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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9 | 연재 [문화저널]
성녀의 손
김소정(2004-01-29 15:41:26)


콧잔등을 타고 흐르는 땀을 닦던 손수건에 무심코 눈을 떨구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꼬깃꼬깃 가방 안에 쑤셔 박아 뒀던 더러운 걸레였는데 나 몰래 하얗게 단장을 하고 다림질까지 네모 반듯이되어 어느새 내 손에 쥐어져 있었다.
한 학년 올라와서 소위 학교에서 말하는 문제아와 어울리며 나도 문제아로 변해가면서 조금씩 조금씩 멀어져만 가던 어머니의 일그러진 꺼먼 얼굴이 오늘따라 왜 이리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걸까?
한 달 남짓 지났을까? 처음으로 학원비로 속이고 어머니에게 돈을 타냈다.
밤을 새고 공부했다는 나의 말에 측은해 하며 꾹꾹 눌러 싸주신 도시락을 친구들에게 던져주고 어머니의 땀 한방울보다 더 소중한 돈을 뿌리고 다니며 왜 철없는 아이가 됐어야 했을까? 꼬리가 길면 잡힌다는 말이 있다. 학원시간에 맞춰 길거리에서 시간을 보내다 즐거워라 집안에 들어갔다. 웬일일까? 어머니께서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얼굴이 발개져서 뭐라 말씀 하시려고 응얼거리셨다.
“뭐야, 나 배고파!”
난 왜 언제나 철딱서니 없는 딸이었을까?
그 날 난 실컷 얻어맞고 아니 반성까지 하고 거기다 약속까지 단단히 하고, 이불 속에서 엉엉 울다 잠이 들었다.
몇 시였을까? 마루에선 괘종시계가 희미하게 울고 있었고 가끔씩 개들이 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부스스 일어났다. 깜깜한 방안에서 더듬고 더듬어 -눈이 퉁퉁 부어서-방안에서 벗어 날 수 있었다. 마루였다. 희미한 달빛이 가득차 있어서 마루의 구석구석이 한 눈에 들어왔다. 그 때 쇼파 쪽에서 뭔가 꾸물댔다. 무심코 던진 “집 나갈거야!”란 나의 말에 어머니가 보초를 섰던 거였던가!
우리 집안에 시집 오셔서부터 아버지와 같이 직장을 나가시며 떼어 놓고 온 언니와 내가 늘 가여워 남의 집 아이들 못지 않게 잘 대해주시려고 신경 쓰시던 나의 어머니!
달빛은 그러한 따스한 어머니의 손에 머물러 있었다. 나도 모르게 손이 올라갔고 순간 가만히 쓸어본 쭈글쭈글한 살가죽, 갈라지고 군데 찢긴 데도 있지만 그래도 나에겐 어떤 성녀 못지 않은 성녀의 손 이였다.
지금 다시 더러워진, 어머니의 숨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이 손수건을 오늘은 내가 빨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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