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살아남는다’라는 명제가 어느 때보다도 크게 자리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실제로 우리는 ‘살아간다’또는 ‘삶을 영위한다’는 말과는 엄청난 괴리감을 느끼게 하는 세상에 마구 내동댕이 쳐져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기보다는 위협이 되는 기형적 형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에 공지영은 ‘아름다움이라고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탐구하여 보여주고 있다. 공지영의 소설에서 우리가 우선 느낄 수 있는 점은 이야기의 전개가 차분하다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차분함은 그녀 특유의 명징하고 투명한 언어에 의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문학성이 떨어지면서 거의 구호로 일관하는 작품들에서 느껴지는 과격함이 없다는 데에 그 한 원인이 있기도 하다.
공지영은 「동트는 새벽」(「창작과 비평」 1988 가을)과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1990) 등으로 우리에게 어느 정도는 친숙한 작가이다. 그녀의 작품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와 「그리고, 그들의 아름다운 시작」은 연작이다. 이야기의 진행이나 사건의 순서를 보면 「그리고」가 「더이상」보다 전시대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는 80년대 초라고 하는 암울한 시대의 학생운동의 진로모색과 그들 학생들의 개인적, 집단적 고뇌를 담아내고 있다.
은 작품이나 비슷하겠지만 공지영이 자신이 작품을 이끌어 가는 화두는 ‘진실’ 이다. 이 말은 ‘질리란 과연 무엇인가. 과연 존재하기는 하는 건가?’라는 말로 우리 모두를 한 번쯤은 번민에 빠지게 하는 말이다. 「그리고」의 인물들은 각자가 이 진실을 찾기 위해 방황한다. 작품 속에서, 기훈, 인식, 은수 등 운동에 대한 신념을 끝까지 버리지 않고 전진하는 이들과 깊은 자존심 때문에 어려움을 겪지만 끝내는 일어서 길을 찾아가는 지수, 중간에서 탈락하지만 다시 딛고 일어서고자 하는 남호와 동숙, 자본주의 사회의 물질이 제공하는 안락에 빠진 변절한 선배, 자식들에 대한 무한한 사랑으로 가슴 아파하는 어머니들, 한 자식의 어머니에서 ‘우리 모두의 어머니’로 변화하는 기훈의 어머니 등이 등장한다. 사제의 길을 걷던 김석우의 시대의 현실에 대한 고뇌와 좌절 그리고 죽음, 사회의 모순에 대항하는 운동권 학생들의 고뇌와 사랑, 운동의 필요성을 피부로 느끼고 그러한 활동을 조직적으로 그리고 과학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는 승후와 은경의 헌신적 노력, 자식들의 움직임을 바라보는 부모들의 엇갈린 시선 등, 이 모든 것들이 서로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변화하고 흘러간다.
80년대 초반만 해도 운동권의 분열이 아직 가시화되지 않은 상태였고, 그 운동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석우나 인식으로 하여금 고뇌하게 하였던 ‘80년 광주’에 대한 부채의 식이다. ‘살아 있는 사람으로서 차마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는 송구스러움과 열패감’ 은 그 부채를 갚아야 한다는 것으로 크게 자리잡을 수밖에 없었다.
