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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9 | [특집]
우리의 명절은 회귀와의 만남이다
김유석 ․ 시인 (2004-01-29 15:36:45)
꼬옥 다문 씨옥수수 이빨들이 되새김질 끝낸 세월처럼 매달린 수월댁 처마 밑에 서둘러 제비들의 체온이 식는다. 뒤안 장독대 옆에 세워둔 대추나무는 여름 내내 다린 장빛깔로 익어가며 손 타는 개구쟁이들 장대질을 넉넉하게 받아내고 있다. 옷을 때면 잠시 펴지는 콧등 매운 홀어미 주름살을 감춘 채 높이 올려다볼수록 빨리 익는 건 아무래도 약이 오르지만 시떠름한 풋대추 맛에 이내 이가 물린 아이들은 이웃 서당 집 늙은 단감나무를 생각해내곤 담을 타고 조심조심 옮겨붙는다. 고놈들 참, 빠알간 고추와 등쳐진 들콩들이 덕스럽게 널린 마당 귀에서 털갈이하는 황구는 게으른 눈만 껌벅거릴 뿐 도무지 혼내줄 기색이 없고, 말동무 삼아 멕이는 늙은 개 한 마리로 집을 죄다 비워놓고 들밭 나간 홀어미 흰 고무신 콧박만이 마루 끝에 나란히 걸려 쌀알 같은 나절가웃 햇살을 한사코 벗겨내려 하질 않는다. 무엇을 마중 나가려고 저렇듯 맑게 닦아놓았을까. 그 고무신 한 짝 몰래 벗겨 수수모가지 위에 걸어두면 귀밝은 벌레들이 밤마다 울음으로 채워서 팔월이라 한가윗날 지붕 위에 올려놓는 하얀 박덩이 하나, 예나 지나 변함 없이 깊어 가는 우리네 가을서정. 마음 밭은 세상 드난살이 가운데 가장 향수에 사무치는 계절은 사계 중 아마도 가을이리라. 간했던 기억 속에도 일말의 풍요로움이 깃들어 있고 마주치는 것들마다 따뜻한 모성애 같은 게 느껴지는 계절, 거기 동화같은 마음의 고향이 있고 빈 몸으로 돌아가도 항시 넉넉한 명절, 추석이 있어 더욱 그렇다. 이맘때면 들판엔 누릇누릇 나락이 익어가고 밭곡식들도 알차게 여물어 겨운 농촌의 시름도 잠시 잊혀진다. 게다가 오랜만에 명절을 날받아 찾아드는 자식들을 맞는 반가움이 덤처럼 얹혀 마을 굴뚝들은 대낮부터 온기를 피워문다. 남정네들은 접을 짜 돼지를 잡고 댁네들은 집을 돌아가며 전을 부치고 송편을 빚고, 뉘집 헛간에선 오례쌀을 찧는 절구방아소리가 한가럽게 흘러나온다. 오례쌀이란 시쳇말로 일종의 재래식 현미를 말함인데 이 오례쌀을 하는 일로부터 명절 분위기에 젖어든다. 우선 잘 익은 논귀의 나락 몇 단을 베어 홀태로 훑는다. 그것을 가마솥에 쪄 그늘에 말린 다음 절구통에 넣고 메로 찧어 키질을 하면 생으로 씹어도 구수한 맛을 내는 오례쌀이 되는데 찹쌀에 이것을 섞어 빚은 송편이라야 제맛이 나고 추석날 아침 차례상엔 이것으로 지은 젯밥을 올리는 것이 전례였다. 그러나 저간엔 오례쌀을 하는 집은 통 드물고 대신 추석 이전에 수확하는 조생종 벼를 재배하여 방앗간에서 도정한 햅쌀로 음식을 장만하는 경우가 기껏이며 심지어는 송편을 읍내 떡집에 맡기는 일까지 생겨났다. 세월에는 밀리는 것은 비단 집안에서 만드는 음식물뿐 아니라 과실, 제주(祭酒) 등도 그러하다. 삼색 과실이 무색하게 바나나 자몽 같은 것들이 암상궂게 차례상에 오르는가 하면 수입 소고기 국물로 물기를 하기도 한다. 예전엔 밀주라 하여 단속을 했지만 근래엔 민속주로 품상되어 되려 장려하는(실은 남아도는 쌀을 소비하려는 의도에서 기인되었음) 가용주도 직접 누룩을 띄우는 집은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고 알싸한 막걸리는커녕 그저 시중에 나도는 것들로 시늉이나 하는 형색이다. 수상하기로는 사람 사는 세상이나 살아가는 사람이나 다 마찬가지이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명절은 회귀와의 만남이다. 오래 전에 죽은 조상님네들과 산 후손들이 만나고 대처로 떠난 자식과 부모가 만나고 제각기 삶을 찾아 뿔뿔히 흩어진 친구들이 만난다. 고생 끝에 출세한 사람이건 아직도 인생유전을 거듭하는 뜨네기건 허물없이 고향으로 돌아와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가출하여 소식 없던 막내가 돌아오기도 하는 명절은 서로간에 무심히 흘렸던 세월에 대한 용서와 화해가 고향의 따스한 품안에서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날인 것이다. 아직도 설레이는 내 유년의 기억 속에서 그러한 모습들이 찍혀 나온다. 일찌감치 성묘를 마치고 온 사람들은 마을 뒤켠 모종이나 주막집 뒷울 안에서 윷판을 벌리고 술잔을 돌리며 밀린 회포를 풀었다. 도가 나와도 모가 나와도 손때 묻혀 던지는 윷가락엔 흥겨움이 넘쳤고 거나해지면 징과 꽹과리를 치며 가락에다 익살스런 춤을 곁들였다. 밤으론 환하게 달을 켜놓고 농사일을 점쳐보거나 사랑방에 둘러앉아 쌈지담배를 달빛에 말아태우며 묵치기 화투장을 두드렸다. 