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10 | [세대횡단 문화읽기]
뮤지컬의 새로운 문화를 연다
- 뮤지컬 <파랑새>를 무대에 올린 「디딤예술단」
윤희숙․문화저널 기자
(2004-01-29 15:43:22)
도내에서 뮤지컬을 전문으로 하는 극단 「디딤예술단」이 지난 6월 창단되었다. 「디딤예술단」은 연출가 안상철씨를 중심으로 뮤지컬 연극을 통해 전문배우의 양성과 음악 무용 무대미술 등 전문적 역량을 갖춘 스텝진을 구성하여 시대감각에 맞는 연극의 활성화에 주력하여 연극의 수준향상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하는 극단이다. 전북지역 연극풍토로 미루어 연극활동을 통해 생계를 보장받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실제로 많은 연극인들이 연극에 대한 열정으로 연극계에 뛰어들지만 열정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무대를 떠나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지역에서 중견배우를 만나기가 어려운 것도 이런 연유에서 비롯된다. 「디딤예술단」이 극복하려 하는 문제중의 하나는 생활이 되는 연극활동을 배우들에게 보장하는 일이다. 그래서 좋은 연극 만드는 일과 함께 훌륭한 기획을 해내는 일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게 여기게 된다. 창단과 함께 전문적이고 직업적인 극단을 표방한 「디딤예술단」이 제시한 청사진을 보면 먼저 94년까지 제1차로 3개년 계획을 세워 연기와 무용, 가창연습을 할 수 있는 4-50평 규모의 제1연습실과 작곡과 연주를 위한 10여평 정도의 제2연습실을 확보하고 철저한 워크샵을 거친 정단원 30여명을 양성하고 전문스텝진을 확보하여 연3회 성인극과 청소년극, 가족극을 무대에 올릴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부대시설로 무대셋트를 비롯하여 연극에 필요한 도구들을 제작 보관하는 무대제작소 설립과 무대의상과 소품들을 제작하는 시설이 구비된 의상제작소 설립계획도 1차 사업의 몫에 포함되어 있다. 제 2차 3개년 계획은 97년까지 전용 소극장을 개관하고 정통연극과 인형극을 제작하는 일과 음향과 희곡, 공연자료 은행을 설치운영하고 해외극단과의 자매결연 및 교류공연을 실시하고 전북 연극 페스티발을 열어 전북지역에 연극이해의 폭을 넓히고, 연극무대를 활성화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 제 3차 3개년 계획은 2천년까지 중극장과 소극장, 전시관, 휴게실, 자료실, 기타 부대시설을 갖춘 문화센터의 개관과 국제 연극제를 전주에서 개최하는 것이다.
「디딤예술단」의 창단시기는 6월이지만 지난 3월부터 준비작업을 시작하여, 4월에 지망부문별로 노래시험과 대사, 마임연기 등의 엄격한 오디션을 통해 연기부문과 스텝의 분야별로 단원을 모집했다. 1-2차를 거쳐 26명의 단원이 구성되었고, 곧바로 창단기념 공연작인 뮤지컬 <파랑새>의 연습을 시작했다. 벨기에 작가 메테를링크의 1908년작 희극 <파랑새>를 연출가와 단원들이 공동으로 1차 각색과 2차 각색을 한 다음 작사와 작곡을 완성했다. 뮤지컬의 동적인 무대를 위해 기본무용을 익히고 다시 3차 각색을 하여 모두 23곡의 삽입곡을 녹음하여 편곡작업을 해냈다. 올 여름 내내 단원 모두가 하루 8시간을 땀에 절은 상태로 연습에 몰두했다. 연습이 진행되는 동안 내내 걱정과 기대를 떨치지 못했고 드디어 9월 1일부터 16일까지 이리와 전주, 고창, 남원, 군산지역의 순회공연을 해냈다. 처음 올리는 공연이라 평가에 촉각을 곤두세웠으나 다행스럽게도 성공적이었다는 말을 조심스럽게 꺼낼 수 있을 정도로 관객들의 반응은 좋았다. 하지만 자체평가에서는 만족할만한 결과를 내릴 수는 없었다. 경험이 없는 신인배우들의 실수 등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엄격하게 지적되었다. 노출된 문제점들을 보완하여 지역적 한계를 넘어 광주와 대구, 진주, 마산 등 전북 이외의 지역에서의 순회공연을 올 가을에 계획하고 있다.
이번 창단 공연을 통해서도 극단의 경제적인 어려움이 극복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가 있었다. 하지만 우선적으로 고쳐져야 할 일은 연극계에 만연되어 있는 비전문적인 풍토를 제거하는 것이다. 연극인들 스스로가 직업적인 투철한 의식을 가지고 극단생활을 철저하게 해내는 작업들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매 공연을 올릴 때마다 전쟁을 치르듯이 찾아야 하는 후원자들보다는 좋은 작품으로 승부를 걸어 양질의 관극회원을 다수 확보하여 연극인구의 저변확대를 꾀하고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게 「디딤예술단」의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서 관객들이 극장을 스스로 찾을 수 있는 좋은 작품. 한 계층만을 위한 연극이 아닌 다수의 관객이 공유할 수 있는 쉬운 작품을 무대에 올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작품을 만들고 연기하는 연출자나 배우의 입장보다는 관객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자세를 견지해내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경제적인 개념을 가지고 연극활동에 임한다는 사실이 상업적인 작품활동을 지향한다는 걸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기존의 극단과 차별성을 가진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역시 상업적인 연극쪽으로 빠지는 것에 대한 경계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작품은 무대위에서 평가를 받게 된다. 하지만 그 무대를 만들기 위한 보이지 않는 노력들이 얼마나 많은가. 스무살에서 서른 여덟까지 폭넓으면서도 단원의 대부분이 이십대 중반으로 젊고 패기있는 극단. 전북지역 연극계의 커다란 디딤돌이 되고자하는 「디딤예술단」의 활동을 눈여겨 지켜보고 그들의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기대하고 격려하는 일이 바로 우리 관객들이 담보해 주어야할 몫일 것이다.