80년대 초는 어느 누구도 ‘나는 이렇게 하겠다’라고 간단하게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은수는 석우가 보여준 몇몇 사진들(동일방직 여공들이 전나(全裸)의 몸에 똥을 바르고 저항하던 사건)을 보며 커다란 정신적 충격을 받는다. 그녀는 선배들의 지도를 받으면서 성장한다. 그녀는 시위를 주동하여 유치장에 갔다온 후 집안 식구들에 의해 정신병원에 감금되기도 하지만, 철저한 이론학습을 받아 노동현장에 투신하였고 굳건하게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간다. 그러나 운동을 하는 사람 모두가 은수처럼 일관되게 나아가지는 않는다. 작품 속에서 우리는 많은 인물들의 일탈을 목격하게 되는데 그들이 그렇게 일탈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이거나 또는 개인적으로 조직생활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탈한 인물들에 대한 공지영의 시선은 매우 따뜻하다. 공지영은 남호나 기훈 과는 달리 한 발쯤 떨어져서 운동을 바라보는 형민의 논리에 상당한 합리성을 부여하기도 하고 집안 사정으로 회계사시험을 대비해 공부를 하겠다는 남호에게 은경 이라는 인물을 통해 넉넉한 격력도 해준다. “민중도 아니면서” 매일 “좋은 안주 삼아 술이나 마시면서” 큰소리치는 것은 “오랄 마스터베이션” 이라고 말하는 형민의 말은 비록 “지식인이라면 공부를 해야지”라고 할 때의 공부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타당한 지적으로 들린다. 운동을 안주 삼아 술을 마시며 삭지 않은 울분을 토로하는 것은 실제로 자신의 심적인 체증을 풀어내기 위한 오랄 마스터베이션에 불과할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의 장기화는 결국 운동의 진전을 가로막는 것이 되고 만다. 자신이 이 시대의 변혁을 위해 분투하지 못하는 부끄러움을 잃지 않는다면 후일 ‘자기 몫의 무언가를 할 수 있으리라’는 남호의 독백도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
이렇게 공지영은 모두를 운동의 품안에 끌어들이는 넉넉함을 보여 주고 있다. 이것은 신문사의 지도 교수가 기훈에게 “여유”를 가지라고 권유하는 데에서도 보인다. 어려운 시절을 겪으면서 모든 일이 그리 쉽게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실제로 체험한 지도교수는 여유를 가질 것을 권고하는 것이다.
공지영이 보여주는 넉넉함 내지 여유는 그녀 특유의 장점이다. 식자공의 실수, 때로는 작가 자신의 실수라 보여지는 것들이 간간이 보임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녀의 전체현실에 대한 인식이 현 운동권의 시각에서 볼 때 감정의 사치나 허영으로 보여질 수 있는 점이 분명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사건의 전개보다는 당시를 살아야 했던 많은 사람들이 내면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다루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자신을 다시 한 번 추슬러 일으켜 세울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일독을 권해보고 싶은 작품이다.
서평/『사무직 여성과 임금』
지역사회 연구모임.
80년대 후반이후 노동운동의 조직적, 사상적, 대중적 발전과정에 발맞추어 거대한 역량을 축적해 온 부문중의 대표적인 경우가 사무전문직 노동운동이다. 사무전문직 노동운동이 급속도로 확산, 강화되면서 자연스럽게 사무전문직 노동자들의 지위와 역할에 관한 다양한 시각 차이들이 드러나게 되었고, 이는 결국 한국사회 변혁론의 차이로부터 양산되어지는 문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무척이나 소모전적으로 전개되어지기도 하는 사무전문직 노동자를 둘러싼 무수한 논쟁의 과정 속에서도 사무전문직 노동운동은 이제 그 조직적 기반을 바탕으로 단순한 임금인상투쟁의 틀을 벗어나 장기적인 전망들을 설정, 구체화 시켜나가고 있다.
이 같은 사무전문직 노동운동의 강화과정에서 특기할 만한 사실은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사무직 여성노동자들이 평생평등노동권을 확보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그 중에서도 차별임금을 극복하기 위한 투쟁들이 가시화되고 있는 현상이다.
이 사실에 주목하여 그동안 사무직 노동자의 심층적인 임금실태 조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감안, 구체적인 조사분석을 통해 그 실태를 파악하여 보고 이를 바탕으로 노동현장에서 행해지고 있는 차별임금 문제를 해결해 보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따라서 이 책은 공식적 통계자료와 총45개 업체를 대상으로 한국여성 민우회가 직접 실시한 실태조사, 면접조사, 단체협약 및 노동조합 활동보고 등을 토대로 사무전문직의 임금실태와 그 속에서 드러나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의 심각한 차별임금현상에 대한 기술이 그 중심을 이루고 있다.
