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를 가을에만 할랴만은 일반인들은 후덥찌근한 여름날 더위에 지쳐 매사를 소극적으로 지내다가 청명한 가을날 책을 가까이 하기에 좋아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이토록 책읽기 좋은 계절에 내가 미술대학 학창시절에 읽었던 기억나는 책 한권을 소개하고 싶다. 현대에 들어서 훌륭한 서양미술사가들이 많지만 그중에서 대표적으로 E.H곰부리치(Ernst Hans Josef Gombrich)를 꼽을 수 있다. 그는 1909년 비인에서 태어나 비인대학에서 미술사학과 고전건축학을 공부했다. 나치스가 대두하자 1939년 영국으로 이주하여 1946년 이후 런던대학의 교수로 근무하면서 특히 그 대학의 와버그 연구소(Warburg Insti-tute)에서 연구하다가 1959년 그 연구소의 소장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동안 런던의 로얄 컬리지 오브 아트, 옥스퍼드 대학, 켐임브리지 대학의 객원 교수를 역임하고, 미국의 하버드 대학, 코넬 대학에서도 강의를 한바 있다. 영국의 아카데미 회원, 고대학협회 회원, 왕립 건축가협회 회원으로 활약하는 한편 기타 외국의 저명한 학술단체의 명예회원으로 있다. 주요 저서로는 「어린이들을 위한 세계사」, 「풍자화」, 「미술과 일루젼」, 「 목마에 대한 사색」, 「규범과 형식」, 「서양미술사」등 서양의 미술에 관한 많은 저서를 남겼다. 그중에서도 원시사회의 미술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서양미술의 역사를 총망라하여 기술한 「서양미술사」上․下권은 매우 유명하다. 그는 이 책에서 서양미술사를 많은 사람들에게 교양적으로 폭넓게 읽을 수 있도록 전문용어등을 쉽게 풀이해서 쓰고 있다. 만약 이 책의 과학기술의 변화에 관한 것이라면 진작 내용을 상당부분 뜯어 고쳐야만 될 것이나, 이 책의 내용은 확실하게 규명된 미술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변화의 과정과 이유, 의미, 가치등을 자세하게 밝히고 있어 시대를 초월하여 미술의 전문인은 물론 비전문인도 읽을 가치가 충분히 있다. 또 이 책은 미술이라는 불가사의하고 매혹적인 분야에 첫발을 내딛고 어느 방향으로 나가야 할까하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필요한 책이다. 그리고 미술에 새로 발을 들여 놓은 사람들에게 세세한 부분들에 사로잡힘이 없이 그 넓은 서양나라들의 미술의 지세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복잡한 여러나라의 인명, 시대, 양식 등을 알기쉽게 정리함으로써 보다 전문적인 서적들을 접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데 이책은 충분한 이바지를 하고 있다. 때론 지나치게 평범하고 비전문적이라고 할지도 모르는 부담을 무릅쓰고 평이한 말로 내용을 쉽게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 사고에 있어서는 어려운 문제라 할지라도 피하지 않았고, 그럼으로써 미술사가들의 전문용어를 될 수 있는대로 적게 사용하면서 독자들에게 일부러 “수준을 낮추었다”라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고 애쓴 흔적이 역역히 보인다. 즉, 종래의 서양미술사를 쉬운말로 다시 설명 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나를 알 수 있게 하려고 했다. 이책은 열광적인 설명에 의해서가 아니라 미술사가 표현하고자한 의도를 암시해 줄 몇가지 사항을 지적 함으로써 독자들이 작품을 올바르게 평가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언급되는 작품들은 역사적인 배경속에서 파악하고, 그럼으로써 미술가가 어떠한 예술적 목표를 노렸는가 하는데 대해 이해를 도모하고자 하는 것이다. 어느 세대건 그보다 앞선 세대의 예술적 규범에 대해선 어떤 점에서든지 반발하기 마련이다. 또한 각 작품들이 동시대인들에게 주는 매력이란 그 시점에서 그것이 어떠한 것을 해냈느냐 하는 것에서 뿐만아니라, 어떤 것을 하지 않았느냐에서도 생겨나는 것이다. 이 책의 결론 부분에서 그는 다음과 같은 점을 강조하려 했다. 즉, 비상하게 잘된 작품일 경우 우리는 제작방식과 솜씨에 감탄한 나머지 그것이 어떤 목적에서 만들어진 것인지 물어보는 것을 잊게 된다고 하는 점이다. 이러한 경향은 회화에 있어서 그 정도가 점점 더 커져간다는 사실을 그는 보여 주었다. 그리고 미술의 끊임없는 변화를 계속적인 진보로 받아들이는 것은 소박하고 그릇된 해석이라고 말하고 있다. 물론 각 미술가들은 자신이 그 이전 세대를 능가했다고 느끼고, 그의 그러한 관점에서 보면 그 전에 알려졌던 어떤것도 뛰어넘어 진일보했다는 것이 사실이다. 미술가가 자신이 이루어 놓은 업적을 돌아보고 느끼는 이러한 해방감과 승리감을 같이 느낄 수 없으면 작품을 이해하려고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방향에서의 성과나 진보가 다른 방향에서 비추어 보면 손실이며, 이러한 주관적 진보는 매우 중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예술적인 가치에 있어서 객관적인 증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만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끝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들이란 실제로 여러 가지 기준에 비추어보아 최고로 위대한 작품일 경우가 많으며 만약 이 책이 독자들로 하여금 그러한 작품들을 다시금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게 하는데 도움을 준다면 매우 유익한 일일 것이다. 이 책이 미술에 대한 인문서로서의 가치는 매우 훌륭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책 읽기 좋은 이 계절에 풀벌레 소리 들으며 이 책속으로 서양미술의 순례자 되어 행복한 여행을 떠나 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