진다.(삼국사기)
신라 유리왕 때 도읍 안의 부녀자를 두 패로 나누어 왕녀가 각기 거느리고 7월 15일부터 8월 한가위날까지 한달 동안 두레 심 삼기를 하였다. 마지막날에 심사를 하여서 진 편이 이긴 편에게 한턱을 내고 <회소곡>을 부르며 놀았다고 한다.(삼국사기)
통일신라 때 거문고의 명인 옥보고가 지은 30곡의 곡명이 전하는데 그 중에 <추석곡>이 있으나 가사와 악보는 전하지 않는다.(삼국사기)
삼국시대 이전부터 이러한 풍습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는 팔월 한가위와 관계된 노래의 가사와 악보는 거의 없는 듯 하다.
일년 중 명절을 가장 중요한 절기로 알고 있는 우리가 세시풍속에 걸맞는 노래를 기억하지도 못하고 부르지도 못하고 기록을 남기지도 못하였다면 우리의 명절이 우리 생활 속에서 그렇게 즐거운 일만은 아닌 듯하다. 하기는 오늘날 귀성 행렬을 보면 즐거움보다는 짜증나는 일이 더 많고 그런 속에서 저절로 노래가 만들어지고 불려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예전에는 대개의 경우 씨족 중심의 마을과 공동체 중심의 농경사회로 이루어져 있어서 그들 나름대로 두레나 풍물 등을 통하여 놀이를 중심으로 하는 노래가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노래들이 우리의 기억에 남아 있도록 하는 작업들은 우리 문화의 보존을 위하여 중요한 일이라 하겠다.
다음은 한가위를 중심으로 불려지는 노래의 가사를 적어보았다.
<달노래>
달아달아 밝은달아/ 이태백이 놀던달아/ 저기저기 우리오빠 장가갈적/ 강강수월래/ 가마휘장 두를라네/ 강강수월래.
(무안 기라면 읍동리 김장기씨 노래, 김소운저 조선구전민요집)
강강수월래는 한국음악의 형식 중 메기고 받는 형식을 갖고 있다. 메기고 받는 형식은 노동요에 거의 사용되고 있으며, 놀이에서도 이 형식에 의한 노래가 많이 있다.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초가을의 보름날 밤 달을 바라보며 손에 손잡고 돌아가던 흥겨운 춤과 더불어 여인들의 꿈과 낭만이 흐르는 노래가 <강강수월래>이다.
판소리 심청가 중에서 심봉사가 황성으로 올라가는 대복에 재미있는 방아타령이 나온다. 이 방아타령도 메기고 받는 형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노동요의 하나로 볼 수 있고, 토속적인 민요가 소리꾼에 의하여 세련된 노래로 만들어졌다. 중중모리 장단의 흥겨운 멋을 너끼게 한다.
(어유화 방아요 어유화 방아요 덜크덩 떵떵 찧어를 보자 어유화 방아요)
추석 명절은 풍년이 들어야 좋다. 풍년이 들어야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먹을 걱정, 입을 걱정, 자녀를 가르치는 걱정, 여의살의 시키는 걱정이 사라지게 된다. 이것이 농경사회의낙이고 복이다. 풍년을 고대하는 심정은 모든 의식에서 나탄나게 된다. 농경사회의 제천의식은 바로 풍년을 기원하는 행사이다. 산업사회로 인하여 이러한 의식이 점차 없어지고 있지만 땅에 대한 외경심을 고취하기 위하여 봄가을에 풍년에 대한 의식행사가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오래된 노래는 아니지만 <풍년가>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고 부르고 있다.
1. 풍년이 왔네/ 풍년이 왔네/ 금수강산에/ 풍년이 왔네/<후렴> 지화자 좋다/얼씨구나 좋다/ 명년 춘삼월에/ 화류놀이를 가세.
2. 봄이 왔네 ---------- 화전놀이를 가세.
3. 올해도 풍년 ---------- 관등놀이를 가세.