구체적인 내용을 보자면 먼저 1,2장에서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임금’이 가져야 하는 올바른 의미와 이에 기반한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 이론, 정당성을 우리나라의 임금구조와 임금체계에 접맥시켜 그 허와 실을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 의하면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은“…개별노동자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능력의 차이를 전혀 무시 한 채 모두 균등하게 취급하도록 하는 절대적 평등에의 요구가 아니라, 노동력의 차이를 전제하여 이러한 차이에 상응하는 취급을 요구하는 상대적 평등에의 요구이다. 즉 동등한 가치의 노동을 수행하는 경우 동등한 임금을 지불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로 설명한다.
3장이 바로 앞에서 말한 사무전문직 임금실태조사의 분석결과를 실은 부분이다. 조사대상을 제1금융권, 제2금융권, 일반기업체, 언론․공익업체별로 나누어 전반적인 분석과 비교분석, 구체적인 임금실태를 도표로 정리해주고 있으며 사례조사의 결과도 집중 분석해 놓고 있다.
4․5장에서는 그간 이루어졌던 사업장내에서의 차별임금 폐지 투쟁의 사례들을 경과보고의 형태로 정리하고 있고, 서구에서 행해지고 있는 동일노동동일임금제의 내용과 성격을 간단히 소개하고 잇다. 여기서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은 남녀 동일노동 동일임금에 관한 독자적인 법률이 있으며 남녀 차별에 관한 법적 규제가 점차 강화되고 있는 나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는 1963년 ‘동등임금법’이 제정된 이래 남녀임금격차가 별로 줄어들지 않았으며 심지어 경기변동에 따라서 오히려 확대되기까지 했다. 반면에 남녀 동일임금에 관한특별법이 존재하지 않는 스웨덴은 성별임금 격차가 세계에서 가장 적은 나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남녀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실현하는 데 있어서 법적 조처의 강화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여성노동자의 차별적 저임금문제를 인식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노동자 주체들의 노력이 관건임을 보여준다.
이 책의 결론이라 할 수 있는 마지막 6장에서는 앞에서 살펴본 차별임금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를 살펴보면 ① 동일가치노동에 동일임금 지급 ② 임금체계의 합리화 ③ 하후상박 임금인상을 통한 격차해소 ④ 고용할당제의 도입 ⑤ 불안정고용철폐 ⑥ 균등한 연수 및 교육기회의 확보 ⑦ 노동시간단축 ⑧ 모성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의 확보와 여성의 의식변화 등이다.
또한 부록으로 동일노동 동일임금규정에 근거하여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소송을 제기한 두 차례의 청구소송 소장과 일본, 미국에서의 동일노동 동일임금 판례 및 투쟁사례, 그리고 이 책의 밑바탕이 되고 있는 사무전문직 임금실태조사의 설문지 게재를 잊지 않고 있다.
간단히 말해 이 책을 사무전문직 임금실태 분석 및 차별임금 개선을 위하여 사회구조적 원인과 우리사회전체의 임금구조 및 개별기업의 임금체계를 함께 보아야 한다고 할 때, 이를 위한 구체적인 자료제시와 길잡이로서의 의미는 충분한 책이라 하겠다.
차별임금분석을 임금구조와 임금체계의 문제점으로 집중시키고 있으나 여기에는 이견이 충분히 존재 할 수 있으며, 사무전문직의 차별임금 개선투쟁과 생산직을 비롯한 노동운동 전반과의 결합․연대의 문제, 법적․제도적 장치의 문제만이 아니라 뿌리깊은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와 남존여비의 사상으로 제기되어지는 여성운동과의 공동영역이나 관계설정의 문제 등 전반적인 인식이 미흡하고 일반론적인 파악과 방안제시에 머물러 펴낸 주체의 특수성을 감안한다 할지라도 적지 않은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