그리고 좀 배 젊은 또래들은 뒷산에 올라 달을 향해 목소리를 합하기도 하였고 아녀자들은 아녀자들대로 강강수월래에 날밤이 새는 줄 몰랐었다. 그렇게 고향을 정점으로 한 공동체의식 속에 명절을 쇠고 다시 헤어짐의 시간을 맞으면 떠나는 자는 남아서 고향을 지키는 사람들의 아픔을 마음으로나마 뜯어갔고 남는 자는 떠나는 사람들의 뒷모습에 흙에서 나오는 것들을 얹혀주며 다음의 만남을 기약했던 것이다.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그런 허물없는 모습들은 점점 바래져서 이제는 도통 눈에 밟히지 않게 되었다. 간이역마다 설레이던 삼등객차에 빼곡이 실려 고향을 찾아오던 얼굴들은 이제는 열차가 서지 않는 어느 폐역에 무심히 흔들고 가는 기적소리에나 매달리고 발자국 한 묻지 않는 시멘트로 포장된 고샅길 위엔 뻔질나게 승용차가 들어선다. 아직도 자가용의 유무를 곧잘 출세의 척도로 여기는 우리사회에선 웬만한 살림이면 차부터 구입해서 고양나들이 때엔 한껏 어깨에 힘을 불어넣곤 하는데 이러한 경제적 여유와 교통수단의 발달은 공동체의식에서 개인주의로 우리의 정서를 메마르게 하는데 간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하여 가히 민족의 대이동이 이루어지는 명절 때면 열악한 우리의 교통환경은 특히 심한 마비증세를 앓는데, 끔찍한 사고와 짜증스런 교통체증 속에서 장시간 곤욕을 치르고 온 사람들은 고향을 찾은 설레임을 쉽사리 챙겨들지 않는다. 때론 밤늦게 도착하지 않아 늙은 부모를 동구밖에 세워두는가 하면 차례 전에 간신히 도착하는 사람도 있고 아예 도시의 아파트로 부모를 불러들여 명절을 쇠는 몇몇 약삭빠른 족속들도 생겨나게 되었다. 삼대 명절은 물론 우리민족 대다수 세시풍속의 두드러진 특징이 조상숭배에 있는 점을 상기해볼 때 겨우 차례로써 족하고 성묘는 뒤로 제쳐두는 자들을 볼 때면, 결과 무성한 쑥넝쿨 아래 뒹구는 주인 없는 무덤들이 해마다 늘어가는 것을 볼 때면, 벌초라 하여 조상의 산소를 찾아가서 잔디를 깎고 잡초를 제거하던 우리의 미풍과 잡초가 우거지고 허물어진 산소는 자손의 수치로 알던 우리의 미덕이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그리고 일단 성묘를 마치기만 하면 쫓기듯이 고향을 떠나가 버리는 사람들. 빈말이나마 예전처럼 농사일의 고충을 물어준다든가 이농으로 인해 문을 닫아버린 모교와 동창생들의 안부를 들어주려 하지 않는 사람들. 사투리 대신 간지러운 서울말씨로 혓바닥을 바꿔 농산물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엄살만 피우다 가는 사람들. 햄버거나 돈까스는 잘도 만들면서 송편 한쪽 제대로 빚을 줄 모르는 사람들. 산에 가서는 조상의 묘를 잃어버리고 헤매이는 사람들. 명절도 승진의 기회로 삼아 값비싼 외제 선물을 사들고 상사들의 문패 앞이나 서성대는 사람들. 대체 무엇이 우리들을 이토록 낯설고 현실적이게 만들었는가. 그렇게 일회용 인생들이 조수처럼 왔다가며 더욱 더 썰렁해지는 마을, 사람이 없으므로 이렇다 할 놀이문화도 없다. 그 흔했던 농악도 강강수월래도 다 옛말이 되었다. 손발이 모자라기도 하려니와 그만한 여우를 무엇엔가 빼앗긴 까닭이다. 어쩌다 매스컴같은 데서 그런 모습들이 밟힐 때면 왜 그렇게 낯설고 쑥스럽게 느껴지기만 하는지 돌이켜보면, 농업국에서 공업국으로 낯빛을 바꿔오면서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 묻어있던 흙냄새를 너무 빨리 씻어내버린 것 같다. 그것을 곧잘 세월의 탓으로 돌리거나 일부만의 작태로 치부해버리지만 그 일부 곳에 바로 내가 속해있음을 깨닫게 되기까지는 여기서 얼마나 더 세월이 흘러야 하는 것일까. 오로지 뎅그마니 남겨진 농투성이 몇이 점방에 꿇어앉아 두드리는 술방치기 고스톱이 놀이라면 유일한 놀이인 오늘. 농촌은 한가럽게 한가위를 맞이할 여유가 없다. 들판은 우루과이 협상이라는 태풍 한가운데 놓여 뿌리채 흔들리고 있고, 나날이 늘어만가는 이농으로 가뜩이나 일손이 모자라는 물아래 마을은 명절이라도 자식들의 손을 빌어 타작마당에 나서야 될 형편이다. 그래도 찾아올 손님들을 위해 잡초를 깎고 개똥을 치우고 패인 안길을 반듯하게 고르는 물아래마을 사람들, 저들의 모습에서나마 농촌은 아직도 우리들 마음의 고향으로 남아있는데. 막내딸 몫의 고추를 광주리에 이고 들밭에서 돌아오는 수월댁 초가지붕처럼 흰 허리위로 작년에 날받아두었던 달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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