4. 천하지대본은 ---------- 탁족놀이를 가세.
5. 저건너 김풍헌 ---------- 단풍놀이를 가세.
6. 함녕전 넓은 뜰 ---------- 설경놀이를 가세.
풍년가 보다는 농부가가 오래된 노래이다. 농부가의 가사를 보면 풍년가의 가사와 같은 것이 나온다. 즉 농부가나 풍년가는 같은 음악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팔월한가위를 맞이하며 한가위를 노래한 민요를 찾아보고자 했으나 특별한 민요는 문헌으로 남겨져 있지 않고 다만 어느 노래든 노래 속에 명절과 절기의 풍속을 짜임새 있게 잘 그려놓고 있다.
오늘날의 풍속을 그린 명절에 대한 노래를 다시 정리해야 할 것이다.
저달속에/ 계수나무 박혔으니/ 금도끼로 찍어내어/ 은도끼로 다듬어서/ 초가삼간 집을짓고/ 양친부모 모셔다가/ 천년만년 살고지고.
이 노래는 전국적으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선율로 구성된 노래이다. 할머니의 등에 업혀서, 무릎에서 할머니의 숨소리와 함께 들은 노래이다. 또 밖에서 언니 누나들이 보름달을 쳐다보며 밤이 이슥해지도록 부른 노래이다. <새야 새야>와 같은 선율로 우리 겨레의 숨결이 스며있는 노래이다.
<달노래>
달아달아 초생달아/ 어디갔다 이제왔노/ 새각시의 눈썹같고/ 읅은이의 허구같고/ 달아달아 초생달아/ 어서어서 자라나서/ 거울같은 네얼굴로/ 우리동무 한테가서/ 나와같이 비춰주고/ 울아버지 자는창에/ 나와같이 비춰주고/ 울오랍씨 자는창에/ 낮과같이 비춰주고/ 우리형님 자는창에/ 낮과같이 비춰주고/ 우리동생 있는곳에/ 내간 듯이 비춰주고/ 거울같은 네얼굴로/ 온세계를 비추어라.(한국의 민요 ; 고성지방, 임동권)
<달맞이>
가세가세 달맞이 가세/ 높은 산으로 달맞이 가세/ 가세가세가세 달맞이 가세/ 일보이보 다리르 밟아 천리만리 걸어/ 정월이라 대보름날/ 일년중에 으뜸일세. (신민요)
호남지방 일대, 특히 남도 해안부근에서 많이 불리우고 있는 노래로 강강수월래가 있다. 이 노래는 정월 보름 팔월 추석 달밤을 가려 부녀자만이 모여 둥그렇게 손을 잡고 춤추면서 부르는 노래이다. 이 강강수월래는 목포, 무안, 영광 같은 해안지방에서 주로 불리워졌고, 오늘날은 빠른 자진 강강수월래와 함께 널리 알려진 노래이다.
<강강수월래>
산아산아 추영산아/ 강강수월래/ 놀기좋다 유달산아/ 강강수월래/ 입이 피면 청산이요/ 강강수월래/ 꽃이 피면 화산이요/ 강강수월래/ 청산화산 넘어가면/ 강강수월래/우리부모 보련마는/ 강강수월래/ 남의부모 명짜씨는/ 강강수월래/ 책장마다 실렸건만/ 강강수월래/ 우리부모 명짜씨는/ 강강수월래/ 어느책에 실렸는고/ 강강수월래.
(목포 부양동 김대창씨 노래, 김소운저 조선구전민요집)
<강강수월래>
해는지고 달떠온다/ 강강수월래/ 하늘에다 배틀놓고/ 강강수월래/ 구름잡아 잉어걸고/ 강강수월래/ 별을잡아 문에놓고/ 강강수월래/ 짜강짜강 잘도찬다/ 강강수월래/ 그베짜서 무엇하나/ 강강수월래/
그밖에 대중가요에 나타나는 달을 중심으로 한 노래가 몇 곡 있으나 추석 명절과는 거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